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거목 기업인들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별세하며 재계 세대교체 원년으로
재계 2세들 떠난 후 한국기업 제2의 부흥기 맞을지는 의문
2019년 재계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코 ‘세대교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시대 뒤편으로 물러나고, 그 간극을 새로운 얼굴들이 적극 치고나가는 모습이 기업들 전반에서 나타났다.
우선 대한민국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기업인들 상당수가 올해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 인물이 지난 9일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직원 5명의 대우실업을 재계 서열 2위의 대우그룹으로 키워냈다. 지금은 모든 기업들이 부르짖는 ‘글로벌화’를 30년 전에 이미 실천에 옮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으나 당시 경제 관료들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지금의 상황이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김 전 회장 별세 후 불과 5일 후엔 LG그룹의 큰 어른 구자경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에 이어 2대 LG 회장으로 취임한 후 LG그룹을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지난해 구본무 회장에 이어 올해 구자경 회장까지 세상을 뜨면서 LG그룹의 세대교체가 더욱 속도를 받게 됐다.
올해 4월엔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도 세상을 떴다. 조 회장은 70~80년대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공격적 경영을 이어가 지금의 대한항공을 만든 장본인이다. 특히 세계적 항공사들과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하는가 하면 민간항공사 국제협력기구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한국 항공업계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게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비록 말년엔 각종 수사 등으로 고전했지만 국제 항공업계에서의 그의 위상과 항공업계에 공헌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평했다.
올해는 건강과 관계없이 중추적 역할을 하던 이들이 스스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경우도 많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또 오너는 아니지만 전문경영인으로서 회사 발전에 기여했던 조성진 LG부회장과 우유철 현대로템 부회장, 석태수 대한항공 부회장도 일선에서 물러났다. 세대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이전 세대 오너들과 가까웠던 인물들이 자리를 비키게 됐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이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젊은 총수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인물은 구광모 LG회장이다. 지난해 인사로 컨트롤타워를 강화시킨 구 회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특히 LG가 조용하고 별 탈 없이 중간이상의 길을 가던 기존 경영 스타일에서 벗어나 강점을 갖는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 구광모 회장 체제의 특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 역시 조양호 회장 별세 후 주총을 거쳐 확실하게 대한항공의 오너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진칼 대주주 강성부펀드(KCGI)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복장자율화를 이뤄내고 조직 효율화에 나서는 등 흔들리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업계는 조 회장이 어떤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사실상 경영에 저극 나서지 않고 있는 현대차도 세대교체를 이룬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부회장은 올해 들어 현대차 조직의 기존 관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꿔나가는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넥타이까지 맨 정장 차림이 교복과도 같았던 현대차 직원들이 복장자율화로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직급체계도 단순화되고 보고체계도 바뀌게 되면서 경직된 조직문화가 짧은 시간 내 빠르게 변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전기차 등 미래자동차 기술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그룹 전략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 경영권을 잡진 않았지만 오너일가 3세들의 잰걸음 행보도 눈에 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승진이 대표적 사례다. 김 부사장은 지난해에도 승진설이 돌았지만 유임됐고 올해는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하면서 한 단계 성장했다. 이와 더불어 이재현 CJ회장이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과 이경후 CJ ENM 상무에게 CJ 주식 184만주를 증여한 것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재계는 세대교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만 업계에선 기대 뿐 아니라,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경영환경이 변하면서 이전세대들에 이어 그룹의 성장을 또 한 번 이뤄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한 재계 인사는 “창업주나 그 2세들과 달리, 재계 3세들의 경영능력은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분야가 한국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강한 제조업 분야가 아니다”며 “세대교체를 이뤄낸 한국 기업들이 두 번째 부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