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부터 대학 입시 제도 개편 예고되자 대치역은 학원 등록 ‘러시’
겨울방학 강좌 자리 얻으려는 중·고등학생들···‘줄서기 알바’도 고용

4일 오전 대치동 한 학원을 상담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평일인 4일 오전 대치동 한 학원을 상담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올해 수능이 끝나서, 이제는 저희 아이 차례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어요. 유명하잖아요 여기. 일타 강사반에 들어가려면 학원 곳곳을 다녀야 해서 월차도 냈어요.”

“학원 등록해야 하는데 줄 서기 가능할까요? 이번 주 토요일 10시 상담인데···.”

전국에서 입시학원이 밀집해 있는 걸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서울 강남 대치동 한 학원 앞에서 학부모들이 나눈 대화다. 2020학년도 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지 21일이 지나고 수능 성적이 발표되는 4일 대치동 학원가는 ‘조용한 움직임’이 감지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이날 오전 기자가 찾은 대치동 일대 주변 상가 주인들은 “평일도 문전성시지만 특히 금요일에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다”며 “많을 때는 학원 건물 입구에서 대기 줄이 100m정도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대치역 8번 출구 인근 거리는 편안한 옷차림에 검은 롱패딩을 입고, 손에는 각종 학원 자료를 든 학부모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평일인 점을 감안해도 대치동을 찾은 이들은 많은 편이었다. 특히 중·고등학교 겨울방학을 앞둔 이 시점에서, 세칭 ‘일타 강사’의 수업 한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는 학부모들의 눈과 귀는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4일 오전 대치동 한 학원 상담을 기다리는 줄은 밖에도 이어졌다. / 사진=한다원 기자
4일 오전 대치동 한 학원 상담을 기다리는 줄은 밖에도 이어졌다. / 사진=한다원 기자

◇‘일타 강사’ 수업 자리 차지 위해 ‘월차’도 강행

대치역 8번 출구에서 시작해 한티역 2번 출구로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특히 입시학원 거리로 유명하다. 기자가 고3이었던 2013년에도, 그 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치동 학원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거리와 골목 사이사이엔 각종 입시학원으로 여전히 가득했다. ‘수능 시험이 끝났으니 거리가 한산하지 않을까’라는 기자의 선입견을 깨주듯 대형 학원 주변은 겨울방학 특강을 등록하기 위한 초조한 학부모들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겨울방학은 통상 12월 중순에 시작된다. 12월 초인 지금 시점에선 겨울방학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많음에도 학부모들은 “수능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들의 수요를 반영하듯, 입시 학원도 중·고등학교 겨울방학을 맞아 12월 중순부터 문·이과 맞춤형 수업 커리큘럼 표를 학원 문 앞에 붙여두기도 했다.

특히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개편’은 학부모들이 대치동 학원가를 찾는 발걸음을 더욱 분주하게 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28일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르면 202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서울 소재 16개 대학 정시 비중이 40% 이상으로 늘어난다.

또 부모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학교생활기록부 비교와 요소인 동아리활동과 개인 봉사활동, 수상경력도 대입에 반영되지 않고 학생부 자기소개서도 폐지된다.

일반적으로 정시 비중이 늘어나게 되면, 국어·수학·영어 등 교과 성적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학원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학원을 찾는 학생들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치동 학원가에는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교육부의 대입제도 개편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하면, 특히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곧 방학이기도 하고, 아직 수능까지는 2년 정도 남았지만 지금이 오히려 더 공부해야할 때”라면서 “방학이 보름 정도 남았지만, 학원 등록은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대입 정시가 확대되면 학원 등록을 더 해야 안심이 될 거 같다”며 “학원 등록은 점차 힘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부모 B씨 자녀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B씨는 학원 상담을 위해 월차도 냈다. 그는 “대입제도가 바뀌면서 대학 입시 방향을 정하기 위해 학원을 찾아 상담 중”이라며 “요즘은 수능 준비 기간이 따로 없다. 매일이 입시를 위한 날”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막 수능 시험을 치룬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많았다. 이제 막 수능 성적이 발표됐음에도 대치동 학원가를 찾은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 C씨는 “작년 여름방학 때부터 지난달까지 대치동 학원에 다녔는데, 재수할 생각에 다시 오게 됐다”며 “다시 학원을 다닐 생각하면 갑갑하지만, 내년에 정시를 지원할지 수시를 지원할지 다시 계획을 짜려면 지금부터 학원에 다녀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온 줄서기 아르바이트 고용 공고. / 사진=온라인 사이트 캡처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온 줄서기 아르바이트 고용 공고. / 사진=온라인 사이트 캡처

◇학원 찾는 학부모들 위한 ‘줄서기 알바’ 수요도 늘어

대치동 학원 한 자리를 꿰차기 위한 학부모들 영향으로 학원 줄을 대신 서주는 이른바 ‘줄서기 아르바이트(알바)’도 대세다. 대치동 일대 유명 입시학원들의 강좌 등록을 위해 학부모들이 앞다퉈 줄서기 대행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줄서기 대행은 돈을 받고 티켓이나 제품 구매, 식당 입장을 위해 대신 줄을 서주는 알바를 뜻한다. 학원 신청 줄서기 알바는 평균 2만원 선이다. 실제 포털 검색란에 ‘줄서기 알바’를 검색하자 한 사이트에만 수십 개의 구인 글이 게재돼 있었다.

학원 등록을 위해 밤새워 줄을 서고 대행업체에게도 손을 벌리는 이유는 상당수 인기 학원들이 ‘오프라인’ 등록만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원들은 인터넷 등록은 신청 폭주로 접속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현장 등록을 고집하고 있다.

등록 후에도 줄서기 알바는 이어진다. 인기 많은 강사 강의는 수백명이 듣는 대형 강의실이기 때문에, 뒤쪽에 앉으면 집중하기 어려워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줄서기 알바를 택하고 있다. 일부 학원은 강의실 입장 번호표를 배부하기도 한다.

일부 대치동 학원은 강의실 입장 또는 학원 상담을 위한 번호표를 배부하고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일부 대치동 학원은 강의실 입장 또는 학원 상담을 위한 번호표를 배부하고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줄서기 알바는 잘 눈에 띄지 않을뿐더러,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기자는 줄서기 대행업체와 접촉해봤다. 기자가 구인 사이트에 등록된 번호로 전화를 걸자, 업체는 전화를 받는 대신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세요’라는 문자 한통을 보내왔다.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빨랐다. 기자가 “사이트 보고 연락드린다. 줄서기 가능하냐”고 묻자, 업체는 “시간과 장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기자가 또 다시 “몇 시간 정도 줄설 수 있냐”고 하자, 업체는 “대기 시간을 알려드리지 않는다. 줄만 서드린다”고 답했다.

대치동 입시학원 한 관계자는 “방학 시즌이 되면 학원을 찾는 학생들은 매해 많았지만, 이번 대입 개편안이 발표되면서 관심이 더 많아진 건 사실”이라며 “학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입시 설명회, 입시 전략 등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현재 서울은 강남·대치·반포·목동·중계동을 빼면 입시학원은 전멸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강남·대치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라며 “지금 고1~2학년을 마친 학생들은 현재 논술 전형도 줄어 수시로 대학가기 어려운 측면에 놓였다. 수능으로 가려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이고, 강남은 특히 내신으로 대학을 잘 가지 못했던 지역이라 수능에 관심이 더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 소장은 “수능 자체가 단기간 준비하기 어렵고, 겨울방학 때는 지방에서도 학생들이 몰려 대치동 학원가가 과열되는 모습”이라며 “올해만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학습량을 높이고 몰입시키기 위해 학원을 찾는 학생들은 많아 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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