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설정한 연말시한 D-19···“美, 우리 갈 길 결심 내리게 해”
美 “北. ICBM 등 고강도 도발 저지르면 안보리 차원서 대응”
통일부 “관련 동향 예의주시···구체적으로 확인해드릴 사항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정한 ‘연말 시한’이 13일 기준 19일 남았다. 북한은 연말 협상 시한을 넘길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어 한반도는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길목에서 중대한 기로를 맞았다. 북미 양국이 연일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특히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전면 거부하며 고강도 도발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나서 북미 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우려가 나온다.

◇갈등 깊어지는 북미···비건 대표 방한 도움 될까

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지난해 6월 1차 북미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우리는 당시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병행적, 동시적으로 행동을 취할 준비가 여전히 돼 있다”면서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하는 데 유연성을 보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저지르면 안보리 차원에서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지난 7일 폐기를 약속했던 동창리 서해위성시험장에서 ‘중대한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로켓엔진 시험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ICBM 발사를 준비 중이라면, 지금까지의 북미 대화는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셈이 된다.

최근 북한은 연말 시한을 강조하면서 날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엔 안보리 회의가 끝난 직후 당일 오후 북한은 회의에 강하게 반발하며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내고 “미국이 우리 갈 길을 결심 내리게 했다”고 했다. 북한의 발언은 지난 9일 발표한 담화서 “얼마 안 있어 년말(연말)에 내리게 될 우리의 최종 판단과 결심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게 되며 국무위원장은 아직까지 그 어떤 립장(입장)도 밝히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연말 시한’을 앞두고 새로운 길을 택한 원인 제공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관측된다. 향후 도발에 대한 경고 및 예고성이라는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은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날을 세우고 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13일 외교부가 발간한 ‘2019 외교백서’에 대해 “남조선 당국은 저들의 주도적 노력에 의해 조선반도 긴장완화와 북핵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된 것처럼 사실을 오도했다”면서 “북남관계, 조미(북미)관계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변들이 어떻게 마련됐는지도 모르는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우선 북한과의 대화 틀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지난 8일 미국 언론 인터뷰를 통해 스티븐 비건 대표의 방한이 확정적이라고 언급했고, 한미 외교당국은 비핵화 대화 재개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 비건 대표의 방한 일정을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건 대표의 상급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한 뒤에 김정은 위원장을 언급하며 “개인적으로 비핵화를 약속했고 장거리 미사일 시험과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북한이 계속 준수할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에 비건 대표가 와서 새로운 셈법이 준비돼 있으니 실무 협상을 하자고 친서를 전달한다면 모르지만, 이번엔 백두산에 올라 항일 빨치산 사진을 찍는 등 새로운 길을 언급했다”고 극적 타결은 어렵다고 봤다. 그는 ICBM은 “결국은 발사할 것”이라면서 “ICBM 뿐만 아니라 우주개발 명목의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발사체를 과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북한은 새로운 길, ICBM 개발을 계속할 것”이라며 “미국이 다급해서 협상에 나오도록 하는 방안을 내년에도 계속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서울역 대합실의 TV 뉴스화면에 전날 북한의 '서해발사장 중대 시험'과 관련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 서울역 대합실의 TV 뉴스화면에 전날 북한의 '서해발사장 중대 시험'과 관련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北의 뒷배’ 중국·러시아는 ‘제재 완화’ 입장 고수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해선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대북제재를 되돌릴 수 없는 ‘가역 조항’을 적용하자고 요구했고, 러시아는 ‘제재완화 로드맵’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양국은 북한이 그동안 핵 실험과 ICBM 발사를 중지하는 선의의 조치들을 취했던 만큼,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해 북미 협상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장쥔 유엔주재 중국 대사는 “가능한 한 빨리 대북 제재 결의의 ‘가역(reversible) 조항’을 적용해 조처해야 한다”면서 “대북제재는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다. 지금은 한반도 이슈의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게 매우 긴급하다”며 제재 조항부터 완화하자고 주장했다.

러시아도 제재 완화론에 힘을 보탰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선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지난해 긍정적인 모멘텀이 있었지만, 안보리 차원에선 긍정적인 조치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에) 상응하는 어떤 것을 제공하지 않을 채 어떤 것에 동의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약들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로드맵을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라면서 상호조치, 단계적 조치, ‘행동 대 행동’ 원칙 등으로 북한의 협력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현재 북한과의 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북미 상황에 대해 “예의 주시 중”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침묵을 유지하며 말을 아끼고 있다.

우선은 중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3~24일 중국 청두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에 한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는 만큼,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에 들러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복귀하도록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방안이다.

다만 통일부는 “정부는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북미 대화 진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다 해 나가겠다”면서 “현재 시점에서 정부가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확인해 드릴 사항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왕성 중국 지린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 매체 펑파이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원래 미국 정부 내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면서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양측의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단 한가지도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은 미국에 대한 위협 수위를 높이기 위해 ICBM을 강력히 만들어 대미 담판 카드의 역할을 강화하려 한다”고 했다.

왕 교수는 미국이 연말까지 북한에 양보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예상하며 “연말 이후 북미 관계는 과거 적대 국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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