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단축 시행 첫날···정부, 1년 법정 노동시간 위반 처벌 유예 계도기간 부여
업계 애로사항 덜어줄 탄력근무제 입법 필요···자동 폐기 가능성도 제기돼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라 50~299인 규모 기업의 근로단축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중소기업이 불안한 새해를 맞았다. 지난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 당시 시행이 예고됐지만, 업종 특수성이나 인력 충원 부담 등으로 근로단축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많아 일부 중소기업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인건비 지출은 늘리는 ‘이중고’에 처하게 됐다.

우선 정부는 50~299인 기업에 주 52시간제를 새해 첫날부터 적용했다. 현재 300인 이상 대기업에만 적용되던 주 52시간제가 50인 이상 300인 미만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다만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해 1년간 법정 노동시간 위반에 대한 처벌 유예 계도기간을 부여한다. 제도를 적용받는 중소기업들은 장시간 근로감독 등 단속대상에서 제외되며, 근로시간 규정 위반이 확인되더라도 시정기간을 부여받게 된다.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단축 시행이 맞물려 기업들의 국내 투자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이다. 실제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2018년 이후 전년 동기 대비 건설투자와 설비투자 변화율은 크게 하락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1분기부터 2017년 4분기까지 3.1~10.7%였던 전년 동기 대비 변화율은 2018년 1분기에 1.2%로 떨어졌고, 같은 해 2분기 역시 –2.5%까지 하락했다.

건설투자의 전년 동기 대비 변화율은 지난해 3분기까지 모두 마이너스 값을 나타냈다. 설비투자도 마찬가지다. 2017년 10.4~19.8%에 머물던 설비투자 변화율은 2018년 2분기 –4.3%, 2018년 3분기에 –9.4%까지 하락했다. 설비투자의 전년 동기 대비 변화율도 지난해 3분기까지 꾸준히 마이너스 값을 보였다.

◇中企 “근로단축 시행 어려워···탄력근무제 등 보완 입법 시급”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려고 해도 특정 기간에 업무량이 집중되거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등 근로시간을 초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앞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한 대기업들도 “마감 시한을 맞추기 위해 집, 근처 카페 등에서 일하는 상황”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업계는 ‘유연근로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보완 입법을 촉구했다. 유연근로제는 근로자 재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것을 말하며, 탄력근무제는 근로시간을 하루·일주일 단위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이 많아 몰리는 기간에는 최대 주당 64시간까지 일하고, 한가할 때는 일하는 시간을 줄여 주당 평균 52시간을 맞추면 된다. 탄력근로제 적용 단위는 2주에서 최장 3개월까지며, 초과근무수당은 주당 40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에만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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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근로단축 제도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 자료=중소기업연구원, 표=이다인 디자이너

실제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박사가 지난 11월 28일 고용노동부의 ‘2018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와 같은 해 나온 ‘기업체 노동비용 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종사자 300인 이하 중소기업은 12만3000명의 신규인력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종사자 1인당 월평균 33만4000원의 임금이 감소하며, 중소기업의 총 추가비용은 3조3335억원으로 추정됐다.

노 박사는 “근로시간의 효과적인 단축을 위해선 노사정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기존 생산성 관련 법령과의 연계 강화,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주52시간제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일 “50~299인 중소기업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계도기간을 주기 보다 일정기간 적용을 유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난달 조사에서 중소기업 65.8%가 주52시간제 적용에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중소 제저업체는 인력채용에 고충이 있다”면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국회에서 논의 중인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 선택근로시간제 정산기간 연장 등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탄력근무제 국회 통과 좌초 우려”

다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대통령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이 이미 합의했음에도 여야간 의견 대립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최근 ‘패트 정국’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더 심해져 자동폐기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경사노위에서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노사정 합의로 통과시키고 합의문을 국회에 송부했음에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최대 1년으로 연장하고 선택·재량근로제 정산 기간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경사노위 합의사항을 늦추면서 법안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이로써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상황에서, 중소기업 현장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임시방편으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연장이 필요한 기업에 법 개정이 완료될 때까지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연장해주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2020년 경제정책방향 기업인 간담회’ 직후 취재진과 만나 “탄력근로제 관련 법이 국회에 통과되지 않아 주 52시간제는 아쉬운 점이 있는데 법이 하루 빨리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지난달 31일 신년사를 통해 “50인 이상 299인 이하 기업에 대한 주 52시간제가 안착되도록 지원하겠다”면서 “현장 안착을 위해 탄력근로제 등 보완입법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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