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놓고 입장차만 재확인···“표결해야” vs “맞바꾼 법안들 저지”
한국당, 文 의장의 임시국회 회기 안건 표결 강행 강력 비판···“권력의 시녀로 전락”
26일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 정국' 재연될 가능성 커···국회 직원·보좌진 초긴장

지난 23일부터 필리버스터 정국이 시작된 가운데 여야의 대치 상황도 강화되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3일부터 필리버스터 정국이 시작된 가운데 여야의 대치 상황도 강화되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가운데 여야 간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상대 정당을 향한 비판의 수위가 한층 높아지는 등 공방이 격화되는 모습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됨으로써 공감대 형성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내비치지만, 필리버스터는 서로의 입장차만 재확인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24일 현재(오후 4시 기준)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서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 김종민 민주당 의원, 권성동 한국당 의원 등은 전날 저녁부터 선거법 개정안, 검찰개혁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안,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에 대해 찬반 토론을 벌였다.


토론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지난 협상 과정에서의 한국당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4시간31분 동안의 토론 발언에서 선거법 개정안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선거제 개혁 논의는 20년 넘은 과제였다”며 “1년 토론을 했으면 소수·다수의 의견을 반영해서 타협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당이고, 선거법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당을 향해 “지난해 7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는데 이제 단일안을 만드는 데 합의하거나 1, 2안을 놓고 표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지금 과반수도 아닌 한국당이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 것인가. 알량한 TK(대구·경북) 본산이라고 한 석도 줄면 안 된다는 심리다. 이게 민주주의냐”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국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의 절차적·내용적 불법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임시국회 회기 결정 안건 표결을 강행한 것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은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직접선거 원칙에 위배되고, 군소 야당의 의석수를 늘리기 위한 법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도 검찰개혁안을 처리하기 위해 군소 야당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호영 한국당 의원은 “정의당이 어떻게 해서든 의석수 좀 늘려보려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천하에 없는 제도를 만들어 오고 민주당도 공수처법을 어떻게든 통과시키려고 두 개를 맞바꿔 먹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 의장의 표결 강행에 대해 “본회의에서 표결되고 토론이 되는 모든 안건은 필리버스터 대상이 되게 되어 있다. 이런 걸 자당 이익을 위해 그냥 무시해서 되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같은 당 권성동 의원도 “중립적이지도, 공평부당하지도 않고 청와대와 민주당만 의식한다”며 “저 같으면 쪽팔려서, 자진해서 내려오겠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의장”이라고 힐난했다.


이와 같이 필리버스터 과정에서도 여야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본회의장 밖에서는 지도부 간 설전도 벌어졌다.


민주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예산부수법안, 민생 법안 등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임시국회 회기 결정 안건에 대한 가결 처리로 이른바 ‘쪼개기 임시국회’가 가능해진 만큼 입법 절차를 연내에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 이해를 구하면서 정치 개혁을 시작으로 검찰 개혁, 유치원 개혁, 민생 개혁 법안 처리까지 거침없이 달려가겠다”며 “조금 더디고 번거로워도 인내심을 갖고 국회법에 따라 개혁 완수까지 뚜벅뚜벅 전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오는 26일 열리는 다음 임시국회 본회의에 예정된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예산부수법안, 민생 법안 등 표결 과정에서의 변수를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당 법안들이 이번 임시국회에 일괄 상정된 만큼 다음 임시국회에서는 한번에 한 건씩의 법안 표결을 곧바로 진행할 수 있지만, 한국당이 다양한 회의 지연 방법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에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태세다. 


또한 민주당은 만약 한국당이 회의를 지연시킬 경우 국회선진화법 등을 통해 한국당을 고발하겠다는 계획이고, 가능성이 큰 ‘물리적 충돌’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당 지도부는 문 의장을 향한 비판 여론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문 의장은 의장으로서의 권위와 위신을 팽개치고 좌파의 충견 노릇을 충실하게 했다”며 “그는 파렴치한 의사진행으로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문 의장이 왜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는지 국민은 안다.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는 ‘아빠 찬스’ ‘의원 찬스’인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안다”고 덧붙였다.


한국당은 문 의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하고,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사퇴 촉구 결의안 제출, 권한쟁의 심판 청구 등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강화하고, 중립 의무 위반 시 탄핵이 가능하도록 국회법 개정도 착수하겠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이와 같이 여야의 대치 상황이 한층 격화되면서, 오는 26일 본회의 과정에서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와 비슷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본회의 전 여야 지도부 간 회동 등을 통한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각각 ‘필사완수’ ‘필사저지’ 등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회 직원들과 여야 보좌진이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우려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는 분위기도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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