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급등의 원흉 정비사업 규제+건설사 길들이기+조합 반발 무력화까지 원샷 해결
정부의 정비사업 위법 적발 첫 사례, 건설사 수주활동서 보신주의 확산할 가능성도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시공사 선정을 진행 중인 한남3구역. 정부가 26일 한남3구역 입찰에 참가한 대림산업, 현대건설, GS건설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정부의 한남3구역 입찰 무효 후폭풍이 거세다. 입찰에 참여한 대림산업, 현대건설, GS건설 등 세 곳 건설사는 물론 건설업계 전반이 술렁이고 있다. 혼란스럽기는 정비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해당 사업장인 한남3구역은 사업이 지체될 우려로 조합 측에 문의가 끊이질 않는 동시에, 통매각 사업 추진으로 행정소송을 벌이는 반포 신반포3차·경남 일부 조합원 사이에서는 정부에 반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등 한남3구역과 유사하게 사업이 전개된다는 까닭에 수사를 받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떠는 모습이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정부가 묘수를 냈다고 풀이한다. 정부는 서울 집값 상승의 시발점을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장으로 보고 안전진단기준 강화,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 분양가상한제 도입 등 정비사업 활성화를 옥죄는 정책을 연달아 펼치고 있다. 이번에 입찰에 참여한 세 곳 건설사를 모두 위법행위로 판단하면 일단 재개발 사업은 표류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집값 상승의 도화선이 된다며 수년 간 잠실주공5단지, 은마아파트 인허가 등 주택시장 내 주요 정비사업장 사업 속도를 늦추려는 정부 기조에 부합한다.

그러면서 조합의 반발은 최소화할 수 있다. 입찰이 무효화되면 각 건설사가 낸 입찰보증금 1500억 원씩, 총 4500억 원이 조합에 귀속된다. 조합의 수익이 수천억 원이 늘어난 만큼 추후 착공부터 준공까지 총 8차례에 거쳐 조합원 개개인이 내야하는 추가분담금은 대폭 줄어들 게 된다. 사업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수익 확보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사업을 강행하려는 이들의 반발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 건설사 상대로는 사업에 깊숙이 개입하며 건설사의 마케팅 수위를 조절하는 등 면(面)을 세울 수 있게 됐다. 한남3구역 입찰에 참여한 A건설사 관계자는 “공약으로 내걸기에 앞서 두 곳의 대형로펌으로부터 법률자문 받은 결과 문제없다는 답변을 듣고 제안한 것이었다”라면서도 “정부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 아직 조합으로부터 별도의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위법이 아니라는 자사 입장은 분명히 하면서도 정부의 불호령에는 납작 엎드린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상대로 엄포를 놓고 시장을 의도대로 컨트롤함과 동시에 조합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묘수”라고 평가했다.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위법사항이 적발돼 정부가 직접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때문에 강화한 도정법의 첫 처벌 사례가 나올지 직접 관련이 있는 세 곳 건설사 뿐 아니라 주요 건설사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7년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수주전이 과열되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위반에 따른 처벌을 강화한다고 밝혔고 지난해 10월 시행령을 개정했다. 도정법에 따르면 불법 행위를 저지른 건설사는 공사비의 20%를 과징금으로 내고 2년간 정비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강남권이나 강북 요지에서 여전히 주요 건설사들이 법과 위법의 담벼락을 넘나드는 듯한 수주활동과 공약이 암암리에 행해왔다. 때문에 수주 활동에 보다 철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건설업계 안팎에서 팽배하고 있다. B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주요 건설사 대다수가 예년대비 수주액이 대폭 줄어 향후 적극적 수주를 할 게 예상됐는데, 정부의 입찰 무효화 발표로 건설업계에서 보신주의가 확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의 제동으로 한남3구역 사업 추진의 열쇠는 이제 조합이 쥐게 됐다. 그러나 조합 내에서도 사업 방향을 두고는 찬반이 팽팽히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남3구역 조합 관계자는 “하루 뒤인 28일로 예정된 3개사 합동설명회도 예정대로 진행한다.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조합원으로 있던 조합원들 역시 “10여년 이상 기다렸는데 새 집에 살아보고 죽자”라며 강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한 조합원은 “조합장은 당초 일정대로 추진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일부 대의원은 정부에 맞서 조합까지 수사를 받고 사업이 늦춰지는 무모한 행동은 그만둬야 한다며 긴급 대의원 회의를 여는 등 조합 집행부 내에서도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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