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하에선 이사 선임과 관련 막강 영향력 행사 가능···과도한 경영개입 우려해 대다수 기업 도입 망설여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 사진=연합뉴스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으로 SK의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도 해당 사안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데, 특히 ‘SK가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지난주부터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전은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초기엔 내연녀와 자녀가 있다고 고백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노 관장이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노 관장도 함께 이혼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노 관장은 이혼 조건으로 최 회장의 SK 지분 42.3%를 요청했다. 노 관장의 요구대로 지분 재산분할이 이뤄지면 노 관장은 SK 지분의 7.8%를 보유하게 된다. 최 회장에 이어 SK 2대 주주가 되는 것이다.

재계에선 최근 이슈로 떠오른 ‘집중투표제’가 SK에 도입됐다면 이번 재판 결과가 갖는 파괴력이 훨씬 더 커졌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재계 핵심 관계자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소송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키워드는 집중투표제”라며 “SK가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상황에서 노 관장이 승소한다면 7.8%란 지분으로 이사진에 원하는 사람을 넣고 빼기가 훨씬 수월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에게 1주당 1표만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사의 숫자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이사 후보 A, B, C가 있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후보 숫자만큼 3표를 행사할 수 있고 이것을 특정 후보에게 다 몰아줄 수 있다. 한 재계 인사는 “이사를 자기사람으로 앉히거나 누군가를 못 앉게 한다면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집중투표제가 가장 파괴력을 가질 경우엔 이사 선임과 관련된 경우”라며 “원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선임시킬 수는 없다 해도 누군가를 부결시킬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SK가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면 노소영 관장은 부분승소로 지분 일부만 취득한다 해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SK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어 설령 노소영 관장이 원하는 대로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고 해도 최 회장 측과 대결을 벌이려면 외국인 지분 등과 꼭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SK와 SK하이닉스는 전자투표제, SK텔레콤은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

한편 대다수 기업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은 KT, SK텔레콤, 포스코, 한국가스공사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달 정부가 국민연금의 집중투표제 행사를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 적극적 주주 활동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바 있으나 과도한 경영 개입 우려 등이 제기돼 보류됐다. 그러나 집중투표제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향후 어떤 논의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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