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목적·정당행위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이혼 전 배우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공익활동일까,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범법행위일까. 최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전 배우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웹사이트 활동가가 법정에 섰다. ‘개인의 명예’와 ‘아이의 생존권’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법원이 어떠한 결과를 내놓더라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시사저널e는 3회에 걸쳐 이 사건 재판의 쟁점과 국내 양육비 이행 실태, 제도 및 입법 등 현황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아빠의 초상권’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되어야 할 가치라는 믿음입니다.”

양육비를 안 주는 아빠들(Bad Fathers)이라는 이름을 가진 온라인 웹사이트 상단에는 이 같은 운영 지침이 게재돼 있다.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는 전 배우자를 고발하고 압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사이트에는 ‘배드파더스’의 사진과 이름, 생년, 학력, 직장 등이 공개돼 있다.

배드파더스는 지난해 7월 생성됐다. 올해 11월 기준 사이트에 등재된 제보 건수는 400여건이다. 사이트 게재를 통해 양육비 지급 문제가 해결된 사례도 111건에 이른다. 법원의 판결문, 양육비부담조서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해 리스트에 게재되고, 양육비 지급이 확인되면 이를 삭제한다는 게 사이트 측 설명이다.

사이트 측은 또 게재된 사례 대다수가 법적 절차를 거친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장기에 걸친 ‘악성’ 미지급 사례라고 설명한다. 아동의 생존과 연결된 양육비 채권의 성격과 낮은 양육비 지급 이행 실태를 고려했을 때, 형사절차상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신상공개는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다르다. 검찰은 이 사이트 활동가 구본창(57)씨를 정보통신망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구씨가 자신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등을 사이트에 게시하고, 제보받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사이트 운영진에게 전달해 이를 게시되도록 한 행위가 범법 행위라고 봤다.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냈고, 피해자인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 사건은 애당초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 된 사건이었으나, 법원은 사건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두 차례에 걸친 공판준비기일 이후 법원은 구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내년 1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이 사건을 진행하기로 했다.

/ 사진=배드파더스 홈페이지 갈무리
/ 사진=배드파더스 홈페이지 갈무리

◇ 타 검찰청, 같은 사건에 “소추이익 적다”며 불기소

구씨가 이번에 기소된 사건은 6개 고소 건이 병합된 사건이다.

검찰은 양육비 미지급자를 ‘압박’하려 한다는 사이트 취지상 비방의 목적이 있고, 사실을 사이트에 적시했기 때문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본다. 검찰은 또 구씨가 제보 내용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과거 같은 내용의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 적이 있다. “소추의 이익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서부지검에 접수됐던 구씨의 다른 피고소 사건은 양육비 채권자가 부득이하게 제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 명예훼손의 정도, 공공의 이익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구씨를 기소한 수원지방검찰청의 기소 의견에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구씨는 시사저널e와의 인터뷰에서 “판결문과 양육비부담조서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제보의 신빙성을 오랜 기간 확인한다. 현재까지 허위 신고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라며 “제보내용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일방적인 주장에 가깝다. 피게시자가 이의를 신청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마련해 놓고 있다”라고 검찰의 기소를 비판했다.

이어 “서울서부지검이 불기소 처리한 사건과 수원지검이 기소한 사건은 당사자만 다를 뿐 사실관계는 거의 일치한다. 고무줄 기소가 아닌가 싶다”라며 “저는 사이트 운영진도 아니고 운영진에게 제보 내용을 전달하는 자원봉사자에 불과하다. 이 부분도 재판부가 고려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사진=배드파더스 홈페이지 갈무리
/ 사진=배드파더스 홈페이지 갈무리

 

◇ ‘공익 목적’ 인정되면 죄 요건인 ‘비방할 목적’ 부정 돼

구씨가 받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비방할 목적’이라는 요건이 전제돼야 한다. 구씨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사실관계 자체를 인정하면서도 비방적 표현이 없고, 피해자들을 비방할 목적 또한 없다며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자신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 명백하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의 성립에 있어 ‘공공의 이익’이 인정될 경우 ‘비방할 목적’이 부정된다는 판례에 근거한다.

대법원 판례(2005도5068)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은 가해의 의사나 목적이 전제돼야 하는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의 방향에 있어 상반되는 관계에 있으므로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이 부인된다고 밝히고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를 판단함에 있어서 ▲피해자가 공인(公人)인지 사인(私人)인지 ▲표현이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이어서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피해자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표현에 의해 훼손되는 명예의 성격과 침해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표현의 방법과 동기 등 제반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씨는 아동의 생존과 연결된 양육비 채권의 성격, 양육비 국내 이행실태에 비춰볼 때 사이트에 게재된 정보가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사안에 관한 정보이고, 이는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취지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내 양육비 이행실태를 보면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다는 응답은 80%를 오르내린다. 여성가족부가 2013년 발표한 ‘2013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응답은 83%였으며, 2019년 발표된 ‘2018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서도 미지급 응답률이 78.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양육비 이행 강제조치 및 미지급에 대한 제재 조치도 미약하거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 또한 계속해 제기되고 있다. 국가발급 면허증 및 여권 취소, 기소 및 구금, 징역형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두고 있는 해외 사례와 대비된다.

대법원의 또 다른 판례(94도3309)는 개인의 사적인 신상에 관한 사실이라도 사회적 활동에 대한 비판 내지 평가의 자료가 될 수 있다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아울러 구씨는 양육비를 미지급한 전 배우자의 명예는 양육비 미지급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아이들의 생존권과 비교할 때 보호가치가 크지 않고, 사실 확인 절차를 철저히 하는 등 피게시자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노력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구씨를 돕고 있는 이은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아동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며 가정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아동의 양육비 확보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구씨는 국가가 할 일을 개인이 직접 해결하기 위해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했고, 이는 우리나라 양육비 이행 제도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그 개선을 위한 활동임을 고려할 때 이 사건 행위를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 형법상 ‘정당행위’가 인정된다면 위법성 인정 안 돼

우리나라 형법 제20조(정당행위)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된다면 위법한 것이 아닌 것이다.

대법원 판례(2003도3000)는 어떠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없어지는지 규정하고 있는데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한지 ▲수단이나 방법이 상당한지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균형성을 갖췄는지 ▲긴박한 사정이 있는지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는 지 등을 고찰해 개별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구씨는 무책임한 부모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아동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한 행위임으로 정모를 올린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또 대상자의 이름과 생년, 사진, 직장, 출신학교, 거주지역 등을 정보로 올렸는데 비방적 표현 등이 없어서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이 판례에서 용인되는 수준이라고 본다.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에 대해서도 아동의 생존권과 대상자들의 명예권을 비교했을 때, 명예권이 생존권보다 보호받을 가치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곤경에 처한 아이들의 생활을 고려했을 때 조금이라도 빨리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긴급히 필요한 행위를 한 것이며, 법원 판결에도 양육비를 미지급한 사례 등에 비춰봤을 때 정보 공개가 최후의 수단으로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변호사는 “피고인(구씨)도 자녀를 키우고 있다.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 양육비는 필요한 기본중의 기본이다”라며 “고소인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양육비 지급의무를 고의적으로 회피하거나 미루고 있는데, 여러 상황을 참작해 볼 때 피고인의 행위는 사회상규상 허용 될 수 있는 정당행위에 해당해 처벌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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