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수도권 1기 신도시 지정 후 30년···‘신도시 토박이들’이 털어놓는 신도시 이야기
‘공급 일변도’·‘일사천리’ 정책이 불러온 갈등···전 세계적인 정책 변화, 우리 선택은

 

지난 10월 5일 드론으로 촬영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광경 ⓒ시사저널e

 

“여기가 제가 살던 백석4리죠. 이곳에 120~140세대 정도가 살았으니 꽤 큰 마을이었어요. 이쪽 옆에 ‘난산’이라는 산이 있고, 저기에 가보면 흰 돌이 있어요. 가로, 세로 대략 2.5 미터 크기 하얀 돌인데, (다른) 돌로 (그 돌을) 치면 반짝반짝 불이 났어요.”

박광수(61·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씨의 말이 쉬이 끊기지 않았다. 한때 ‘흰돌마을’로 불렸던 백석(白石)동 지명 유래를 소개하는 데 이르자,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 듯 눈가에 웃음이 일었다. 광수씨는 일산신도시 동남쪽 끄트머리 옛 백석4리(현재 백석1동)에서 나고 자랐다. 30대 초반까지 이곳에서 살다 신도시가 들어선 후 신식 아파트로 이주했지만, 그의 고향은 여전히 30년 전 농촌이다. 

◇ ‘일산 토박이’ 박광수씨, 고향을 떠올리다

'일산 토박이' 박광수(61)씨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1동에서 일산신도시 이전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시사저널e
'일산 토박이' 박광수(61)씨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1동에서 일산신도시 이전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e 
광수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하다 지난 7월 정년퇴직했다. 서울로 출퇴근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을 고향에서 살고 일했다. 그래서 일산의 과거와 현재를 누구보다 더 꼼꼼히 기억하고 있다.

“일산신도시를 짓고 나서 지금도 안타까운 게 하나 있어요. 마을 인근에 사람 네 명 정도가 둘러쌀 수 있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어요. 거기서 동네 사람들이 굿을 하기도 했죠. 신도시 공사하면서 (공사업체 측이) ‘그 나무는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근데 어느 날 보니 나무가 없어졌어요. 그게 아직도 아쉬워요.”

느티나무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신도시는 고향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산은 파헤쳐졌고, 들은 메워졌다. 일산신도시 발표 이듬해인 1990년 9월 큰 물난리 후 이를 막기 위해 땅을 높인다는 명분이었다. 광수씨는 “지금은 (신도시에) 산이 하나도 없는 거 같지만 당시는 높고 험한 산이 많았다”면서 “산은 깎고 땅은 높이면서 길이 평평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나마 우리 고향 터는 ‘난산’이 그대로 있어 대충 옛 마을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데, 다른 지역은 싹 바뀌어서 옛날 번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어딘지 찾을 수도 없을 거예요.” 

광수씨는 신도시 원주민을 “실향민”이라고 불렀다. 그는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젊은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아) 차도 사고 깨끗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상실감이 (상대적으로) 크다보니 (신도시 발표 직후) 노인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그게 신도시의 후유증”이라고 말했다.  

◇ 백마초 동창들이 이야기하는 신도시

어이, 오랜 만이야.

○○○! 그새 왜 이리 늙었어. 허허

10월 20일 오전 충장근린체육공원(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주말을 맞은 공원 축구장은 운동복을 입은 중장년 남성들로 메워지고 있었다. 일산지역 축구동호회 백마FC(회장 김건영) 회원들이 팀을 이뤄 축구를 하기 위해 모인 것. 이 동호회는 박광수씨를 포함해 백마초등학교(일산동구 마두1동 소재) 졸업생들이 주축이 돼 있다. 1977년 창단했으니 42년 역사를 지닌 동호회다. 회원 상당수는 박씨처럼 일산신도시 조성 이전부터 일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일산 백마초 동창들이 지난 10월 20일  고양시 덕양구 충장근린체육공원에 모여 30년 전 신도시 조성 당시를 회상하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e
일산 백마초 동창들이 지난 10월 20일 고양시 덕양구 충장근린체육공원에 모여 30년 전 신도시 조성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e

잔디구장 귀퉁이에 일산 토박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취재진이 ‘신도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고 하니, “그때가 언제야”라는 말로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내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회원들은 9명. 50대 후반~60대 초반의 나이로 신도시 조성 전 주로 백석4리와 마두3리(현 마두1동) 일대에서 이웃하며 지냈던 이들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1기 신도시 발표 당시 기억은 비슷했다. 원주민들의 심한 동요와 반대 움직임은 아직도 그들의 뇌리에 생생하다.  

“행주(대교) 다리 건너 여의도 국회로 가겠다며 자유로 (경유)해서 주민들이 트랙터며 경운기 끌고 나가 데모하고 했지.”(설갑수·59·당시 마두리 거주)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산 사람들은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죠. 학교에 모여서 데모도 하고 그때 내가 찍은 사진도 아직 갖고 있어요.”(박광수·61·백석4리)

신도시 발표 배경을 두고 근거 불명의 흉흉한 소문도 많았다고 한다. 권력 배후설과 1990년 물난리 관련 의혹들이다.  

“(당시 권력자가) 일산에 땅을 많이 사놨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설석진·59·마두3리)
“반대 운동 막겠다고 일부러 수해를 냈다는 말도 있었어. 군 부대 초소도 물에 다 잠겼는데 아무런 인명 피해도 없었거든.”

신도시 조성 전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도 있었다. 신도시 조성과 토지 강제수용에 반발해 주민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신도시 원주민들의 상실감이 드러난 단적이 예다. 

"고향에서 뿌리를 박고 대대로 살던 터가 사라진다고 하니깐 그게 가장 두려웠던 거지."(설윤근·58·마두3리)

◇ 1, 2, 3기 ‘착착’···30년 새 신도시 20곳으로

바로 그날이었다.

1989년 4월 27일. 당시 노태우 정부는 성남 분당․고양 일산을 수도권 첫 신도시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부천 중동․안양 평촌․군포 산본 등을 추가로 개발한다고 밝혔다. 한 해 동안 중·대규모 신도시 5곳을 한꺼번에 발표한 것이다. 

ⓒ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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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가격 급등과 부동산 투기가 사회 문제로 비화되자, 1기 신도시는 그 대책으로 나왔다. 나날이 올라가는 아파트 값에다 부동산 투기 확산으로 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다. 87년 6월 민주항쟁 다음해 집권한 2년차 정부로서도 불안한 민심을 잠재울 동력이 필요했다. 1기 신도시 발표는 일종의 '빅 이벤트'였던 셈이다. 

1기 신도시는 당시 정부가 구호로 내건 ‘200만호 주택 건설 추진 계획’ 일환으로 추진됐다. 정부의 공약에 발맞춰 신도시 조성은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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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분당신도시 시범단지를 최초로 분양했고, 1991년 9월에 입주가 시작돼 1992년 말 입주 완료됐다. 후보지 공식 발표 후 불과, 3년 만에 입주가 완료된 것이다.

이후 2003년 2기 신도시, 2018~2019년 3기 신도시 등이 추가로 조성되거나 지정됐다. 이렇게 지난 30년 간 지어졌거나 조성 예정인 서울 반경 60㎞ 안 신도시는 모두 20곳에 이른다. 

수도권 신도시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주택 대량 공급원으로 일시적으로 부동산 문제 해결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집값 잡기와 서울 과밀화 해소에 초점을 맞춘 신도시 정책에 대한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자족기능이 떨어지고, 베드타운(bedtown)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신도시 무용론’까지 언급한다. 

특히 2기 신도시는 1기 신도시와 달리 서울 등 주변 지역과의 교통체계 구축 및 기업유치를 통해 자족기능을 갖출 것이라고 정부는 공언했다. 하지만 토지보상금이 대거 풀리며 수도권 땅값이 들썩이며 집값도 함께 끌어올린 부작용도 제기된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대규모 택지를 공급하면서 수도권 녹지가 빠르게 사라지는 부작용도 발생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거기에다 1, 2기 신도시 인근에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하는 고양 창릉 등 3기 신도시 지정․발표가 나자 기름을 얹는 격이 됐다. 

 

ⓒ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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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시 갈등’ 수면 위로 떠오르다

“도면 유출 3기 신도시 즉각 철회” 
“창릉 3기 신도시 철회하라!”

8월 10일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2동 마두공원. 아파트 숲 사이로 평화롭게 내려앉은 공원이 을씨년스러운 플래카드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날은 고양 창릉 등 3기 신도시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고양 일산과 파주 운정, 검단신도시 반대 단체가 주최하는 공동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 뙤약볕 아래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지는 미지수였다. 주최 측 부스에서 시계를 보던 한 50대 여성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할 텐데···

​지난 8월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공원에서 '창릉 3기 신도시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일산, 파주, 검단 주민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3기 신도시 철회와 함께 신도시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시사저널e​
​지난 8월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공원에서 '창릉 3기 신도시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일산·파주·검단 주민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3기 신도시 철회와 함께 신도시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시사저널e​

이날 집회는 벌써 10번째다. 3기 신도시 발표 후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가 규모는 다르지만 꾸준히 열려왔다. 3기 신도시 중 창릉 후보지와 인접한 일산과 운정의 반대 움직임이 거셌다. 일부 시민들은 집회와 함께 서명운동, 집집마다 현수막 걸기 등 다양한 형태로 철회 운동을 이어왔다. 

결국 이날 집회에는 일산·파주·검단 주민 등 300여명 정도가 모였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아파트값 하락에 대한 불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밑바탕에는 신도시를 방치해온 정부에 대한 불만과 도시 기능 상실에 대한 걱정이 깔려 있었다. 

강용규(34․파주 운정)씨는 “정부가 2기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약속한 교통, 일자리, 주민시설 등 중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면서 “아직 파주에만 미분양이 남은 상태인데 창릉에 신도시가 들어오면 도시가 슬럼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년 전 운정신도시로 이주해 온 강씨는 4월에 분양을 받았다고 한다. 강씨는 “3기 신도시를 만들면서 2기 신도시 실패를 교훈 삼겠다고 (정부가) 할 것이 아니다”면서 “3기 신도시에 앞서 광역교통망이나 자족도시 약속을 지키고 2기 신도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한차례 신도시 파동을 겪은 ‘일산 토박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다시 10월 5일 고양충장근린체육공원. 기자는 인근 고양 창릉을 3기 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물었다.  

“차라리 1기 신도시를 창릉에다 했어야지. 창릉을 먼저하고 차츰 외곽으로 나와야 했지. 몇 십 년이나 됐는데 (서울 가까운) 창릉에 신도시 지으면 일산신도시는 죽는 거 아니야.”
“(일산 인근) 파주 같은 데는 지금도 아파트 안 짓고 터 닦는 데가 많은데 그럼 여기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수도권 신도시가 30년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자족기능이 떨어지고, 나아가 쇠락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신도시 내외부에서 적지 않았다. 신도시의 문제점과 갈등 양상이 이미 예견돼 왔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산신도시 지을 때만 해도) 고양시 인구가 105만이 될지 몰랐던 거야.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커지면 확충돼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오히려 불편해지는 거야.“
“(일산신도시) 여기는 그대로 있고 2기 신도시(파주 운정) 생기면서 불어나는 데 발전시킬 수 있는 플랜을 보여줘야지. 창릉을 발표하면서 여기도 발전할 수 있는 안을 내놨어야 하는데···”

 

◇ ‘아파트 때려 짓기’ 신도시, 변화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수도권 신도시 정책의 30년 역사를 되돌아보며 획일적인 주택공급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집만 지으면 끝’이라는 공급 위주 정책에 치우치다보니 자족 기능성과 조화로운 균형, 지속적인 성장의 해법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갈수록 신도시 간 갈등과 신도시 내 위기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도 신도시의 조성과 관리, 갈등의 해법 등을 찾는 모색은 계속돼왔다. 이미 1960~70년대부터 수도권 신도시 개념을 도입한 프랑스는 정책 초기 수도 파리의 인구 분산과 과밀 해소만을 목표로 일방적인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을 폈다. 이후 실패를 교훈삼아 자족도시 기능을 강화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 변화를 시도했다. 

일본은 1960년대 신도시를 속속 조성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구조와 경제상황 변화가 맞물려 한계를 맞자 도심 재생과 기존 뉴타운의 자족기능 강화 쪽으로 선회했다. 글로벌 기업 유치를 통해 주거뿐만 아니라 일자리, 여가생활 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에지시티’(edge city)는 미국의 새로운 신도시 모델로 부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말하듯) 신도시가 주택공급 차원이라면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시기에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데 시장상황 따라 임기응변식 발표를 했다”면서 “이제는 신도시를 만드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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