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외교부장 사드 배치 이후 4년 8개월 만에 첫 방한
방한 계기 사드 보복 해제·단체 관광 전면 허용 여부 주목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5일 오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예방 전 노영민 비서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 사진=연합뉴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5일 오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예방 전 노영민 비서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 사진=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한중 갈등이 불거진 후 4년 8개월 만에 첫 방한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달 말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을 찾은 것이지만, 왕이 부장이 언급한 ‘새로운 공동 인식’에서 양국 관계 회복의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돼 사드 해빙 무드가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4일 입국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1박2일 방한 일정에 돌입했다. 이번 왕 부장의 방한은 지난 2015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의 참석 이후 약 4년 8개월만이다. 양자 차원의 공식 방한은 2014년 5월이 마지막이었다.

◇모두발언서 이례적으로 ‘美 비판’···中, ‘역할론’ 카드 꺼내

왕이 부장은 지난 4일 오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모두발언에서 “최근 세계 안정과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은 일방주의가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패권행위로 국제관계 준칙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중국은 시종 일관되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평화 외교 정책을 수행해왔으며, 대국이건 소국이건 모두 평등함을 주장하고 국제 관계의 민주화를 주장한다”며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하는 것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서 추가 관세 부과 카드로 중국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미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내정 간섭’은 홍콩 사태로 관측된다.

왕 부장의 발언은 기존 중국 정부 입장과 동일하다. 다만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시도로 한미 간 균열이 가까스로 봉합된 직후 서울을 방문한 것과 통상 인사말과 덕담으로 채워지는 모두발언에서 미국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그는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책임 있는 나라들과 함께 다자주의 이념을 견지하고, 공평과 정의의 원칙을 지키고, 굳건하게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계를 수호하고, 굳건하게 국제법을 기초로 하는 국제질서를 수호하고, 굳건하게 WTO(세계무역기구)를 초석으로 하는 다자무역 체제를 수호할 것”이라며 “나는 우리 사이에 반드시 새로운 공동 인식이 형성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새로운 공동 인식’은 한국이 이 같은 중국의 입장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미중 양국의 무역 갈등이 격화되고, 미국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면서도 한국을 중국 쪽에 가깝게 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중국 외교부의 태도도 이례적이다. 그동안 중국 외교부는 중국 정부 당원의 발언 내용을 별도 공개·제공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왕 부장의 모두 발언이 끝난 직후 곧바로 홈페이지에 발언 전문을 게재했다. 왕 부장의 발언이 급작스러운 게 아닌, 준비한 원고 내용 그대로라는 점을 명시하며 적극적인 외교 행보를 보인 것이다.

중국 외교부가 지난 4일 올린 왕이 외교부장 발언 내용. /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중국 외교부가 지난 4일 올린 왕이 외교부장 발언 내용. /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韓과 밀착행보 보이려는 中이 내놓을 선물은

이번 왕이 부장의 방한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한중 관계 회복은 물론, 사드 사태 이후 내려진 한한령(限韓令)이 해빙 무드로 전환될지 관심이 모인다.

중국은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후임으로 중국 외교부내 이른바 ‘한반도 통(通)’으로 알려진 싱하이밍 주몽골 중국대사를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관계 발전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관측된다. 싱하이밍 대사는 평양의 중국대사관과 서울의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고, 한국어 역시 능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의 한한령 해제와 한국 단체관광 전면 허용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중국 관광객은 최근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사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중국 관광객은 807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올해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500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성사도 관심사다. 왕 부장의 방한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 예고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시 주석은 박근혜 정부 당시 2014년 7월 방한했지만, 문 정부 들어서는 아직 서울을 찾은 적이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한 후 오랫동안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미중 무역협상 등 여러 현안이 맞물려 방한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시기다. 이달 중하순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 쓰촨성 청두로 점쳐진다. 한중일 정상회담은 관례상 리커창 총리가 참석하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베이징을 경유해 시 주석을 만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만약 한중 정상회담이 중국에서 이뤄지면 시 주석의 방한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아울러 내년 1월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중국의 설)도 있다. 이에 현실적으로 시 주석의 방한 시점은 내년 2월 이후가 가장 유력하다. 특히 시 주석이 내년 3~4월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때 한국을 함께 찾을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시 주석 방한이 늦어지는 데는 중국이 시 주석의 방한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중 무역 전쟁 속에서 주변국과의 외교가 중요해진 상황이다. 북핵도 교착상태에 빠진 만큼 한국과의 경제·안보 현안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중국 매체 환구시보는 “한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내년 서울 방문을 예상하고 시 주석 방문 이후 한중관계가 정상화되길 희망한다. 시 주석 방문의 길을 열 수 있을지가 왕 외교부장 방한의 어젠다가 될 것”이라며 “한중관계가 전환기에 있다. 양국간 얼음이 녹고 있지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양국관계 문제 해결을 위해 사드 배치로 발생한 남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이슈에 양국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임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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