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가 이용하거나 비어있는 경우 찾아보기 힘들어
임산부가 제대로 정책 효과 누리도록 근본적 고민 필요한 시점

제목 그대로 지하철 임산부석을 지금 이런 식으로 운영할거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취지대로 임산부들이 제도로 효과를 보기는커녕 민원만 늘어나고 피차 불편한 상황만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기자도 거의 매일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런데 그렇게 수천번 지하철을 타면서 분홍색으로 표시된 임산부석에 임산부가 앉은 상황을 거의 본적이 없다. 대부분 임산부일수가 없는 사람이 앉아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잠깐 비어있는 모습을 본적은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조만간 자리를 채운다. 주변에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지인들 말을 들어봐도 이구동성이다.

해당 자리를 비워놔야 하는지 임산부가 오면 비켜야 하는지 논란이라고 하는데 일단은 비워놓는 것이 맞아 보인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운영방침 자체가 해당 자리는 임산부를 위해 비워놓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정책방향을 그렇게 정했으면 개인적 생각은 좀 접고 일단 지키는 게 정상이다. 기자도 신호등이 빨간불이어도 차나 사람이 전혀 안 오면 지나가도 괜찮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하지만 일단 사회가 그렇게 가지 말자고 법으로 만든 것이니 지키고 산다. 한국사회는 윗물부터 아랫물까지, 진보나 보수나 법이나 규칙을 자의적으로 유리하게 판단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회가 늘 어지럽다. 법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임산부석을 비워놓아야 임산부들이 부담 없이 앉는다고 운영방향을 정했으니 따르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임산부석은 그냥 임산부 스티커를 붙여놓은 일반좌석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히 해당 기관에 실태를 이야기하면 개선하겠다,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등등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책기관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계속해서 어떤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면 일단 그 방법은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먹히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후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산부석 관련 민원은 2015년 13건에서 2018년 2만7555건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임산부석이 이렇게 운영되면 정책효과를 못 보는 것은 둘째고 규칙이나 법을 지켜야 하다는 의식 자체가 흐릿해진다. 사람들은 다 같이 신호를 지키다가도 어느 누군가가 무단횡단을 하면 하나둘 따라서 건너기 마련이다. 깨끗한 화장실에 어느 누가 가래침을 뱉거나 바닥에 휴지를 버려놓으면 그다음부터는 더욱 급속도로 더러워진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사람들이 범법행위를 함에 있어 죄책감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이다. 범법 행위는 나쁜 바이러스와도 같아서 어기는 모습을 자주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금방 퍼지게 된다. 임산부석 운영실태를 보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정책당국도 결정해야할 시점이다. 아예 더욱 강제성을 갖도록 해서 확실하게 임산부들이 확실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그냥 비워두라고 하지 말고 공식적으로 일반인도 앉게 하고 임산부가 오면 바꿔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든지 말이다. 일단 확실한 것은 그냥 양심에 맡기고 홍보하는 지금 이 방식은 우리 사회에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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