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공정위 심사지침 개정안에 합법거래 불법 될까 우려
공정위 “거래총액 50억원 미만은 심사면제고, 9명 전원합의체로 충분히 고려해 판단”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연말에 접어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몰아주기 제재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앞으로도 대상 기업을 점차 늘려갈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합법 테두리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던 기업들은 난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을 사익편취 혐의 등으로 검찰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는 미래에셋 계열사들이 펀드를 조성해 포시즌스호텔서울 등에 투자한 후 박 회장 등 회장일가 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에 운영을 맡기는 방식으로 수익을 몰아줬다고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공정위는 사주일가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호반건설의 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건은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정무위 국감에서 지적했던 사안이다. 공정위는 호반건설이 LH가 공급하는 아파트 용지를 독과점 한 후 김상열 회장의 아들들에게 택지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했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도 공정위는 한화케미칼의 사주일가 회사 일감몰아주기 의혹 등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으며 조만간 조사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위 사안들과 별개로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제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성욱 위원장은 지난달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일감을 몰아주는 과정에서 계열사는 빨리 성장하지만 거래에서 배제되거나 일감을 빼앗기는 중소사업자가 발생한다”며 “일감몰아주기에 대해선 엄정한 법집행을 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재계는 혹시라도 본인들이 그 대상에 해당될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특히 기업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공정위가 제재에 나선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합법 테두리라고 판단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공정위가 건드릴 수 있다는 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권 초기부터 일감몰아주기 해소에 대한 압박들이 있었고, 이에 기업들은 지분정리를 하는 등 합법적으로 맞춰 놨다”며 “그런 사안들에 대해서까지 제재를 하기 시작하면 기업들 입장에선 대책을 마련하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 심사지침’을 마련했다. 해당 지침이 시행되면 총수일가 사익편취와 관련 공정위의 재량이 늘어나게 되는데, 재계는 이로 인해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예를 들어 일감몰아주기 요건을 심사할 때 이익제공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검토한다. 이 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 있었는지가 판단 대상인데 심사지침 제정안은 ‘사회통념’, ‘일반적인 인식의 범위’ 등 불명확한 기준으로 이를 가려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 입장에선 본인들의 행위가 불법인지 합법인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거래를 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예를 들어 기업이 거래를 할 때 1개만 하느냐 1000개를 하느냐, 혹은 같이 1000개를 하더라도 몇 년 동안 거래관계를 이어왔느냐에 따라 가격조건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어떤 게 공정한 정상가격인지에 대한 판단을 외부에서 하겠다는 것”이라며 “지침이 시행되면 기업들은 이 거래를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 불안한 상태에서 경영을 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정창욱 공정위 기업집단국 기업집단정책과장은 “(기준이 애매하다는 부분은)본질적으로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며 “그래서 거래총액이 50억원 미만인 경우엔 심사를 면제토록 기준을 잡고 있고, 사안마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 다를 수가 있어서 위원회에서 합리성을 따져 전원합의체로 해당 사안을 결정토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