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비용 경감위해 순환근무·임원 20% 퇴출···불투명한 미래에 석학들도 원전 외면
한국형 원전 주도한 엔지니어들 공기업 등으로 속속 떠나···‘허리’급 중추 인력 사라져 노쇠화 우려도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의 여파로 ‘원전 생태계’가 서서히 고사 중이란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본격적인 후폭풍은 이제부터”라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관련업계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기존 기술자들이 해외로 떠나고 신규 인재영입이 단절됐기 때문인데, 원전 생태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두산중공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4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국내 원전산업의 대표기업으로 꼽히던 곳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한국형 원전’ 역시 두산중공업이 제작했다. 원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만 성공한 가스터빈을 개발하는 등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면서부터 불거졌다.

업계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두산그룹의 핵심으로 가장 높은 이익률을 보이던 계열사였다”면서 “두산건설부터 촉발된 그룹 내 재무위기로 두산중공업 역시 자금사정이 악화된 측면도 분명 있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망이 상당히 불투명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현재 두산중공업의 위기의 원인을 그룹 내 유동성문제보다 탈원전 정책이 크다고 본 것이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13명의 임원에게 퇴사를 통보했다. 당초 전체 임원이 65명이던 것을 감안하면 2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원전가동률 급감과 더불어 신한울 3·4호기 등의 건설이 무위로 돌아가며 추가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 따른 수순으로 풀이된다. 인건비를 절감해 적자폭을 낮추려는 움직임인 셈이다.

앞서 두산중공업은 과장급 이상 직원들의 임금을 낮추고, 2개월 단위의 순환휴직을 실시함과 동시에 일부 직원들의 계열사 전출을 도모하는 등 고정비용 지출 경감을 추진했다. 탈원전으로 촉발된 적자난을 비용절감을 통해 타개하고자 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국형 원전개발에 힘을 보탠 주축 엔지니어들이 이탈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속속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같은 공기업으로의 이직자가 상당수 발생했다”면서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해 사기업보다 안정적인 공기업으로의 전직을 택한 셈인데, 최근에는 국내 원전생태계 자체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한 이들이 해외기업으로의 이직을 단행했거나, 타진 중이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비단 이직자가 발생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두산중공업은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곳인데, 후배들에 기술을 전수하고 향후 그룹을 이끌어야 할 ‘허리’에 해당하는 엔지니어들이 이탈했다는 점”이라면서 “최근에는 주니어급들마저 속속 빠져나가면서 기업의 노쇠화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업계 관계자들도 인력유출이 탈원전의 가장 큰 부작용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기술직들은 해외로 이직하고, 관련 산업이 불투명하면서 진입하려는 청년층의 비중이 대폭 감소함에 따라 불과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원전생태계는 특정 공기업 또는 대기업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숱한 협력·하청업체들의 생존이 걸려있다”면서 “갖은 부작용을 감수하며 탈원전 정책을 고수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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