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전세퇴거자금대출 이어 정비사업장 대출 규제안 번복
일부지역 전셋가는 되레 오름폭 키워···전세가율 높아 갭투자 만연하던 ‘어게인 2015’ 우려도

은성수 금융위원장, 홍남기 부총리, 김현미 국토부 장관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은성수 금융위원장, 홍남기 부총리, 김현미 국토부 장관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12·16 부동산 안정화 방안이 졸속발표에 누더기 정책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다가 갑자기 터뜨린 부동산 대책은 발표 당일 시장 안정화를 위한 철옹성 같다는 업계 안팎의 평가가 줄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대책 발표 불과 일주일 만에 은행권에 세부지침을 내리는 행정지도를 통해 당초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규제를 더하거나 예외사례를 적용하는 등의 덧칠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섣부른 대책 발표로 시장에 혼란을 주고 땜질식 처방이 계속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관리처분계획인가가 완료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장에 한해서는 시가 15억 원을 초과한 주택에 대해선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 당초 금융위는 16일 발표시점을 기준으로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지 않은 사업장 모두는 대출규제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하루 전인 지난 22일 입주자 모집공고가 난 사업장 이외에도 ▲착공신고된 사업장 ▲재건축 사업단계 중 하나인 관리처분인가를 득한 사업장 등까지도 대출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밝혔다. 금융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행정지도 방안을 최근 은행권에 전달했다.

이번 예외규정에 따라 현재 강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비사업장들은 대출규제에서 자유로워졌다. 대책 발표의 영향력이 미미한 것이다. 최초 부동산 대책 안정화 방안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대출 옥죄기로 인해 이주비, 추가분담금 중도금 대출, 잔금대출이 안 나와 현금청산해야 할 처지에 놓였던 강남구 프레지던스자이, 서초구 원베일리, 강동구 둔촌주공 등의 일부 조합원은 대출이 나오며 입주권 자격을 계속 유지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달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분양릴레이를 펼칠 이들 세 사업장은 현재 강남4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양사업장으로 꼽힌다. 조합원 입주권 거래는 묶여있지만 현재 강남권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지인 만큼, 대출허용은 얼어붙은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온기를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12·16 대책에 따른 정부의 땜질식 작업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책발표 하루 뒤인 지난 17일에는 15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에 대해선 전세퇴거자금대출도 전면 금지하겠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대책발표 당시만 해도 전세세입자의 피해를 우려해 세입자 보증금 마련을 위한 대출은 규제대상이 아니라 대출이 자유롭다고 밝혔던 내용이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들이 이를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해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는 투자대안을 제시하자 서둘러 대출을 막았다.

한편 이번 대책발표 이후 전통적으로 교육수요가 많은 지역의 전세가격은 되레 오르고 있다. 강남, 목동, 중계 지역 등은 교육을 위한 이사수요는 늘 많은데다가, 주택담보대출은 막혔어도 전세자금대출 창구는 여전히 열려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간 보증기관인 SGI서울보증은 임차보증금 한도를 두고 있지 않다. 강남구 대치동 B부동산공인 관계자는 “매매가는 소폭 낮춘 매물이 나왔지만 전세가격은 올랐다. 예년부터 매매가격이 낮아지면 전세가격은 올랐다. 전통적 이사시즌인 1~2월에는 (전세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지난달 전용 76㎡ 최고 전세거래 가격은 5억 원이었으나, 현재는 매물이 5억5000만~6억 원 대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목동 7단지 인근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책발표 영향은 없다. 올 수리 된 매물은 이전보다 10% 높은 가격에 계약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까닭에 일각에서는 이른바 ‘어게인 2015년’을 우려하기도 한다. 안정적이었던 전세가격이 높아지면서 전세가율이 오르면 갭투자를 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된다. 전세가격 상승세와 갭투자를 통한 매매수요 증가는 결국 매맷가를 밀어올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규제가 주택매매수요를 축소시키다 보니 이들은 전월세를 살며 매매 대기수요로 남는다. 게다가 매매가격이 오른 것 대비 전월세 가격이 너무 낮아 전세가격 상승은 기정사실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게다가 현재 전세를 안고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에 대한 규제는 없는 상태다 보니 결국 9억 미만의 주택을 전세끼고 갭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매매가격을 밀어올리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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