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 피규어 중 하나인 베어브릭을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예술 작품으로 펼쳐 보이는 임지빈 작가. 그가 곰돌이를 통해 대중에게 전하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들어본다.

임지빈 작가는 장흥 가나아트센터 아틀리에 입주 작가로 지난 8년 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베어브릭을 탄생시켰다.  /사진=이지아

 

베어브릭을 차용한 팝아트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유명 브랜드들의 사랑을 받아온 임지빈 작가. 그가 제작하는 ‘곰돌이’들은 각박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자화상이지만 귀엽고 포근한 모습으로 보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전한 다. 몇 년 전부터 세계의 여러 도시에 베어 벌룬을 설치하며 어디에서나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작가를 작업실에서 만났다.

최근 에브리웨어 프로젝트 덕분에 바삐 지내신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프로젝트 덕분에 1년 중 반은 해외에서 지내고 있어요. 돌아오는 주말에는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가하게 돼 갑자기 바빠졌네요. 조소 작업으로 페어에 참가하 고, 마침 담당 디렉터가 에브리웨어 프로젝트의 설치 작업을 궁금해해서 베어 벌룬도 설치해볼 계획입니다.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어디든 예술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서 베어 벌룬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예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비좁고 협소한 공 간에 벌룬이 끼어 있는 듯한 귀엽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주로 연출하고요. 4m 규모의 벌룬을 설치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저 혼자 작업해요. 몇 년동안 해오다 보니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서 설치에 꼭 필요한 물품들만 챙겨서 캐리어 하나에 끌고 다니며 작업하고 있어요.

베어브릭이나 베어 벌룬은 친근한 느낌이 강해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주셔서 정말 고맙죠. 주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2016년부터 해외에서도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는데 환영받아 기쁘더라고요. 아이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준 덕분에 용기를 얻어 더 많은 곳에 가보려고 해요.

베이브릭이란 오브제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베어브릭은 워낙 유명한 아트 토이인데, 여러 브랜드와 컬래버로 디자인을 출시하거든요. 제가 대학생이었던 2006년에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샤넬브릭이 등장했어요. 인기가 대단했 죠. 제품을 구매하기도 힘들고 리세일 가격이 엄청 높았어요. 저는 당시 한정판 운동화를 모으기도 하고 명품 브랜드에도 관심이 많았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그 현상이 인상적이었어요. 똑같은 모양의 베어브릭인데 색깔이 다르다고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기도 하고요. 우리도 옷이나 자동차, 집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잖아요. 그런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베어브릭을 차용하게 됐어요.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가득 찬 작업실을 채운 향은 조 말론 런던의 ‘매직 앤 메이헴’ 크리스마스 리미티드 컬렉션 제품이다. 조 말론 런던의 베스트 제품인 잉글리쉬 페어 앤 프리지아 코롱과 디퓨저가 리미티드 패키지를 입어 작업실에 개성을 더한다.  /사진=이지아

그런 브릭들이 어떤 계기로 벌룬이 되어 세계를 여행하게 되었나요? 비슷한 이유 예요. 제가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전에는 거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했어요.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로 가득 찬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모두 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게 느껴져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며 만원버스나 지하철에 끼어 타는 현대인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물이나 좁은 공간에 끼어 있는 베어를 만들게 되었는데, 건물과 잘 어울리는 소재는 브릭보다 벌룬이었어 요. 과감하게 큰 작품도 가능하고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었 거든요. 다만 불쌍하게 보이지 않고 보기만 해도 귀여워서 저절로 미소를 지을 수있게 하려고 했죠. 벌룬과 함께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게 된 건, 미술관에서만 하던 예술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어서였어요. 활동한 지 12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많이 해왔거든요. 그런데 해가 거듭할수록 마음이 헛헛한 경우가 많았어요. 전시를 열면 찾아오는 사람들은 지인이나 미술 관계자들처럼 한정된 사람들뿐이더라고요. 그래서 전시에 대한 회의가 좀 들었고요. 생각 끝에, 그렇다면 사람들의 일상 공간에서 전시를 하자라고 결심하고 지금까지 온 거예요.

일상에서 만나는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벌룬은 소재가 포근하고 귀여워 서인지 많이들 좋아해요. 게다가 제 작품은 만져도 되고 안아봐도 되니 더 그런 것같아요. 예전에 베트남 하노이의 재개발 지역에서 벌룬을 설치하고 있을 때 어린아 이들이 궁금했는지 계속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벌룬과 같이 놀게 했는데, 저도 같이 정말 즐겁게 놀았어요. 그런 경험이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 프로젝트가 어디서나 예술을 만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됐기 때문에 더욱 뿌듯했어요.

대중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작가 같아요. 사실 저 스스로가 대중적이라고 생각해 요. 미술을 전공했지만 저도 추상작품은 좀 어렵거든요. 저 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고요. 예전부터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예술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대중적인 작품을 하게 되더라고요.

어릴 때는 어떤 그림을 주로 그렸어요? 아주 어릴 때는 만화를 열심히 따라 그렸어 요. 저희 때는 왜 그랬는지 똑같이 따라 그린 만화를 서로 사고팔기도 했고요. 제 그림을 친구들이 많이 좋아해줬죠. 어릴 땐 미술을 전공하는 것까진 생각하지 않았 는데, 막상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 미술이 정말 하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예술고를 가기에는 입시 준비를 너무 안 했고, 미술학원은 당시 너무 비싸서 부모님께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리기 죄송했어요. 그래서 미술부가 유명한 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죠. 공업고등학교였는데 전통적으로 미술부가 강세였거든요. 그때 선배들에게 스파르타식으로 배운 것들이 실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꽤 늦게 시작한 편이네요. 그런데도 학생 신분으로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데뷔한후 쭉 탄탄대로였죠? 시작부터 운이 좋았어요. 대학 때 아르코 아트페어에 영 아티스트로 참가했는데 당시 상하이 비엔날레의 디렉터가 제 작품을 인상 깊게 봐주 셨어요. 당시도 베어브릭을 차용한 작품이었는데 그 계기로 상하이 비엔날레에 출품할 수 있게 됐어요. ‘슈퍼 파더’라는 제목으로 늙고 배도 나온 슈퍼맨을 표현했는데 반응이 괜찮았어요. 그걸 계기로 자연스럽게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됐고요.

1.2다양한 색감의 베어브릭과 피규어들이 가득한 임지빈 작가의 작업실. /사진=이지아

명품 브랜드와 협업도 자주 하는 편이시죠? 네, 어릴 때부터 한정판 운동화와 명품을 선망하던 저로서는 그런 기회들이 감사하죠. 다양한 브랜드와 작업해왔는데늘 재미있고 만족스러웠던 경험이었어요.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것도 당연히 필요 하지만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제 작품들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대중적으로 친근한 방식을 선호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펼칠 예정이세요?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는 당분간 계속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요즘 생각하는 프로젝트는 이동식 놀이터예요. 오지의 아이들이 하루 종일 신나게 놀 수 있는 접이식 놀이터죠. 그 놀이터를 갖고 다니면서 놀이 터가 없는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어요. 그 외에도 삭막한 도시에 베어 벌룬처럼 나무를 하나씩 끼워 넣는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녹색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활동들을 통해 ‘곰돌이 하면 임지빈 이다’. ‘벌룬 하면 임지빈이다’, ‘작품이 도시에 끼어 있다 하면 임지빈이다’ 이런 식으로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리빙센스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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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심효진 사진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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