올 1~2월 한반도 정세 고비 가능성···비핵화 협상 장기전 불가피
北, 이례적 ‘남북관계’ 언급 안 해···작년 10번 언급한 것과 대조적

지난해 6월 진행된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진행된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핵무기·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새로운 전략무기 시험 및 발사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오면서 1~2월이 한반도 정세의 중대 고비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북한은 핵 실험과 ICBM 시험 발사 유예 철회까지 시사하며 자력갱생으로 미국의 대북제재를 ‘정면 돌파’ 하겠다고 나서면서도 미국과의 대화 여지는 남겼다. 연말로 한정됐던 시한이 확장돼 비핵화 협상 재개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아 한반도를 둘러싼 비핵화 향방에 주목된다.

◇北, ‘대미 압박용’ 새로운 전략무기 언급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8일부터 시작한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 넷째 날 보고에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며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올해 북한은 1987년 이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신년사를 전원회의 결과 보고로 대체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곧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개발을 중단 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연말까지 미국의 정책 변화를 기다렸다면, 이제는 새로운 전략무기를 과시해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사실상 2017년 북미 대화 이전으로 되돌아가 핵·경제 병진 노선 회귀를 시사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 구축에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다.

북미 대화는 지난해 2월 이른바 하노이 노딜(no-deal) 회담, 6월 판문점 남·북·미 접촉과 10월 스톡홀름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로 교착 상태에 머물고 있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연말까지 비핵화 협상에서 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에 대한 ‘새로운 셈법’을 요구해왔지만, 미국은 북한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채 ‘대화 재개’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2년 동안 진행해온 비핵화 대화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이에 김 위원장이 자체 수위조절하며 대미 압박용 메시지를 건넨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김 위원장은 협상 여지는 남기면서도 “또 다시 간고하고도 장구한 투쟁을 결심했다”며 “조미간 교착 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됐다”고 했다. 비핵화 대화가 ‘장기전’이라는 점을 못 박은 셈이다.

북한이 지난 28일부터 31일까지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대미정책과 전략무기 개발을 언급한 대목에서 나온 사진으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과거 열병식 때 등장한 무기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8일부터 31일까지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대미정책과 전략무기 개발을 언급한 대목에서 나온 사진으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과거 열병식 때 등장한 무기다. / 사진=연합뉴스

◇美, 합의 이행 촉구···韓 “비핵화·남북관계 진전 노력 계속”

미국도 기존 기조대로 대화 틀은 깨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친분을 강조하면서 지난 1일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새해 전야 행사에서 “지켜보자.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비핵화가 북미 싱가포르 합의의 ‘넘버 원’이었다”고 비핵화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도 같은 날 미국 CBS방송에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고 있고, 그도 그가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희망을 계속해서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이 재고하고, 계속해서 그 (외교적) 경로를 따를 것을 희망한다”고 북미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재강조 했다.

문제는 북한의 도발 수위는 차츰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반면, 미국은 북한의 요구인 제재 해제 등을 모두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할 뾰족한 수가 현재로서 없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새해 첫날 공개된 1만8000여자 분량의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보도문에서 ‘북남(남북) 관계’ 단어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올 한해도 냉랭한 남북관계를 예고했다. 이는 작년 신년사에서 ‘북남관계’를 10번 언급한 것과 대조적이다.

당초 정부는 북한이 대남정책을 공식화하면 이에 맞춰 경색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대응 전략을 확정하고 세부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다만 북한의 이 같은 행동에 변수를 맞게 됐다.

우선 우리 정부는 “지켜보자”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 중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당분간 남북관계 상황이 밝지 않아 보인다”면서 “과감하고 혁신적인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1일 “북한이 ‘곧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주목한다”며 “북한이 이를 행동으로 옮기면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 진전과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특히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합의사항을 철저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북한이) 일단 우려했던 ‘레드라인’을 넘기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한반도 정세를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며 올해 1~2월이 한반도 정세의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일연구원은 북한의 새로운 길의 핵심은 ‘정면 돌파’로 봤다. 연구원은 “미국과의 교착상태가 장기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 군사적 (핵)억제력 및 내부적 힘 강화를 통해 응집력을 키우겠다는 것이 요지”라면서 “미국이 대북적대시정책을 철회하기 전까지 비핵화 협상이 없다는 점을 언급한 것은 기존 대북제재 해제와 비핵화 동시교환 입장에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으로 대미협상의 전략변화를 예고한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 대선 등의 불확실성이 걷혀야 대북 협상 집중력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1∼2월 한국과 미국이 북미협상의 불씨를 살리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대북 메시지와 선언적 조치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3월 초부터 시즌에 돌입하는 한미훈련 조정으로 정세관리의 핵심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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