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공급 막는 허술한 규제책 개선을

닷새 전 서울 한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을 위한 견본주택이 개관했다. 시공사는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 견본주택 오픈 전 내방객 신청을 받고 당첨자에 한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견본주택 관계자는 관람 미당첨자가 예약 없이 찾아올 때마다 ‘내방객 모두의 입장을 허용할 경우 도깨비시장 수준이어서 어쩔 수 없이 이 같은 사전예약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읍소하듯 구구절절 설명을 해댔다. 분양가 상한제로 공급물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건설사로써는 집객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람이 몰려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 감당이 안 되더라는 해프닝이 연출된 것이다.

이 아파트는 서울의 아파트 가운데 최초로 인피니티풀을 적용한다고 한다.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에는 대규모 조리를 위한 주방을 설치해 조식서비스가 진행된다. 아침에 일어나 슬리퍼 신고 나가 조식을 먹고, 야외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체력단련을 하는 게 굳이 해외여행을 가서가 아니라도 일상에서 현실 가능해진 것이다. 이처럼 우리 건설사들의 기술력은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에 걸맞게 프리미엄 경쟁에 뛰어들어 주거품질 개선과 더불어 삶의 질 향상을 현실화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분양에 나선 위례신도시의 한 견본주택 역시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한껏 힘을 줬다는 게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주차공간을 100% 지하화한 보행자 우선의 공원형 아파트와 함께 테라스 주택이 포함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년 5월부터는 이 같은 삶의 질을 아파트가 향후에도 나올 수 있을진 미지수다. 정부와 지자체가 재건축, 재정비 사업장을 집값 상승의 원흉으로 꼽으며 사업진행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어서다. 정비사업장은 안전진단 강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상한제 확대 등 각종 규제책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결국 재건축을 기대하며 살고 있는 이들은 흉물스럽게 벽에 금이 쩍쩍 가있고, 화장실부터 싱크대까지 물이 나오는 구멍마다 필터기를 설치하며 살고있다. 수명 다한 아파트에 인공호흡기를 달아놓은 셈이다. 30만㎡ 이하 그린벨트의 해제 권한은 시·도지사에게 있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정철학 가운데 하나가 그린벨트를 포함한 녹지 보전이다보니 그린벨트를 풀고 아파트를 짓는 형식의 공급확대는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공급확대 방안은 정비사업 활성화인데 정부는 되레 반대로 규제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건설사들의 기술 및 인식수준에 비하면 정부의 정책과 전국의 지자체 건축과, 주택과의 허술한 인허가 행태는 거꾸로 가는 시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집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집짓기에 앞서 정부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 건설은 인허가 여부에 따라 성장할 수도, 정체할수도, 퇴보할 수도 있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과 인허가는 대승적 차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진행해야 한다. 품격있는 주거공간 현실화, 더 나아가 주택시장 안정화는 이제 건설사가 아닌 인허가 담당 공무원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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