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단체들 반대에도 '문희상 법안' 속도내는 여야
피해자 단체들 "배상금 성격 아니고 대상자 13만명 넘는데 1500명으로 과소 추계···위안부 피해자들 "화해치유재단 잔액 사용 반대"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동원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 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동원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 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 후 국회가 강제동원 배상 판결 해법으로 ‘문희상 안’을 밀어부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안은 일본의 강제동원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강제동원 피해 대상자만 13만명이 넘는데도 대상을 1500명으로 과소 추산했다고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사죄와 배상의 성격이 아니었던 화해치유재단 잔액 사용을 반대했다. 국회가 한일 간 관계 회복을 위해 피해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 의장은 지난 5일 도쿄 와세다대에서 강제동원 배상 판결 해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문 의장의 제안은 한국 대법원이 판결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한일 양국 기업의 기부금 형식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대신 부담하자는 내용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남아있는 ‘화해와 치유 재단’의 잔액 60억원을 포함하자는 것이다. 한일 갈등이 경제, 군사 등으로 깊어지는 상황에서 근본 문제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의 해법을 마련한다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당시 문 의장 안은 피해자 단체들과 의견 수렴이 전혀 없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문 의장은 이 같은 안을 더욱 구체화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향후 2주 안에 대표 발의할 계획이다.

현재 여야 일부 의원들까지 문 의장 안에 가세했다.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천정배, 원혜영, 강창일, 김동철, 오제세, 이혜훈, 홍일표, 김민기, 함진규, 이용호 의원 등이 지난 27일 문 의장과 간담회를 갖고 문 의장의 발의 예정인 안에 대해 적극 지지를 보냈다. 이 의원들은 정부가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니 국회가 먼저 법안을 마련해서 정부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빠른 시일 내 법안을 발의해 줄 것을 문 의장에게 요청했다. 의원들은 문 의장이 법안을 대표발의 할 때 공동발의자로 참여하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문희상 의장의 안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기억인권재단’을 설립하고 기금은 한일 양국 기업 및 국민의 자발적 기부금, 화해치유재단 잔액 60억원 등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기억인권재단을 통해 위자료를 받는 피해자는 화해가 성립돼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이 대리 변제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문 의장 측은 강제동원 피해자 1500명 정도의 인원에 1인당 2억원 가량의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일본 정부의 사과나 법적 책임 인정에 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특히 문 의장은 지난 5일 이러한 안을 제안했을 당시 피해자 동의 절차가 없었다는 점을 의식해 일부 피해자 단체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최종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시민모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모임인 정의기억연대는 자신들의 의견 수렴이 된 적이 없다며 문 의장 안에 반대했다. 피해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피해자 단체들은 문 의장 안이 일본 정부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 인정과 사과를 전제로 한 배상금 성격이 아니라 기부금 형식인데 반발했다.

28일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문 의장 안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사과를 전제로 한 배상금 성격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문 의장 안은 강제동원 피해자 1500명을 예상했는데 정부로부터 강제동원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만 13만8000명이다”며 “문 의장 안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기본적 처지와 실태 이해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우리 시민모임이 지원하는 피해자분들은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지난해 대법원의 최종 원고 승소 판결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우리 단체와 소통한 적이 없다”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이 빠진 문 의장 안에 따른 위로금을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받지 않을 것이다. 문 의장 안을 폐기해야한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정의기억연대도 문 의장 안의 폐기를 요구했다.

정의기억연대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원칙 없는 법안발표가 일제의 반인도적 전쟁범죄 행위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군‘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의 길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문 의장인 제안한 화해치유재단 잔여 기금을 포함한 정부와 기업의 기금 출연 그리고 국민 모금 방식의 재원 마련을 통한 금전적 보상방안은 굴욕적인 2015 한일합의의 인정과 같다. 이미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국제인권기구의 권고와 피해자들의 요구에 따라 작년 7월 일본정부의 위로금 10억엔에 상응하는 성평등 기금 예산 103억을 책정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조치 했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이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인정하지 않고 전쟁범죄 인정과 법적 배상 차원이 아니라며 일본이 준 10억엔을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문희상 의장 측 관계자는 “법안에 일본 정부의 사과와 법적 책임 인정을 담을 순 없다. 다만 다음 달 한일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소통을 하고 있다”며 “강제동원 대상도 1500명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 더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해치유재단 잔액 사용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반대하면 다시 검토해볼 것”이라고 했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는 “문희상 의장의 안은 일본의 강제동원 행위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묵인하는 것”이라며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을 위해 수십년 간 싸워 온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