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언2] 기존 신도시, 상실감은 위기감으로···‘신도시 갈등’에 대응 필요
주택공급 위주 벗어나 지속가능성 높이는 방향 목표 설정해야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청와대 인근에서 '3기 신도시 백지화 국민연합'이 신도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8일 청와대 인근에서 ’3기 신도시 백지화 국민연합‘이 신도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데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너무 힘들어요. 일산 여기는 말 그대로 베드타운(bedtown)이예요. 3기 신도시(고양 창릉)가 생기면 저희는 (운정과 창릉신도시) 그 사이에 껴서 더 힘들어 질거예요.”

1기 신도시 경기도 일산에 사는 이승진(35)씨의 걱정스러운 반응이다. 신도시 갈등의 근원은 표면적으로는 상실감이다. 정부는 수도권 신도시 정책을 발표하면서 으레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해왔다. ‘자족도시’, ‘균형발전’,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수식이 붙은 청사진이었다.

하지만 지난 30년 간 정부의 신도시 정책을 지켜본 전문가와 지역민의 평가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이다. 특히 신도시 지역민들은 시기마다 발표되는 추가 신도시 조성 과정을 지켜보며 씁쓸해 한다. 시간이 갈수록 신(新)도시는 구(舊)도시로 변하고, 개발 후 보완 조치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관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난 5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3기 신도시를 골자로 한 ‘수도권 주택 30만호 공급방안’ 제3차 신규택지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관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난 5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3기 신도시를 골자로 한 ‘수도권 주택 30만호 공급방안’ 제3차 신규택지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위기감’으로 확산하는 ‘신도시 갈등’

서울 반경 60㎞ 이내 조성된 수도권 신도시는 1기 발표 후 30년 만에 3기 신도시 예정지를 포함해 모두 20곳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중․소규모 택지개발 지구 등을 합하면 서울을 중심으로 거대한 ‘신도시 전시장’이 형성된 셈이다.

추가 조성되는 신도시로 인한 기존 신도시의 집값 하락 우려와 교통 등 각종 인프라 불편에다, 터전인 도시의 위상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상실감은 위기감으로 변했다.

위기감은 신도시 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 5월 3기 신도시 추가 지정 후 드러나고 있는 신도시 정책에 대한 반발은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는 ‘집값 안정? 멈춰라! 3기 신도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신도시 대상지역 주민과 단체 관계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불만 소리를 쏟아냈다. 대규모 도시 개발로 인한 환경 훼손 문제부터 보상 및 이주대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박수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 부본부장은 3기 신도시를 ‘섬세하지 않은 토건 정책’이라면서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박 부본부장은 “창릉신도시 등 3기 신도시는 대단위 공급 위주의 정책”이라며 “(3기 신도시로) 지금 사는 지역이 장차 퇴락하고 가치가 내려갈 위험이 커지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면서 정부의 계획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 5월 28일  28일 경기도 고양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무분별한 신도시지정, 무엇이 문제인가? 긴급 현장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3기 신도시 원천무효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8일 28일 경기도 고양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무분별한 신도시지정, 무엇이 문제인가? 긴급 현장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3기 신도시 원천무효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기 신도시 발표 때만하더라도 신도시 구역 내 원주민과 정부의 갈등이 한 축을 이뤘다.

하지만 2기 신도시 사업부터는 기존 신도시와 새롭게 조성되는 신도시 간의 갈등으로 논란의 중심이 이동하는 분위기다.

특히 대규모 신도시 인근에 또 다른 대규모 신도시를 지으면서 이해관계가 상충하며 갈등의 양상도 달라졌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단기적인 신도시 계획이 주는 일종의 경합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이 사는 신도시가) 쇠락하는 것이 한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신도시’ 면면 한 눈에 볼 ‘데이터’도 없다

시사저널e 신도시30년 기획팀은 신도시 정책 대안을 찾는 것은 현재 조성된 신도시의 면면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도시를 이루는 사람과 생활, 환경 등 다양한 각도에서 도시 여건을 정확히 파악해야 신도시별로 느끼는 위기감의 근원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와 LH 등에서 관련 자료를 찾고자 했지만, 신도시 개발 초기 자료만 있을 뿐이었다. 현재 신도시의 면면만을 볼 수 있는 적합한 통계 데이터나 현황 자료는 거의 없었다.

지난 30년 간 신도시 사람들은 들고 나고를 했고, 시대도 바뀌었지만 신도시의 지금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셈이다. 개발 초기 그어놓은 신도시 구획과 달리 통계청의 데이터는 읍·면·동 행정구역으로 나눠 있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    

기획팀은 우선 신도시 개발 계획도를 기준으로 신도시 구획에 포함된 행정구역상 읍·면·동을 추렸다. 실제 신도시 구획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도 구획과 경계가 애매한 생활권 읍·면·동은 포함했다. 이에 따라 실제 신도시 구획과 읍·면·동 경계선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총 20개 신도시 중 9월 현재까지 구획이 지정이 되지 않은 3기 신도시와 인천 검단과 평택 고덕을 제외한 13개 신도시를 주로 살폈다. 신도시별로 추려낸 읍·면·동을 기준으로, 아파트 평균 시세는 부동산 전문 사이트(직방)를 참고했고, 나머지 현황 조사를 위해서는 국토교통부 자료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등을 통해 관련 데이터를 수집했다.  

◇ 13개 신도시 3.3㎡당 1649만 원···도시별 최대 5배 차이

관련 대시보드 바로보기☞<데이터로 보는 신도시30년> 

데이터 출처=부동산 전문사이트 ’직방‘ ⓒ시사저널e

우선 민감한 주제인 집값부터 살펴보자. 시사저널e가 조사한 13개 신도시 아파트 시세 평균가는 3.3㎡당 1649만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신도시별로 편차는 컸다. 양주신도시는 695만 원으로 가장 낮았고, 이어 파주 운정 1004만 원, 김포 한강 1069만 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성남 판교는 3344만 원, 위례는 3020만 원으로 3000만 원대를 넘어섰다. 평균 시세가 가장 비싼 곳과 싼 곳의 차이가 5배 가까이 격차를 보이는 셈이다. 신도시 발표 후 30년이나 지난 1기 신도시 중에는 군포 산본이 1189만원으로 가장 쌌고, 성남 분당이 2325만원으로 가장 비쌌다. 

물론 신도시에서 나타나는 부동산 시세 편차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서울과의 거리 차이로 집값이 좌우될 수 있는 만큼 신도시 정책과 단순히 연결해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동일한 2기 신도시로 조성돼 인접한 화성 동탄1(1122만원)와 동탄2(1482만원)의 경우 가격 편차가 있었다. 화성 동탄1의 시세 평균가는 파주 운정이나 김포 한강과 엇비슷한 양상이다. 동일한 이름의 ‘신도시’지만 그 몸값을 따져 보면 처지는 다른 셈이다.

◇ 신도시 기수별로 종합병원 소요시간 편차 뚜렷

더 큰 문제는 생활 편의성 측면에서 나타나는 편차다. 2기 신도시 김포 한강의 ‘문화시설 1개당 평균 인구수’는 3만8531명으로, 양주 5985명에 비해 6배 많았다. 화성 동탄2는 2만9090명으로 상대적으로 많았고, 군포 산본(6609만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했다.

ⓒ시사저널e
데이터 출처=통계청 지리정보서비스ⓒ시사저널e

문화시설은 도서관, 영화관, 사적지 등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 및 사업장 등을 의미한다. 문화시설 1개당 평균 인구수가 많다는 것은 문화 생활 과정에서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사적지 등 특정지역 편중에 따라 왜곡 현상이 있을 수 있고, 아직 조성 중인 단계에 있는 경우도 있는 만큼 지역별 편차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거주지에서 종합병원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하루 평균 기준)도 지역별 편차가 심했다. 부천 중동과 군포 산본이 각각 4.6분과 5.5분으로 상대적으로 이동시간이 짧았다. 양주는 18.5분, 위례 16.6분, 파주 운정 15.8분으로 상대적으로 길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1기와 2기 신도시의 편차다. 1기 신도시는 8분 미만으로 소요시간이 측정되지만, 2기 신도시 8곳 중 김포 한강과 화성 동탄1을 제외한 6곳에서 11.7~18.5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신도시 공존’의 해법이 필요하다

모든 정책에는 주된 목표가 있게 마련이다. 정부로서는 당면한 과제인 서울 과밀화 해소와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1차적인 정책 목표를 잡았을 수 있다. 하지만 정주여건과 교통, 생활 편의성 등 다양한 정주민의  관점에서 정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신도시 정책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족 신도시 개념의 대표 사례인 영국 밀턴 케인즈(Milton Keynes)는 마스터플랜에서 도시 조성의 목표 6개를 제시했는데, △선택의 자유 △이동의 편의 △균형과 다양성 △매력적인 도시 △주민의 관심과 참여 유도 △효율적인 자원 이용 등이다. 서울 과밀화 해소나 부동산 가격 안정 등 특정 정책을 위한 부수적인 수단으로서 신도시 조성의 목표를 설정하기 보다는 도시 그 자체에 집중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신도시를 통해서 어떤 정책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가가 중요하다”면서 “지금으로선 명확하게 주택가격 안정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주택시장이 한 몸으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파편화돼 있는 데 정책적인 큰 의미가 없다”면서 “과연 집값을 잡기 위해 신도시를 짓는 게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득인지 실인지 따져볼 시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 ‘판박이 비판’ 신도시의 차별화가 필요 

ⓒ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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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정책 목표의 새 그림을 짜기 위해서는 그동안 진행된 신도시 정책 과정을 되돌아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1기 신도시 때부터 자족도시와 차별화라는 관점을 정부에서 이야기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도시 전문가들은 기존 신도시 정책의 문제점을 ‘판박이 도시’에서 찾고 있다.   

1기 수도권 신도시의 주거용지 비중은 평균 36%가량으로 산본 44.4%로 가장 높았고, 나머지도 30%대 초반의 비중을 보였다. 이후 조성된 2기 신도시는 산업시설용지 개념이 적용됐지만 주거용지 비중은 판교와 고덕, 광교를 제외하면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1기 신도시 때는 빨리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여서 도시별로 큰 차이가 없었고, 2기 신도시도 지역별로 특화할 만한 점이 없었다”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중요시 하는 인식 하에서 신도시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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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동안 비판이 있었던 신도시 개발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반대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3기 신도시 때부터 자족도시와 도시별 특화에 공을 쏟을 계획이다. 하지만 기존 신도시에 대한 배려 대책도 신경 써야할 중요한 대목이다. 정부가 지난 10월 31일 수도권 교통 문제 해결의 가이드라인인 ’광역교통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3기 신도시를 포함해 신규 택지 추진계획에 따른 1, 2기 신도시 교통개선안을 내놨다.

이 개선안이 기존 신도시의 교통 편의성을 실질적으로 향상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신도시를 중심으로 추가 조성되고 있는 택지개발지구와 산업단지 등 배후 지역과 연계해 신도시 인접 일자리 확충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존 신도시의 기능 향상 대책 등이 필요하다.

◇ ‘신도시 사람’에 주목하고 지속성 가져야

 

‘도시’는 ‘사람’과 닮았다.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그곳을 채울 사람이 달라지고, 어떤 사람이 도시로 유입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신도시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가는 만큼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도시도 변하는 데 신도시 정책 역시 그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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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를 이루는 주민에 주목하고, 50년 간 끊임없이 신도시의 진화를 추진하는 프랑스의 SCoT(Schéma de cohérence territoriale․도시 일관성 계획) 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례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50년 신도시’ 마른 라 발레는 아직 진화 중>

SCoT는 프랑스 수도권 신도시인 마른 라 발레(Marne-la-Vallée) 내 지방자치단체(코뮌)가 참여하는 ‘도시권 공동체’가 지역개발과 경제, 환경, 문화 등 도시 전반의 일관성 있는 개발정책을 위해 도입한 지속가능한 개발 시스템이다.

10~15년 단위로 정비되는 SCoT는 지역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재작성하는 1단계부터, 균형발전 및 지속가능한 개발 계획(PADD)을 조율하는 2단계, 구체적인 지침과 목표(DOO)를 재설정하는 3단계, 기관 및 관련 단체들이 행정조율을 하고 주민의 찬성을 얻어, 최종 법적효력을 갖는 마지막 4단계로 이뤄진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와 방식과 구조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지만, 주민과 공유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신도시 개발 모델로는 눈여겨볼 만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신도시는 중장기적인 계획이나 심사숙고한 계획이 아니라 임시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계획으로 내놓다 보니 문제가 많았다”면서 “2기 신도시가 다 조성되기 전에 3기 신도시를 발표하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신도시를 만드는 취지와 방법, 시간을 고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동안 서울 집값 안정화시키도록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차원에서 신도시를 추진해온 것”이라고 지적하고, “정책의 계획부터 실행까지 계획적으로 이뤄지고 신도시 정책이 과연 무주택자를 위한 것인지, 국민을 위한 것인지 판단해서 신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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