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특별연장근로인가 사유 추가…게임업계 “사실상 크런치 모드 용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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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해 특별연장근로인가 사유를 추가하면서 ‘크런치 모드’ 부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이제 막 근로환경 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의 이번 방침에 대해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1월부터 확대 적용되는 주52시간 근무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로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 증가’와 ‘시설 및 설비 장애 고장 등에 대한 긴급 대처’ 등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새해부터 해당 사유로 인한 52시간 이상 연장근무가 가능해진 셈이다. 이는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 중이던 300인 이상 기업에도 적용된다.
 
아울러 고용부는 내년 1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 대해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다른 산업군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이 많은 게임업계 특성상, 주52시간 적용 자체가 1년 더 미뤄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사실상 크런치 모드가 부활하는거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낸다. 크런치 모드는 게임 출시 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실시하는 집중 근무 형태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다. 특히 개발 주기가 짧은 모바일게임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크런치 모드는 더욱 자주 발생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게임업체가 밀집해 있는 구로와 판교에는 ‘등대’라고 불리는 업체들이 있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퇴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사무실 불을 밝히면서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는 자조(自嘲) 섞인 별명이다.
 
특히 지난 2016년에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2명의 게임업체 직원이 돌연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가 게임업계의 열악한 근로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조금씩 업무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게임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여겨지던 ‘포괄임금제’가 대형 게임사를 중심으로 폐지되기도 했다. 포괄임금제란 연장·야간근로 등 시간외근로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지급하는 임금제도다. 도입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업체들이 포괄임금제를 야근수당을 주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정부의 특별연장근로인가 사유 추가는 게임업계 근로환경 개선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특히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증가 항목의 경우, 각종 버그와 서버 문제가 일상인 게임업계 특성상,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중소게임사 종사자는 “300인 이상 대형게임사들은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려는 노력이라도 하지만, 300인 미만 중소업체 종사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근로환경에 시달리고 있다”며 “정부의 특별연장근로인가 사유는 사실상 크런치 모드를 용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수도권본부 IT위원회는 지난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완대책’ 명목으로 근로시간 확대 사유를 늘려선 안된다며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일부 게임사 대표들이 52시간 상한제로 인해 게임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강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SG길드 지회장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52시간 상한제 때문에 중국이 6개월 만에 만들 게임을 우리나라는 1년 동안 만든다고 한탄하며 밤새 일하고 있는 사무실을 자랑하듯 광고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며 “다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해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산 게임들이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게임산업 자체를 지키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중국 게임들이 한국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는 상황속에서 지금보다 더 게임 개발 일정이 늦춰지면 중국을 이기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근무시간 자체는 탄력적으로 운영하되, 추가 근무에 따른 보상을 확실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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