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남은 대국 준비하겠다”

이세돌 vs 한돌 대국 장면 / 사진=NHN
18일 진행된 이세돌 vs 한돌 대국 장면 / 사진=NHN

이세돌 9단이 NHN ‘한돌(HanDol)’과의 은퇴대국에서 지난 2016년 ‘알파고’와의 승리를 재현했다. 이세돌 9단은 바둑 AI 한돌과 첫 대국에서 92수 흑 불계승을 거뒀다. 전문가들은 한돌이 어이없는 실수로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18일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대국이 개최됐다. 이번 대국은 최근 은퇴를 선언한 이세돌 9단측이 고별전 대상으로 인간이 아닌 AI를 지목하며 성사됐다.

◇이세돌 9단, 은퇴대국 인간 아닌 AI 선택…1국서 92수 만에 승리 거둬

이세돌 9단과 이날 경기를 포함해 총 3국이 치뤄지게 된다. 이번 경기의 경우 이세돌이 흑으로 먼저 2점을 놓고 시작하되, 7집반을 한돌에게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세돌이 접바둑을 두는 것은 프로기사가 된 이후 처음이다.

정우진 NHN 대표는 “과거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맞붙던 시점에는 과연 인간이 AI를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승부’나 ‘대결’에 더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부터 열릴 대국은 ‘승패 결과’보다는 인간과 AI가 공존하며 서로에게 이롭게, 조화를 이뤄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세돌은 시종일관 긴장한 모습으로 대국을 진행했다. 이세돌은 대국에 앞서 “과거 어떤 대국보다 긴장된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한돌은 초반부터 강하게 이세돌을 압박했다. 이세돌은 공격보다는 수비에 집중했다. 평소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던 행보와는 정반대였다. 반면 한돌은 초반부터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돌은 빠른 수를 두며 시간을 단축한 반면 이세돌은 고심을 거듭하며 한수 한수에 공을 들였다. 

한돌은 이세돌을 바둑판 한쪽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세돌 9단에게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돌은 중반 전투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중계진에 따르면 중앙 싸움에서 한돌이 실수를 하면서 이세돌의 흑 78수가 묘수로 작용했다. 이후 중앙 백 3점을 내준 한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승부를 포기했다.

사실 대국 직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한돌의 승리를 높게 점쳤지만 이세돌의 묘수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게 만들었다. 첫 경기에서 이세돌이 승리하게 됨으로써, 2국에선 이세돌과 한돌이 서로 동등(호선)하게 대결을 하게 된다. 2국 역시 이세돌이 이길 경우, 3국에선 이세돌이 백으로 변경, 한돌이 흑으로 2점을 먼저 두게 된다.

NHN 관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중간에 흑 78수를 한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남은 대국도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세돌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사실 이번 경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승리와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조금 허무하기도 하다. 한돌이 조금 더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세돌은 1995년 12세에 프로가 된 이후, 조훈현과 이창호에 이어 세계 바둑 최강의 계보를 이어간 전설적인 프로 바둑 기사다. 2000년 32연승을 기록한데 이어 2002년에는 프로 3단으로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이창호가 세운 최저단(5단) 세계대회 제패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에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알파고와 대결에서 네 번째 게임을 이기며,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유일한 인간으로 남았다.

이세돌에 맞선 한돌은 NHN이 2017년 12월 선보인 바둑 AI다. 올해 1월 신민준· 이동훈·김지석·박정환·신진서 9단과의 릴레이 대국인 ‘프로기사 TOP5 vs 한돌 빅매치’를 펼쳐 전승을 기록했고, 8월에는 세계 AI 바둑대회인 ‘2019 중신증권배 세계 인공지능(AI) 바둑대회’에 첫 출전, 3위 수상의 쾌거를 이룬 바 있다.

NHN 대표 / 사진=원태영 기자
정우진 NHN 대표 / 사진=원태영 기자

◇토종 바둑 AI 한돌의 정체는?

한돌은 NHN이 1999년부터 ‘한게임 바둑’을 통해 쌓아온 방대한 바둑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이다. 국내 게임업계 중 자체 개발해 일반인이 상시 대국 가능한 바둑 AI로는 최초일 뿐 아니라 유일하다.

NHN은 지난 2017년 10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같은해 12월 한돌 버전 1.0을 출시했으며, 지난해 12월 2.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특히 지난 1월 출시 1주년을 기념해 한달 간 최상위 랭킹 바둑 프로기사들과 릴레이 대국을 펼쳐 연이어 승리를 거뒀다. 이후 NHN은 지난 7월 한돌을 3.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NHN측은 한돌 3.0의 경우, 프로기사들의 기력을 측정할 때 쓰이는 ‘ELO레이팅’ 기준으로 4500점을 넘는 수준으로 예측한다고 밝혔다. 이는 2016년 이세돌과 대국한 ‘알파고 리’, 2017년 커제와 대결했던 ‘알파고 마스터’보다 높은 기력이다. 최정상권인 신진서, 박정환, 커제 9단은 현재 3600점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NHN은 바둑 이용자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게임 바둑’ 내에서 ‘한돌 9단 대국’, ‘한돌 찬스’, ‘한돌 승률그래프’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돌의 개발 및 서비스 목표는 바둑을 배우고 싶고 바둑을 즐기는 모든 이용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AI를 만들어 보다 재미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NHN은 바둑 프로기사뿐 아니라 일반 유저나 바둑을 전혀 모르는 유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바둑 AI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덤 조절이나 접바둑·페어바둑 등의 다양한 대국 서비스, 기풍을 활용한 신규 콘텐츠 등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울러 NHN은 한돌에서 사용한 기술을 활용해 장기, 퍼즐 등으로의 확장도 계획하고 있다.

평소 동등한 조건에서 대국하는 ‘호선’을 학습해온 한돌에게도 이번 대국은 도전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NHN은 2점 접바둑과 관련해 2달 정도의 테스트 기간만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날 경기에서도 이세돌 9단이 한돌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19일 열리는 2국에서는 호선으로 경기가 진행되는 만큼, 한돌의 제대로 된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NHN 관계자는 “이번 이세돌 9단과의 접바둑은 한돌에게 있어서도 큰 도전이었다”며 “바둑팬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고자 이번 경기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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