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별세 후 DJ와의 관계 놓고 재계 ‘설왕설래’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와의 대담집 재조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1998년 1월 24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1998년 1월 24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후 그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놓고 무성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두 사람이 각별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우그룹의 해체를 예로 들며 그 반대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와 김우중 전 회장의 대담집 <김우중과의 대화>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2014년 해당 대담집에 김 전 회장이 DJ와의 관계에 대해 직접 언급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두 사람만이 알겠지만, 대담집에 담긴 당시 김우중 회장의 발언을 통해 보면 DJ의 신임을 받았던 것은 맞지만, 경제 관료들과는 불편한 관계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대담집에서 신장섭 교수는 김 전 회장에게 DJ와의 관계를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인수위 시절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정치는 잘 알지만 경제는 모르니 김 회장이 경제는 해 달라고. 언제든 연락하자고 해서 자주 만났다. 한 달에 두세 번씩 만나기도 하고.”

DJ의 신임을 받았던 이유에 대해 김 전 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DJ 측근이었던 한 의원이 나에 대해 좋게 이야기해줬던 것 같다. 그리고 DJ가 대통령이 되기 전 미국을 방문할 때 키신저(전 미국 국무장관)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만나게 해줬다. 키신저가 우리 그룹 어드바이저(자문)를 하고 있었으니까.”

김 전 회장의 회상에 따르면 DJ는 김 전 회장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의 생각이 DJ에게 주입되고 있는 것이 곧 알려지지 않았느냐는 신 교수의 질문에 김 전 회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처음엔 알지 못했겠지만 금세 알 수밖에 없게 됐다. DJ가 경제 관련 회의가 있으면 꼭 전경련 김 회장을 부르라고 해서 참석했으니까.(중략) DJ가 ‘괜찮다.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며 이야기하라 하고 나도 젊은 때니까 나라가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 (관료들 의견을) 받아쳤다. 그러면 DJ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김 회장 말이 맞다’ 하고 회의를 끝낸 적도 있다.”

그랬기 때문인지 김 전 회장은 당시 경제 관료들과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는 점을 대담집을 통해 인정했다.

“우리 회사 사장들이 자꾸 찾아와서 ‘얘기 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거다. ‘내가 잘못 얘기한 게 뭐가 있냐?’ 하니까 ‘그래도 얘기 안 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고 한다. 그때 우리 회사 사장들과 아는 사람들이 장관 하고 다 그럴 때였다. 그러니 그쪽에서 애기들이 들어오는 거지.”

‘경제팀과 관계는 계속 나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신 교수 질문에 김 전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생략) 청와대 쪽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대우에 대해 나쁜 보고가 올라갔다고 하더라. 우리 회사 사장들한테도 여러 가지 압박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나도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DJ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다가(대통령 도와 발언하다가) 우리 대우 잘못되면 망신당하겠다. 제발 나를 부르지 마시고 조용히 갔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내가 대통령인데 그것 하나 못 막겠느냐. 책임진다’고 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계속 발언을 한 것이다."

이처럼 그가 생전에 직접 전한 바에 따르면 DJ의 신임을 받았지만, 당시 경제 관료들과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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