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시민단체 “2인 1조 위반·설비 개선 책임 있는 원하청 대표 미필적 살인죄 처벌 촉구”
산재 책임 안지는 원·하청···매년 2366명 사망에도 기업·책임자 처벌은 거의 ‘벌금·집행 유예’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와 시민대책위는 27일 광화문 광장의 고 김용균 1주기 추모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컨베이어 설비점검 작업자들의 근무형태에 대한 결정 권한과 대상 설비 개선조치에 대한 권한을 갖는 원하청 대표이사 등 실권자들에 대한 철저한 재수사와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사진=이준영 기자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와 시민대책위는 27일 광화문 광장의 고 김용균 1주기 추모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컨베이어 설비점검 작업자들의 근무형태 결정 권한과 대상 설비 개선조치 권한을 갖는 원하청 대표 등 실권자들에 대한 철저한 재수사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처벌을 촉구했다. / 사진=이준영 기자

태안경찰서는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24)의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사장과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사장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김용균 노동자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에 작업자들의 근무 형태에 대한 결정 권한과 사고가 난 설비 개선조치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 원하청 대표이사 등 실권자들에 대한 재수사 촉구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처벌을 촉구했다.

2인 1조 근무원칙을 위반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설비 개선을 외면한 서부발전과 발전기술의 실권자인 김 사장과 백 사장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족과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지난 1월 11일 서부발전 김병숙 사장과 발전기술 백남호 사장 등 16명을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고소 고발했다.

그러나 태안경찰서는 지난 20일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사장과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사장 등 실권자 7명을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다만 본사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태안화력본부장, 태안사업소장, 연료기술부 관리자, 석탄설비부 관리자 등 11명만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유가족과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의 직접적 원인인 2인 1조 근무원칙 위반과 사망사고가 난 설비 개선 요구를 외면한 최종 결정권자는 서부발전과 발전기술의 대표이사라고 밝혔다.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와 시민대책위는 27일 광화문 광장의 고 김용균 1주기 추모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컨베이어 설비점검 작업자들의 근무형태에 대한 결정 권한과 대상 설비 개선조치에 대한 권한을 갖는 원하청 대표이사 등 실권자들에 대한 철저한 재수사와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청 서부발전이 승인한 작업지침서인 ‘석탄취급설비 순회점검지침서’에는 2인 1조 근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도급계약서 상 배치인원은 구간별 1명으로 돼 있다. 이 도급계약서는 본사 책임자에게 보고되는 문서다. 즉 원칙 상 2인 1조 근무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서부발전이 컨베이어 운전원들의 1인 근무를 규정상으로 용인한 것이다.

서부발전과 발전기술이 위험 지역 근무 수칙인 2인 1조를 어기고 1인 근무를 용인한 것은 인력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지난 8월 19일 발표한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수칙인 2인 1조 근무수칙이 왜 현실에서 준수되고 있지 않는지 그 원인을 밝히지 않는다면 또다시 근무수칙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인력 정원과 인건비 문제가 숨어있다”며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공기업 민영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발전회사 분할과 발전회사 간 경쟁 유도, 수익성을 목표로 한 시장형 공기업으로의 전환 등은 인원 감축과 비용 절감을 지상과제로 만들어왔다. 그 결과 2인 1조 근무가 실현될 수 없는 구조를 낳았다”고 밝혔다.

또한 발전기술의 하청 노동자들은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하기 11개월 전인 2018년 1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설비 개선을 요청했다. 낙탄을 사람이 직접 치우지 않고 고압의 물로 쏴서 처리하도록 시설을 개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서부발전은 평소 작업에서 지휘와 감독을 하면서도 하청노동자가 원청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며 이를 무시했다. 하청업체도 컨베이어벨트가 자신의 설비가 아니라며 권한이 없다고 개선 요청을 회피했다. 결국 설비 개선 요청이 무시된 업무 환경에서 김씨가 사망했다. 설비 개선의 결정권은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것으로 한국서부발전 본사에서 가지고 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위험 설비를 방치한 원하청 본사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 살인죄는 적극적으로 살인을 의욕하지 않고, ‘설마 사람이 죽지는 않겠지’라는 소극적 인식으로도 성립한다”며 “원하청 대표이사들이 2인 1조 근무에 대한 개선조치를 취하지 않고 위험 설비를 방치한 것은 발생될 수 있는 사고와 사망의 결과를 용인한 것으로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했다.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용균이가 죽기 전 하청 노동자들이 요청한 설비 개선이 이뤄졌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며 “그러나 하청은 우리 설비가 아니다며 회피하고 설비 소유권을 가진 원청은 외면했다”고 말했다.

특조위도 진상조사 결과에서 “만일 신속하게 설비개선이 이뤄졌다면 고인의 협착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인이 협착 사고를 당할 때까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설비와 작업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며 “발전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설비나 시설은 모두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소유인 반면, 고인이 속한 한국발전기술은 발전회사와 체결한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인력만을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국발전기술은 운전이나 점검 의무만을 질 뿐 시설 개선에 대한 권한은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외주화의 가장 큰 문제는 원청인 발전사가 협력사 및 그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가지면서도 협력사 노동자들에 대한 각종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협력사 노동자의 안전사고에 책임을 지지 않는 발전사가 그들의 안전을 위한 설비 개선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협력사 또한 이를 본받아 더 위험한 업무의 재하도급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책임도 재하도급 업체로 넘기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한국서부발전 소속의 발전소다. 모든 경영에 대한 방침은 한국서부발전이 결정한다. 서부발전은 기재부와 산업부의 인원, 예산 통제를 받는 공공기관으로서 인력의 운영, 예산의 편성과 지출 등을 서부발전이 결정한다.

태안경찰서의 이번 원하청 대표이사 무혐의 처분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산재 시 기업·책임자 처벌이 대부분 ‘벌금·집행유예’로 그쳐왔던 상황을 또다시 보여준다.

2001~2017년 연평균 2366명이 산재 사고로 죽었다. 이 기간 정부 통계로만 154만3797명이 산재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중대재해 사고에 대한 기업 책임자 처벌은 거의 없었다.

송영섭 시민대책위 법률지원단장에 따르면 원하청 책임자의 실형률은 0.5%에 불과하다. 원하청 책임자들의 95% 이상이 벌금 2000만원 이하나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의 진짜 책임자인 서부발전 사장 처벌 촉구에 대해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안전보건단체는 이날 “산재 사망사고를 반으로 줄이고, 비정규직을 없애고,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안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며 “특조위 권고안의 첫 번째 권고사항인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게 하지 않기 위한 1차적 조치다. 그래야 노동자들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하기 위한 권리를 온전히 주장할 수 있다. 사업주들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중대재해를 일으켜 사람을 죽게 한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시급히 제정돼야 한다”며 “이윤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안착해야만 산재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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