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만드는 ‘에지시티’···원도심 예속 없이 완성형 도시로 곳곳서 성장
지방정부 중심 도시개발·적극적인 기업 지원 효과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멘로파크(Menlo Park)시에선 글로벌 기업 페이스북이 제3사옥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시사저널e

 

9월 3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멘로파크(Menlo Park)시. 글로벌 기업 페이스북 본사 주변으로는 전면이 통유리로 된 신축 건물 4개 동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모두 페이스북의 제3사옥으로 쓰일 건물들이다. 페이스북은 2015년 완공된 제2사옥으로는 새로 입사하는 직원들을 감당할 수 없어 바로 옆 부지에 건물을 추가로 짓고 있다. 축구장 7개 규모의 제2사옥에 이어 제3사옥까지 지어지면 멘로파크 일대는 거대한 ‘페이스북 타운’이 형성될 예정이다.

지난 2011년 본사를 팔로알토에서 멘로파크로 이전한 페이스북은 덩치가 커질수록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본사 확장뿐만 아니라 주변에 아파트까지 짓는 개발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개발계획에 따라 들썩이는 인근 지역의 집값 상승을 막고, 각종 일자리를 대폭 창출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페이스북과 멘로파크가 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해 상생하는 방식이다.  

◇‘에지시티 핵심’ 일자리, 사람을 끌어 들이다

멘로파크를 포함해 마운틴뷰, 쿠퍼티노, 산호세 등은 글로벌 기업을 발판으로 성장해 왔다. 이들 지역은 기업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이후 상업시설과 주거시설, 문화시설 등이 활성화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거대한 도시의 중산층이 외곽으로 빠져나가 형성된 교외 도시지만 원도심에서 필요한 경제적 요소를 모두 갖춘 것이다.

미국에서는 멘로파크처럼 원도심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를 ‘에지시티’(Edge City)라 부른다.  이들 지역은 기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이후 상업시설과 주거시설, 문화시설 등이 활성화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사저널e

미국에서는 멘로파크처럼 원도심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를 ‘에지시티’(Edge City)라 부른다. 이 개념은 1991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조엘 게로를 통해 대중화 됐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땅값이 비싸고 팽창된 도심을 피해 교외 지역으로 이동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기업을 유치한 각 지역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수도권 인구를 끌어들였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주변으로는 백화점과 호텔, 아파트, 사무실 공간 등이 들어섰다. 교외지역에 있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한 본격적인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조엘 게로는 산업화 이전의 농촌지역에 흩어져 주로 대규모 업무, 상업, 제조, 소매, 교육, 여가, 주거시설들로 점유돼 있는 발 형태를 에지시티라고 명명했다. 그는 △업무 공간 46만5000㎡(2만~5만 명 일자리) △도소매공간 5만6000㎡(상업․여가의 중심역할) △주택보다 많은 일자리 △생활권 형성 △30년 이전 비(非)도시지역 등 다섯 가지를 에지시티 분류 기준으로 제시했다.

다시 말해 에지시티는 원도심 교외지역에 있지만 주거 목적의 기존 도시와 달리 대규모 번화가와 오피스·상가 등이 있어 오락·쇼핑·여가활동 등의 복합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념이다. 즉, 에지시티 중심에는 일자리가 자리해 있는 셈이다.

◇글로벌 기업의 입주, ‘변방’이 들썩이다

에지시티가 몰려 있는 지역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에 위치한 실리콘밸리 일대다. 팔로알토(HP), 마운틴뷰(페이스북), 쿠퍼티노(애플), 서니베일(링크드인), 산호세(이베이․어도브), 산타클라라(인텔) 등 에지시티마다 대표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제조업이나 산업단지 없이 원도심의 변방에 위치했던 시골 지역은 글로벌 기업이 입주하면서 자족기능이 강화됐다. 기업 성장과 함께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어 주택과 공공시설, 문화시설 등이 자연스럽게 확충됐다.

ⓒ시사저널e

구글 본사가 위치한 마운틴뷰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시골마을에 불과했지만 구글이 들어선 이래 지구상에서 가장 젊고 에너지 넘치는 ‘IT 메카’로 변신했다. 1인당 연간소득은 6만7042달러가 넘는다. 이는 도심지인 샌프란시스코(3만6070달러)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마운틴뷰 남쪽 쿠퍼티노는 ‘애플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2만 명이 넘는 애플 직원 대부분은 쿠퍼티노와 그 주변에 거주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 또 애플이 이 일대에 ‘우주선’ 모양의 값비싼 신사옥을 새로 건립함에 따라 쿠퍼티노의 자산은 2016년에만 17억 달러가 늘기도 했다.

마운틴뷰 남쪽 쿠퍼티노는 ‘애플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사진은 애플 본사 전경  ⓒ시사저널e

남기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전역의 에지시티마다 대기업이 들어서고 주변에 협력기업들이 입주하는 방식으로 도시화 되고 있다”며 “주거지도 일자리를 따라 생성되고 있는 추세다”고 말했다. 이어 “부가가치가 높은 기업의 입주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자산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도시개발 계획 주도하는 ‘자본가들’

에지시티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도시개발 계획을 자본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도시를 성장시킨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도시 풍경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지자체와 손을 잡고 대규모 재개발을 하거나 주택을 지어 일반인들에게 분양하는 등 도시건설 사업까지 진출하는 추세다.

구글은 지난해 12월 마운틴뷰를 지역사회와 함께 쾌적하고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도시개발 계획안을 발표했다. 구글이 개발에 나서는 지역은 마운틴뷰 북부의 노스베이쇼어다. 구글은 2017년 초안을 만든 뒤 이번에 마운틴뷰 시정부와 협의해 구체적인 구역 계획안을 마련했다. 시 정부는 내년부터 구글과 협력해 지역 개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최근 산호세는 구글이 제안한 산호세 다운타운 디리돈역 부근에 향후 20년에 걸쳐 거대한 캠퍼스 조성하는 ‘Downtown West’ 계획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산호세 전경 ⓒ시사저널e

계획안에 따르면 구글은 오피스와 녹지구역, 상업시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개발을 추진한다. 28만985㎡(약 8768평) 면적이 오피스 지역으로 재개발되고 녹지·공공 구역이 14만1600㎡로 이곳에 산책로와 공원, 광장, 학교, 스포츠센터 등이 들어선다. 상업 구역은 3만7000㎡에 걸쳐 조성된다. 14만1600㎡ 주거 지역에는 1~2층 규모로 최대 8000채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페이스북 역시 멘로파크시와 손을 잡고 본사 건너편 23만㎡(약 6957평) 규모의 부지에 ‘윌로 캠퍼스’(Willow Campus)라는 이름의 ‘복합 마을’(mixed-use village)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신사옥 외에도 1500세대가 살 수 있는 주택이 건설된다. 특히 주택 중 15%에 해당하는 225세대는 일반인들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된다. 이외에도 식료품점, 대중교통 센터, 약국, 음식점, 체육관, 문화센터, 외부인을 위한 호텔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며, 건물 사이에는 크고 작은 공원도 마련된다.

에지시티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도시개발 계획을 자본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도시를 성장시킨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도시 풍경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시사저널e

그밖에도 산호세에서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지역 내 여러 부지를 매입했다. 또 어도브(Adobe) 역시 산호세에 있는 4층짜리 빌딩에 본사를 이전한 상태다. 이로 인해 일자리 3000개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조 헤지스 산호세시 국제담당 책임자의 말이다.

 

현재까지 공시된 거대 개발로 인해 산호세는 한 단계 더 변화될 예정이다. 일자리도 5~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아래로부터 도시개발 추진···“규제보단 지원 우선”

글로벌 기업들이 외곽 지역에 자리를 잡고 개발을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전폭적인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교외 지역 지자체들은 세수에 효율적인 업무·상업 기능을 갖춰 에지시티로 성장하는 것을 정책 목적으로 설정했다. 이후 자신들이 내건 정책 목적의 달성을 위해 도시계획법의 운용을 조작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 도시계획법의 운용 권한이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에게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자립적인 재정과 도시계획 운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지자체들은 각 지역에 맞게 기업을 유치하고 관민 협동방식으로 도시개발 사업을 빠르게 진행했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일자리와 인구는 늘었다. 세금은 증가했고 지자체들의 재원은 풍부해졌다. 그 결과 도시 인프라의 확충이나 공공 서비스의 질은 점차 올라갔고 외곽 지역의 에지시티화(化)는 더욱 진전됐다.

/ 그래픽=이다인 지자이너, 출처=Google ‘Downtown West’ Plan ⓒ시사저널e
출처=Google ‘Downtown West’ Plan ⓒ시사저널e

대표적인 지역이 산호세다. 2017년 기준 103만2094명의 인구에 466.7㎢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산호세는 시스코(Sisco)나 이베이(eBay)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둥지를 튼 세계적 기업도시다. 특히 8만개가 넘는 스타트업(Start-up)을 육성하고 있어 ‘창업의 보고’로도 불린다. 이는 기업에 대한 규제보다 개발 지원에 더욱 힘쓴 산호세시의 노력이 있었다.

조 헤지스 산호세시 국제담당 책임자는 “기업 유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 다른 지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며 “산호세시는 개발 단계에서 기업과 함께 협업해 부지 찾는 것을 도와주고 신축 건물의 층고 제한 완화, 세금혜택 등 지속적으로 지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최근 산호세는 구글이 제안한 산호세 다운타운 디리돈역 부근에 향후 20년에 걸쳐 거대한 캠퍼스 조성을 계획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번 계획은 2026년 완공이 예정된 산호세의 바트(BART) 확장공사와 고속철도 건설 추진도 함께 이뤄질 전망이다. 약 600만~800만 평 부지에 들어설 새로운 구글 캠퍼스는 2만 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고 일반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상점과 공원, 주거단지 등을 조성해 커뮤니티 전체에 혜택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규제보다 지원 나서니 기업이 움직이다

산호세는 산호세 다운타운의 건축고도 규정을 완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만일 이 제안이 시의회에서 통과되면 디리돈역 근처에 세워지는 구글 오피스 타운 등은 260피트, 25층 짜리 빌딩 건축이 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4900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생기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이득은 7억47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 입장에서는 땅값이 비싼 마운틴뷰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고 새너제이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을 끌어안게 되는 셈이어서 구글과 새너제이 양쪽 모두에게 윈윈(win-win)이다. 산호세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러 도시들은 이러한 사업들은 끌어 들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 기업에 친사업적인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일자리와 주거지의 균형을 맞춰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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