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예탁결제원, 한국자금중개 등 노조 “관료출신 인사 반대”
한국자산관리공사, 금감원 수석부원장 등 인사에도 악영향 우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열린 ‘부적격 기업은행장 선임 반대 기자회견’ 현장 모습/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열린 ‘부적격 기업은행장 선임 반대 기자회견’ 현장 모습/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금융기관장 인사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 기관장들의 임기만료가 다가오고 있지만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낙하산 인사’ 반대 여론에 관료 출신 후보들의 거취가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관료 출신 인사들의 하마평으로 인해 갈등이 일고 있는 곳은 기업은행과 한국자금중개, 예탁결제원 등이 있다. 이들 기관의 인사가 빠르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같은 시기에 맞물려 진행되는 한국자산관리공사,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인사까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기관장 교체를 앞두고 있는 일부 금융 공기업들의 내부에서는 관료 출신 수장을 반대하기 위한 움직임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예탁결제원 지부는 지난달 5일 성명서를 통해 “신임 사장자리는 퇴직관료의 전유물이 되면 안된다”고 비판했으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 지부는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낙하산 행장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행 노조는 서울 중구 본사 1층에 특별 부스와 시식대를 마련해 캠페인성 투쟁도 펼치고 있다. 현재 기업은행 노조는 ▲함량 미달 낙하산 ▲권력 지향형 인사 ▲IBK 공공성 파괴자 ▲밀실·라인 인사 ▲꼰대 리더십 등을 차기 행장의 부적격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조(이하 금노) 차원에서도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금노는 지난달 22일 성명서를 통해 “차기 기업은행장 인선은 ‘낙하산 인사 배제’를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29일에는 성명 발표에만 그치지 않고 ‘부적격인사 기업은행장 선임 반대 기자회견’을 실시했다. 지난 2일에는 허권 금노 위원장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찾아가 “낙하산 인사를 실시할 경우 총선에서 여당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금노는 한국자금중개 사장에 대해서도 지난달 26일 성명을 발표했다. 금노 측은 “한국자금중개는 그간 관료 출신 낙하산의 폐해를 심각하게 겪어왔다”며 “전임 이현철 사장만 해도 고위 공직자 생활을 끝낸 관료가 애정도 없는 민간 기업에 낙하산 인사로 내려왔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폐해들을 직접 증명한 인물”이라며 “낙하산 인사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흐름의 시작은 기업은행장에 대한 하마평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 은행장의 임기가 6개월 이상 남은 올해 상반기부터 외부인사 하마평이 나오기 시작하자 기업은행 내부와 노동계 쪽에서 조금씩 반발 여론이 쌓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3명의 은행장을 연속으로 내부에서 배출하며 예전의 관행에서 겨우 벗어난 상태”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차기 기업은행장 후보에 여러 관료 출신 후보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전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예탁결제원이나 한국자금중개 등 일반적으로 관료 출신 인사들이 기관장을 맡아왔던 곳으로까지 유사한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들 기관의 갈등으로 인해 시기가 맞물려 있는 다른 기관의 인사 구도도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일례로 기업은행장 또는 예탁결제원 사장으로의 이동이 점쳐졌던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의 거취가 불투명해지자 금감원 수석부원장 선임이 예상되던 이병래 예탁결제원 사장의 행선지도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또한 그동안 예택결제원 사장 후보로 거론됐던 김근익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후보로도 떠오르고 있어 캠코 사장 역시 그 향방을 알 수 없게 됐다. 예탁결제원 사장 후보에는 금융위 출신 이명호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도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캠코 사장에는 문성유 기획재정부 기조실장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한국자금중개 사장이 유력시되던 이승철 전 기재부 재정관리관도 노조 반대에 부딪혀 결정이 미뤄진 상황이다.

한 업계관계자는 “여러 하마평과 가설만 난무할뿐 어느 하나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과거에는 금융 공기업 CEO자리가 퇴직 관료들의 자리로 인식됐지만 점차 분위기가 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요 인사들이 이동할 자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리해야 하는 당국의 입장도 복잡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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