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유지에도 이익률↓···20년 안팎 장기근속자 대상으로 “고정 지출 줄이기 위한 행보”
“내년 기업들 목표치 ‘현상 유지’···악순환 끊기 위해 기업 친화 정책 필요” 목소리도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재계 전반에 거센 감원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복수의 기업이 희망퇴직 혹은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한 권고사직 등을 추진 중이다. 기업별로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20년 이상 장기근속 근로자들이 주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이 같은 감원을 실시하는 개별 기업들의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고정비용 감소 효과를 얻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는 내년부터 상시적으로 희망퇴직 공모에 나선다. 최근 체결된 임단협 협상 중 희망퇴직과 관련해서도 노조와 합의를 마친 상태다. 정년에 도달하지 않은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퇴직을 원할 경우 위로금 등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도 희망퇴직을 실시하긴 했지만, 이번과 같은 상시적 희망퇴직 제도 도입은 처음이다.

업계는 최근 수년간 계속돼 온 석유·화학업계의 호황기가 마무리되고, 속속 다운사이클로 접어들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특히 정제 마진 악화 등 유례없던 불황이 점쳐진다는 점에서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SK케미칼은 지난주부터 화학사업부문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통보 절차에 돌입했다.

업체는 연례적인 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다운사이클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철강업계도 유사한 상황이다. 현대제철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말까지 1966년 이전에 출생(만 53세)한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3년치 기본급 및 기본급의 250%에 달하는 성과급, 위로금 250만원, 자녀 1인당 교육비 1000만원 지급 등이 조건이다.

당초 직책 보임자가 아닌 직원들만이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팀장·부서장 등도 희망할 경우 가능하다. 해당 조건에 맞는 직원들 대다수는 과거 강원산업·한보철강·INI스틸 때 입사한 직원들인 것으로 파악된다. 업체 측은 “전직 지원 프로그램의 성격”이라며 희망퇴직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지만, 실적 하락 및 원가 상승 등에 따른 이익률 하락과 무관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항공업계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오는 23일까지 만 50세 이상, 15년 이상 근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이와 별개로 희망자에 한해 최대 6개월의 단기 무급휴직도 실시 중이다. 앞서 5월 한 차례 희망퇴직을 신청받은 바 있는 아시아나항공도 일반직 2400명을 대상으로 최소 15일 최대 2년의 무급휴직 사용을 강제하는 상황이다.

완성차업계도 미래가 불투명하긴 매한가지다. 지난해 3000여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한 한국GM은 올해 창원공장 비정규직 직원 600여명의 계약을 해지했다. 최근에는 르노삼성이 400여명의 희망퇴직을 모집 중이다. 다만 참여자가 극소수에 불과해 희망퇴직 모집 기간 연장 및 강도 높은 구조조정 등의 추가 조치가 단행될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여러 기업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건비 등 고정비용 감소를 목표로 한다. 매출이 유지되더라도, 원가 상승 등 이익률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고정지출비용을 감소해 이를 유지하고자 하려는 의도다. 20년 안팎의 장기근속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일시적인 지출비용은 많지만 절감 효과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도 현상 유지를 목표로 잡은 기업이 상당수다”면서 “내년 경기가 더욱 나빠질 것으로 모두들 보고 있는데, 장기간 부침을 겪었거나 향후 업황 등이 급속도로 악화될 것으로 예견되는 몇몇 업계·업체들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실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 입장에선 불가피한 선택이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단순 퇴직보다 나은 조건에 퇴직할 수 있는 기회로 비쳐질 수 있지만 전체적인 경제 흐름을 놓고 봤을 땐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들이 목돈을 싸들고 회사 밖으로 나오면 대부분 자영업자로 내몰리고, 또 상당수는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악순환을 끊을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전통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주축 산업들”이라면서 “경기 악화 등 갖은 고충으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기업들 입장에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어 그는 “감원을 택한 기업들을 탓하기보다 기업들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게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정부 및 각계의 혜안이 필요한 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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