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대우조선 결함심사 장기화 ‘최대 5개월’···합병, 6개 심사국 모두 ‘승인’ 해야
선주들 질색하는 ‘불확실성’ 커져···“현대重, 합병 실패에도 반사이익 기대 가능”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과의 합병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탓에 속 타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 불확실성이 대두됨에 따라 수주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합병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수록 대우조선해양에 불리한 양상이 짙어질 것이며, 합병이 무산될 경우에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에 막대한 흠집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경쟁분과위원회는 17일(현지 시각) “양사의 기업결합이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선택권을 제한하며 혁신을 가로막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심층심사에 돌입했음을 알렸다. 통상 EU는 예비심사와 일반심사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심층심사 돌입은 일반심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당한 우려가 있었음을 방증한다.

앞서 싱가포르도 유사한 결정을 내렸다. 현재 싱가포르 경쟁·소비자위원회는 양사의 합병과 관련해 2단계 심사를 진행 중이다. 통상 합병 신청 접수 후 1단계 심사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 일반적인데, EU와 비슷한 이유로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에 현대중공업이 추가 소명·설명 자료를 제출함으로써, 2단계 심사에 돌입하게 됐다. 2단계 심사에는 120일 안팎의 시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양사의 합병은 심사 대상국 6개국으로부터 모두 ‘승인’ 결정을 얻어내야 마무리된다. 카자흐스탄만이 승인 결정을 내렸고, 한국·일본·중국·EU·싱가포르 등은 현재 심사를 진행 중이다. EU의 이번 발표로 양사의 합병 가능 여부는 내년 5월께나 돼야 판가름나게 됐다. EU의 발표에 앞서 다른 국가에서 ‘불가’ 판정을 받는다면 EU 심사 결과와 관계없이 합병은 불발된다.

신동원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합병에 성공하더라도 문화와 여건이 다른 두 회사가 한 그룹 안에 정착돼 융합하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합병 결정은 조속히 이뤄질수록 좋을 수밖에 없다”면서 “만약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도 합병에 실패한다면, 특히 대우조선해양이 입게 될 직·간접적 후유증이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도 현대중공업보다 대우조선해양 쪽의 피해를 우려했다. 단순히 피인수주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장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이른바 ‘단골 고객’ 중심으로 영업활동을 펼친다는 점에서 합병 심사가 장기화되거나 결렬될 경우 파생될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이유에서였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선주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라면서 “합병 여부가 결정되지 않는 이상 불확실성은 확대되는 셈인데, 문제는 이 같은 기조가 장기화될수록 대우조선해양의 단골들도 이에 대해 좌시할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설상가상으로 합병이 무위에 그친다면, 불확실성에 따른 타격은 상당할 것”이라 덧붙였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은 LNG운반선 10척, 초대형 원유운반선 10척, 초대형컨테이너선 5척, 초대형 LPG운반선 2척, 잠수함 5척, 해양플랜트 1기 등 총 61억1000만 달러 상당의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당초 목표치(83억7000만 달러)의 73% 수준이지만, 올 한 해 미·중 무역분쟁 등의 여파로 물동량이 감소하는 등 해운업계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발주량 상당 부분이 연기됐다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을 얻는다.

이 같은 선방에는 30년 가까이 거래해 온 업체들의 주문이 밑거름이 됐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그리스의 안젤리쿠시스가 꼽힌다. 1994년 처음 거래를 튼 후, 대우조선해양에만 총 110척의 선박을 발주한 안젤리쿠시스는 올해에도 총 7척의 LNG운반선을 주문했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LNG운반선이 총 10척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최근 LNG운반선 1척을 발주한 마란가스와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을 발주한 마란탱커스 등도 안젤리쿠시스 산하 회사들이다. 미국의 셰브론도 주요 고객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최근 5년 만에 해양플랜트 수주에 성공한 반잠수식 원유생산설비의 발주처도 셰브론이었다. 지금까지 셰브론이 대우조선해양에 주문한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만 14기다. 14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인수 시도만으로 실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합병에 성공했을 경우 거대 경쟁 업체를 비교적 낮은 금액에 손쉽게 품게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 약화가 점쳐져 반사이익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이번 합병에 따른 리스크가 대우조선해양에 지나치게 편중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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