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회장 취임 후 ‘자율복장’ 실시, 그룹 내부 결속 방안으론 ‘부족’ 지적···강성 노조 재집권에 사내 갈등 불씨 커져
현대重 대우조선 인수 발표 후 중국·일본 조선업계 몸집 키우기 움직임···노조는 EU 찾아가 결합승인 반대 캠페인 펼치는 등 엇박자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권오갑 회장 체제의 출범을 알린 현대중공업그룹을 상대로 한 중국·일본 등 경쟁 업체들의 견제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합병·제휴를 바탕으로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한국 조선업계를 압박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상황인데,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의 대내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이날부터 수도권 및 비(非)현장 근무자를 대상으로 자율복장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권 회장이 다소 경직됐다는 평가를 받는 조직문화를 탈바꿈시켜 유연화를 꾀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실제 관련 제도는 권 회장이 부회장 재임 시절부터 추진해 회장 취임과 함께 최종 결재를 내린 사안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내부 결속을 다지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통상 조선소 등 현장에서는 근무복을 착용하기 때문에 자율복장 적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자율복장이 가능한 근무자가 600여명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내부 결속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며, 노사가 협력 가능한 밑그림이 진정성 있게 그려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온 배경에는 경쟁 업체들의 견제가 심화하는 가운데, 사내 갈등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가 컸다. 지난달 27일 노조는 제23대 지부장 선거를 실시했다. 2014년부터 줄곧 실권을 쥐어 온 강경 노선의 분과동지연대회의 소속 조경근 지부장이 당선됐다. 조 지부장은 전임 집행부 사무국장 출신으로 전임 집행부의 연속성을 띠는 인물로 분류된다.

현장직 출신으로 회사와의 대화 및 타협을 통한 실리주의 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한 유상구 후보가 대항마로 나섰으나, 여전히 노조 내 표심은 강경한 투쟁 노선을 택한 셈이었다. 현재 노조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간 합병에 반대하는 중이다. 합병과 관련해 주요 관련국의 결합심사가 이뤄지는데, 가장 큰 난관으로 꼽히는 유럽연합(EU)을 찾아가 결합 승인 반대 캠페인을 벌였을 정도다.

분과동지연대회의는 유독 권 회장과 악연이 깊다. 2014년 이곳 출신의 정병모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노조의 실권을 잡아 왔는데, 그와 동시에 현대중공업 노조도 강성으로 돌아섰다. 같은 해 9월 권 회장이 현대중공업 대표로 취임함과 동시에 임금협상이 실시됐는데,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파업 19년 만에 파업이 실시되기도 했다.

특히 올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및 한국조선해양 설립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노사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노조가 주총장을 점거하면서까지 법인분할 및 합병을 반대했지만, 회사 측은 주총장을 긴급 변경해 이를 가결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관련내용을 총괄해 온 인물이 권 회장이라는 점에서 새 집행부와의 관계도 밝지만은 못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신동원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노조가 해외에까지 나가서 합병 반대를 외친다는 이유로 단순히 국익을 해친다며 혀만 찰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행동하는지에 대해 심도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대중공업 노조와 대우조선해양 노조들을 상대로 어떤 안정화 방안이 있는지, 합병에 성공하면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사안들을 어떻게 실현할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이들의 반대 여론을 녹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경쟁 국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이 같은 노력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신 교수는 강조했다. 업계 내부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간 ‘빅딜’이 발표된 후 중국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합병이 진행 중이며, 일본 내 업계 1-2위 간 제휴 계획이 나왔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중국에서는 1위 조선사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2위 중국선박중공그룹(CSIC) 간 합병을 통해 세계 최대 조선사 ‘중국선박공업그룹(CSG)’이 설립됐다.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계획이 발표된 후 중국 당국이 거대 조선사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번 합병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마바리조선과 저판마린유나이티드(JMU)의 제휴 계획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1위 이마바리조선 관계자는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휴를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한국·중국의 빅딜을 예로 들기도 했다. 겉으로는 한국과 중국을 경계한 때문이라는 뉘앙스지만, 최근 중국과 일본 조선업계 간 기술 제휴 및 공동 수주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에서 결론적으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몸집을 불린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한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간 합병을 위한 결합심사가 진행 중이다. ‘승인’ 결정을 내린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한국·중국·일본·싱가포르·EU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합병은 이들 6개국의 동의를 얻어야 성사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합병 심사를 앞두고 있는 중국에서의 승인은 원활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과독점을 경계하는 성향의 EU에서는 다소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점쳐진다.

일본의 경우 최근 양국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악화됐다는 점에서 다소 까다로울 것으로 예견된다. 특히 일본 조선업계의 반발이 크다. 지난 6월 사이토 다모쓰 일본조선공업회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이마바리조선과 JMU의 경우 기술 제휴 및 합작사 설립 등을 계획한 만큼 결합심사 대상은 아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