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민주노총 기자회견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촉구
마사회 측 "기수 단체와 상생 협력 협약"···책임 회피 주장 정면 반박

고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 모습. / 사진=시사저널e
고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 모습. / 사진=시사저널e

“마사회가 죽였다. 정부가 책임져라.”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고 문중원 열사 진상규명 요구’ 기자회견에서 유가족과 참가자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재차 요구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소속 문중원 기수는 지난달 29일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로 인해 기수로서 한계를 느꼈고, 이에 조교사가 되기 위해 면허를 취득했지만 부조리한 선발 과정으로 인해 마방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유족들은 고인이 유서에 언급한 마사회 내 부조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고인의 장인 오준식씨는이날 “우리 중원이가 차가운 시신으로 방치된 지 한달하고도 이틀이 지났다”며 “마사회는 자기네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입에 맞는 제안을 자기들끼리 만들어서 언론에 퍼뜨린다”고 성토했다.

마사회는 최근 문 기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마에서 1위 순위 상금 비중을 조정해 중·하위권 경주마 관계자들에 상금을 재분배하는 상금 구조 개편안 등을 내년 1월부터 시행하는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승률이 중·하위권인 기수의 출전 횟수를 보장해 상위권 기수의 부상 방지와 기승 독점을 막기 위한 기승 제한 시스템도 운영키로 한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과 노동계는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14년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에도 성찰 없이 경쟁체계만 강화시킨 데 대한 비판이다. △한국마사회가 마련한 ‘선진 경마 제도’ 폐기 △불평등한 계약관계 개선 △마사대부(조교사 면허를 가진 사람 중 마굿간을 배정받는 것) 심사 개선 △마사대부 적체 개선 △기수 적정 생계비 보장 △2017년 말관리사 관련 합의 사항 이행 등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오씨는 “사고는 부산경남 경마장에서 났는데 서울, 제주 기수들만 몇몇 모아놓고 부산 기수는 없는데 상생하고 있다는 위장술을 펼치고 있다”며 “무엇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갔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는 행위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어 “기수가 개인사업자라서 마사회는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라며 “개인사업자가 마사회 제재 등 제약을 받고 조교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개인사업자가 정년퇴직이 어디있나”라며 “개인사업자는 구멍가게 아저씨도 자신의 의지대로 영업을 하는 것이 자영업자이고 70, 80, 90살이 돼도 자기가 하고 싶으면 계속 영업하는 것이 개인사업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씨는 “마필관리사와 기수가 힘들게 말을 관리하고 힘들게 말을 조련해서 돈을 벌어놓으면 마사회는 돈만 챙기기에 급급하고, 마필관리사, 기수가 죽어나가도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이런 법은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 낸 것인가”라며 “대한민국의 법은 마사회 밑에 존재하는 것인가. 이것은 불법성이 있는 게 아니라 당연히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유가족들은 또 경찰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오씨는 “지난 21일 김낙순 한국마사회장 면담 시도 당시 경찰들의 힘에 밀려 들어가지 못했다. 제 딸이 기어서라도 들어가려고 하니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발로 채이고 목이 조여지는 행위를 당했다”며 “유부인이기 전에 연약한 여자에게 가한 경찰의 이런 행동은 유가족에 대한 예의라고는 아예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27일엔 이곳에 시민분향소가 차려지고 고인의 영구차가 들어오는데 고인이 안치된 운구차를 흔드는 짓을 했다”며 “참으로 기가 찼다. 사람에게 칼과 총으로 위협하는 행위보다 더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문 기수 유가족과 함께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계획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문 기수는 부정한 현장을 고발하면서 온몸을 던졌다. 마사회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일부가 부정을 통해 독점하고 있다”며 “마사회의 다단계 구조, 착취의 착취를 위한 구조를 바꾸기 위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진기영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마사회 회장 면담요청 자리에서 경찰력을 동원해 유족에게 폭력을 가한 행위를 규탄한다”며 “촛불이 들어올린 정부가 고인이 안치된 운구차에 손을 대는 행위를 하는가. 이런 경찰이 있다면 검경분리, 공수처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경찰을 규탄하기 위해 항의서한을 제출하러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마사회 측은 기수가 개인사업자라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기수들이 개인사업자이지만 이번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 마사회는 자체적으로 기수와 상생협의를 하며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며 “최근 기수 유일의 단체인 한국경마기수협회와 제도 개선에 합의했다. 당시 부산지역 기수들은 개인 사정상 참석을 못했는데 이를 두고 억측과 비난을 하는 건 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건 발생 직후 자체 감사를 진행했으나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고자 경찰에 수사를 넘겼다”며 “문 기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투명한 원인 규명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