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文대통령 언급 1주일 만에 ‘민식이법’ 등 처리 방침···관련 예산 증액 등 대책 마련도
‘해인이법’·한음이법’·‘제2하준이법’·‘태호·유찬이법’ 등도 법안소위 통과 전망
부모 대다수 안도 분위기 속 “죄송했고, 감사하다”···“선거제처럼 논의해봤나” 비판도

당정은 26일 '민식이법'을 포함한 어린이 보호법안의 국회 처리를 약속하고, 강화대책도 함께 발표했다. 이에 대다수의 부모들은 안도하는 분위기가 관측되지만, 국회의 '늦장 처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진=이창원 기자
당정은 26일 '민식이법'을 포함한 어린이 보호법안의 국회 처리를 약속하고, 강화대책도 함께 발표했다. 이에 대다수의 부모들은 안도하는 분위기가 관측되지만, 국회의 '늦장 처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진=이창원 기자

당정은 26일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또한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강화대책‧종합 지원 방안 등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른바 ‘민식이법’의 조속한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한지 1주일 만이다.

‘민식이법’은 지난 9월 김민식 군이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발의된 법안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내 ▲신호등 설치 의무화 ▲과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사망 사고 시 가중처벌(3년 이상 징역, 12대 중과실 교통사고 사망 발생 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법안은 지난 9월 발의된 이후 3개월째 계류 중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 이틀 만인 지난 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법안소위에서 ‘민식이법’을 통과시켰고, 이날 당정은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당정은 이번 ‘민식이법’을 시작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해인이법’, ‘한음이법’, ‘제2하준이법’, ‘태호‧유찬이법’ 등 어린이 보호 법안들도 오는 28일 법안소위에서 처리하도록 요청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해인이법’은 질병, 사고, 재해 등으로 인해 13세 미만의 어린이가 응급환자가 된 경우 즉시 응급의료기관 등에 신고하고, 이송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한 법안이다. 이를 위반해 어린이가 사망‧심각한 장애에 이르게 한 자에 대해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지난 2016년 7월부터 국회에 발목 잡혀 있는 ‘한음이법’에는 ▲어린이 통학버스 정차 시 양방향 차로 진행차량 정지 ▲어린이 통학로 지정(교육시설 주출입문부터 어린이의 집) ▲통학버스 동승자의 안전교육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제2하준이법’은 국회에 2년째 계류 중으로 경사진 곳에 주차장을 설치하는 경우 차량의 미끄럼 방지를 위한 고임목 설치와 주의 안내 표지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했고, 위반 시 6개월 미만의 영업정지 또는 300만원 미만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주차장 사고 예방, 실효적 대책 마련을 위해 기계식 주차장에만 적용되던 ‘사고보고 및 사고 조사 의무’를 전체 주차장으로 확대했다.

지난 5월 발의돼 6개월째 국회에 계류 중인 ‘태호‧유찬이법’에서는 ▲어린이를 탑승시켜 운행하는 차량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대상 포함 ▲적용 대상 체육시설업에 체육시설을 소유·임차해 교습하는 업종까지 추가 ▲어린이 통학버스 표지‧보험 가입 등 안전요건 미비 시 500만원 과태료 부과 ▲승차인원 안전기준을 넘지 않도록 좌석 안전띠 착용 확인‧안전운행기록 작성을 의무화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한 고지 방법 강화(학원, 체육시설 등 해당 시설 홈페이지 등 게시) 등이 명시돼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어린이 안전을 위한 체계적 대책 마련이 많이 늦었다”며 “올해 안에 반드시 처리한다는 각오로 야당을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정식 정책위의장도 “‘민식이법’, ‘제2하준이법’ 등의 본회의 통과까지 당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겠다.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하도록 하겠다”며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 대책의 종합적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강화대책으로는 ▲어린이 보호구역 내 과속카메라‧신호등 설치 예산 1000억원 증액(무인카메라 8800대·신호등 1만1260개 3년간 순차 설치) ▲안전표지‧과속방지턱‧노랑 신호등‧‘옐로 카펫’ 등 대폭 확충 ▲어린이 보호구역 사업대상 지역 올해 351개소 대비 50% 이상 확대 ▲운전문화 개선 ▲통학버스 안전관리 강화 ▲신고 의무대상 확대 등을 내놨다.

당정이 어린이 보호법안의 국회 처리를 강력히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일각에서는 패스트트랙 지정법안, 예산안 등 굵직한 현안에 밀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국민과의 대화’ 이후 높아진 관심에 해당 법안들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진행 중인 ‘어린이들의 생명안전법안 통과를 촉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청와대 청원의 참여인원은 35만7039명이다.

‘폐기 위기’에 있던 어린이 보호 법안들이 20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어린이 자녀를 둔 대다수의 부모들에게서는 안도하는 분위기가 관측된다. 서울 은평구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녀를 둔 최아무개씨는 “관련 사건들이 나올 때마다 걱정이 많이 됐다”며 “법안들이 통과되면 운전자나 학교, 학원 등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될 것으로 기대돼 조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어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 고생해 오신 어린이들의 부모님께 힘을 드리지 못해 죄송했고,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회의 ‘늦장처리’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경기도 분당에서 미취학 아동 2명을 키우고 있는 이아무개씨는 “김민식 군 부모를 포함한 많은 분들께서 국회, 정부 등에 그토록 많은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왔었는데, 그동안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용서가 되지 않는다”며 “지금 ‘밥 그릇’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선거제처럼 논의한 적이 있나. 그게 정치냐”라며 강력 비판했다.

이와 같은 부모들의 공분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된 어린이 보호 관련 법안 발의‧처리 현황을 보면 더욱 잘 이해가 된다. 20대 국회에 발의된 ‘어린이’ 관련 법안은 35건에 불과하고, 이 중에서 처리된 법안은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5건(대안반영폐기 2건)에 불과하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번처럼 어린이 관련 법안이 국회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드문 사례”라며 “어린이들의 안전 등 보호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만큼 정부와 국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린이 보호 법안과 정책들이 이슈가 될 때에만 땜질식, 날림식 등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있다. 보다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법안과 대책이 강구되도록 여야 구분 없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여러 법안에 산재돼 있는 어린이 보호 관련법과 대책을 정리하고, 주관 부처도 명확히 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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