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사적 제재 조치로 강제성·실효성 낮아
대(代)지급 등 국가 지원제도 절실···국회 입법은 ‘걸음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이혼 전 배우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공익활동일까,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범법행위일까. 최근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웹사이트 활동가가 법정에 섰다. ‘개인의 명예’와 ‘아이의 생존권’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법원이 어떠한 결과를 내놓더라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시사저널e는 3회에 걸쳐 이 사건 재판의 쟁점과 국내 양육비 이행 실태, 제도 및 입법 등 현황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8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8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해 명예훼손으로 법정에 선 활동가 구본창(57)씨는 이러한 공개 행위가 단순히 ‘사적’ 구제에 그치지 않고 ‘공적’ 관심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구씨는 온라인 웹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를 통해 도움을 받은 피해자들과 양육비 미지급 피해 부모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여론을 형성하고 입법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양육비 이행 제도 자체를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들은 국내 양육비 미지급률이 80%에 육박하는 원인을 미약한 제재 및 강제조치에서 찾고 있었다.

◇민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우리나라···외국은 형사처벌

우리나라는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해 지급명령, 담보제공명령, 이행명령, 과태료, 감치 등 여러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채무자가 급여소득자이거나 본인 명의의 재산이 존재하는 경우에 활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관련기사☞[배드파더스 논란-中] 전 배우자, 10명 중 8명 양육비 안 준다)

이러한 제재들은 또 민사집행법을 준용하는 가사소송법이나 민사소송규칙에 근거해 강제성이 떨어지고 실효성이 낮다.

예를 들어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채무자의 지급능력을 확인・조사하려면 채무자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양육비 심판청구 및 추심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어렵게 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양육비 채무자의 재산조사 시 본인 동의 비율은 채 10%가 넘지 않는다.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동의 비율은 3.4~7.5%에 불과했다.

/ 출처=국회입법조사처 ‘양육비 이행관리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과제’,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 출처=국회입법조사처 ‘양육비 이행관리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과제’,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하지만 해외 주요국들은 다르다. 양육비 문제를 ‘형사적’ 관점에서 징역 등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은 1886년 기준 11개 주에서 미성년 자녀를 유기하거나 부양을 거부하는 행위를 형사 범죄로 규정했다.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개인의 행위가 국가에 의존적인 피부양자를 발생시키고, 이는 피부양자를 예방 또는 감소시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공공평화를 위협한다는 전제에서다. 1897년 오하이오주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국가에 대한 의무’와 동일한 것으로 판시하기도 했다.

미국의 모든 50개 주는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제재 규정을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사례별로 경범죄, 중경범죄, 또는 중범죄로 나뉘며 제재의 강도도 다양하다. 로드아일랜드주는 양육비 미지급 행위에 대해 6개월을 선고하지만, 아이다호주는 14년형까지 선고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의 경우 양육비를 지속적으로 체납하면 여권을 비롯한 각종 면허 발급이 거부된다. 독일은 양육비 채무자에게 최장 징역 3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고, 프랑스 역시 1만5000유로(한화 약 1900만원)의 벌금과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률이 규정돼 있다.

/ 출처=국회입법조사처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형사처벌의 의의와 과제’,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 출처=국회입법조사처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형사처벌의 의의와 과제’,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국내도 형사 처벌 규정 필요성 대두···‘입법부작위’ 헌법소원까지

채무자의 사적 부양의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양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해외처럼 국가가 적극 개입해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양육비 지급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검토를 제안하기도 했다. 아동복지법상 ‘방임행위’에 양육비 미지급 행위를 포함시키는 것, 양육비이행법에 관련 내용을 위반행위로 규정해 처벌조항을 마련하는 것 등이다.

제안서에서 허민숙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아동복지법은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를 방임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육비 미지급이 부모의 방임행위에 포함될 여지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며 “양육비이행법도 부모에게 미성년자녀에 대한 의식주 및 교육, 건강 등 자녀성장의 최적 요건을 마련할 의무, 합의 및 법원 판결에 따라 양육비를 성실히 지급할 책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를 마련할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양육비 해결모임(양해모)은 지난 2월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입법 미비의 책임을 묻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존권인 기본권 침해인데, 국내에서는 이를 위한 실효성 있는 법이 없다고 할 만큼 부실하고 ‘진정 입법부작위’에 대한 위헌 확인을 구하겠다는 취지다. 양해모는 헌법소원심판청구에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공개, 운전면허 취소, 출국금지, 양육비 대지급제 등의 내용 또한 포함했다.

지난 1월 1일 오전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양육비 해결모임’(양해모)의 강민서 부대표가 삭발을 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1일 오전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양육비 해결모임’(양해모)의 강민서 대표가 삭발을 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代)지급 제도 운영하는 OECD···국회 입법은 ‘걸음마’

양육비 채무자를 강하게 제재하는 것과 별개로, 한부모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채무자의 ‘사적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代)지급 제도가 대표적이다.

대지급 사례는 해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국가가 양육비를 직접 지급하는 나라(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스웨덴), 정부기관이 양육비를 지급하는 나라(프랑스, 슬로바키아, 벨기에), 지방정부가 이를 보장해 주는 나라(체코 공화국, 덴마크, 핀란드) 등이 있다.

양육비를 위한 특별 재정을 운영하는 곳(라비타,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폴란드, 포르투칼), 정부 산하 특별 기관에서 양육비 업무를 다루는 나라(네덜란드, 영국) 등도 있다.

우리 국회에서도 대지급 제도를 위한 움직임이 있다. 이완영 자유한국당 전 의원은 지난 5월 ‘양육비 대지급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발의 취지에 대해 “국가가 미성년 자녀의 복리를 위해 직접 양육비를 대지급하고 그 비용을 회수하는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한부모 가족의 경제적 안정과 미성년 자녀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지난 6월 의원직을 상실했고, 이후 법안이 추진력을 잃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대지급 제도가 운용되면 한부모가족 및 아동의 빈곤을 즉각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해 줄 수 있다”면서 “국가가 채권자가 되기 때문에 양육비 채무자로부터 양육비를 회수하는데 수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예산 문제가 가장 크다고 듣고 있다. 현재까지 대지급 제도 도입은 멀리 있는 것 같다”면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여론 형성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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