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동산담보대출 2배 이상 증가···1.3조원 규모
더 늘리라는 금융당국 요구에 고민 깊어지는 은행권

4대 시중은행 동산금융 현황/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4대 시중은행 동산금융 현황/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금융당국이 혁신금융의 일환으로 동산금융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 들어 두 차례 은행장들을 모아놓고 동산금융을 강조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지만 은행은 금융당국의 채근이 다소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의 동산담보대출 잔액은 올 6월말 기준 1294억3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619억1900만원)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동산대출이란 부동산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대출 한도가 임박한 스타트업·중소기업 등에 기계설비, 재고 자산, 농축산물, 지식재산권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뜻한다.

이전까지 동산대출은 담보 가치 측정이 어렵고 리스크 우려가 있어 은행권에서 적극적으로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동산금융 확대를 독려하면서 은행 역시 이에 부응한 것이다.

지난 7월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동산금융 활성화를 강조하기 위해 은행장들을 소집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초청 조찬 강연회에서 중소·혁신기업을 위해 은행권이 동산금융을 확대해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2020년 말까지 동산담보대출을 6조원으로 확대할 것을 예고했다. 올해 말에는 1조5000억원의 실적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9월말 기준 전체 동산담보대출 잔액은 1조3000억원으로 전년 말에 비해 6000억원 증가했다. 통상 연말에 기업대출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3분기에 목표치를 2000억원가량 남겨둔 셈이라 은행권 동산담보대출 총액은 연말 목표치를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년 새 주요 시중은행의 동산대출 잔액이 2배 이상 급증하면서 은행권이 동산금융 확대에 주력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동산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선 당국의 이런 채근이 다소 부담스럽다. 부동산 담보와는 달리 동산대출은 담보물에 대한 정확한 가치 추산 및 리스크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은행권의 동산담보대출 활성화 독려와 은행별 건의사항을 듣기 위해 열린 간담회에서 한 은행장이 “동산대출을 늘리려면 담보물의 유형별 데이터 제공이 필요하다”는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에 최 전 위원장은 “담보 가치 측정, 이런 이야기 하지 말고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반응한 바 있다.

대출 건전성 관리에도 힘써야 하는 은행으로선 금융당국의 주문이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다양한 담보를 활용해 기업대출을 지원하는 등 동산금융의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동산대출 확대도 좋지만 리스크 관리도 신경 써야 하는 은행 입장에선 동산 담보가 부동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아 취급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아직까지 동산 담보물을 거래할 수 있는 기구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현재 시스템상으로는 동산대출을 크게 늘리기는 쉽지 않다”며 “은행권에 동산금융을 독려하는 건 좋지만 독려가 지나쳐 압박이나 은행별 실적 세우기가 될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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