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터에 지은 상업·업무시설 중심 신도시···일본식 베드타운 콘셉트 바꾸다
1800여개 기업 입주···실거주자·입주기업 초첨 맞춰 제2의 도약 꿈궈

 

일본 요코하마시 신도시 ‘미나토미라이21‘이 한 눈에 보인다. / 사진=시사저널e
일본 요코하마시 신도시 ‘미나토미라이21‘이 한 눈에 보인다. ⓒ시사저널e

 

일본 도쿄 시부야를 떠나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40여분 달리자 일본 개항의 역사를 머금은 도시 요코하마에 진입했다.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시청을 지나 해안가로 방향을 트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와 맞닿은 도로의 끝자락 요코하마 국제여객터미널에 닿았다.

일렁이는 파도를 느끼는 것도 잠시, 시선을 뒤로 돌리자 바다를 배경으로 각종 빌딩과 문화시설 등이 조화를 이루며 눈앞에 펼쳐졌다. 보통 신도시라고 하면 아파트로 가득찬 주거지역을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에는 기존 고정관념을 깬 이색적인 신도시가 있다. 바로 ‘미나토미라이(Minato Mirai)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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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고정관념 깬 새로운 신도시 풍경

기자가 지난 9월 5일 방문한 미나토미라이21 신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1950~70년대 고도성장기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공업도시의 흔적에 현대적 감각을 입혀놓았다. 조우노하나(象の鼻) 공원을 거쳐 신코바시(新港橋) 다리를 건너자 적벽돌로 된 오래된 건물 두 동이 눈에 들어왔다.

요코하마항 운영 당시 무역을 통해 오가던 화물을 보관하던 아카렌가(横浜赤レンガ) 창고다. 한때 요코하마항의 기능이 떨어지자 이 창고도 방치됐다. 지난 2002년 전면 리모델링을 진행해 현재는 한 동은 전시관과 이벤트홀, 다른 동은 쇼핑몰과 레스토랑,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리모델링 후 이 낡은 창고는 미나토미라이21 대표 관광 명소로 진화했다.

키샤미치(汽車道) 산책로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자 1859년 미일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일본 첫 개항장이 된 요코하마의 역사를 담은 ‘개항의 길’이 나왔다. 사쿠라기초(桜木町駅)역과 야마시타(山下)공원 사이 3.2km 구간에 있던 철로 구간을 산책로로 조성한 공간이다. 산책로 조성 전 1911년 개통돼 1985년까지 75년간 기차가 운행했는데 지난 2002년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개항의 길 중간쯤을 걸어가자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등장했다. 거대한 문(門)의 나비오스 요코하마 호텔이다.

 

 

이 호텔이 특이한 모양을 띈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길을 걷는 시민들의 바다 조망을 배려한 것이다. 사람을 배려하는 도시 디자인을 중시하는 미나토미라이21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차량을 타고 중앙지구 쪽으로 이동하자 곳곳의 건물들이 우리나라의 육교식으로 도로와 연결돼 있었다. 넓은 인도가 눈에 띄었다. 원래 공공용지인 인도의 넓이는 이보다 좁았는데 토지주가 자신의 땅 일부를 공공용지로 양보했다고 한다. 덕분에 건물 숲을 지나면서도 갑갑함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미나토미라이21 곳곳에 사유지와 공유지가 혼재된 공간이 있었다.

◇요코하마 도시기능 강화 취지로 시작

요코하마는 수도 도쿄 가까이에 있다 보니 예전에는 이른바 ‘베드타운’ 기능이 강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 요코하마의 도시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게 바로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다. 그리고 현재는 일본에서 기업 유치와 도시 조성 측면에서 성공한 신도시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9월 5일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상업지구에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 사진=최기원 PD
지난 9월 5일 일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상업지구에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시사저널e

미나토미라이21은 요코하마시 나카구(中区)와 니시구(西区)에 걸쳐있는 약 1.86km²의 해변 지역이다. 면적의 0.76km²는 매립지이다. 과거 이 지역엔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었는데 요코하마는 이 조선소를 중심으로 두 지역으로 분리돼 있었다. 1983년 미쓰비시 조선소 이전이 완료되면서 이곳에 공터가 생기게 되자 시 당국은 두 지역을 일체화하는 도시계획 일환으로 신도시를 조성하게 됐다.

미나토미라이21은 도시설계상 총면적 186ha, 수용인원 19만 명, 거주인원 1만 명으로 구상했다. 당초엔 이곳에 상업지구를 만들어 도쿄에 대한 의존성을 낮추는 데 중점을 뒀으나 상업지역만 만들게 되면 퇴근 시간 이후엔 도시가 비는 문제점이 제기돼 사람이 1만 명 정도 거주하는 거주지역도 만들게 됐다. 기본적인 개발 골격은 유지하되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면서 신도시를 만들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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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시에 따르면 올해 1월 현재 미나토미라이21의 수용인구는 10만8000명, 거주인구는 9000명가량이다. 거주인구는 90%가량을 채웠고 수용인구는 계획보다 8만 명가량 적다. 토지 개발은 84% 완료됐으며 6%는 임시 사용 중이다. 미개발지는 10% 정도다.

엔도 타쿠야 요코하마시 미나토미라이21 추진과장은 “예전엔 상업시설을 많이 지으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R&D 연구기관이 많이 들어왔다”며 “요코하마가 관광으로 주목받다보니 음악홀, 라이프하우스 등 관광시설도 입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대 흐름에 따라 도시 계획이 조금씩 바뀐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현 수용인구가 계획보다 작다고 해서 실패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자체 디자인 지침으로 아름다운 도시 조성

미나토미라이21은 일본 내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이유가 있었다. 요코하마시는 도시 경관을 중시해 자체 디자인 지침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거리에 따라 벚꽃이나 버즘나무 같은 계절을 대표하는 가로수를 심었다. 바다를 향해 가는 곳에 있는 가로수는 잎이 떨어지는 가로수를, 바다와 평행한 옆쪽에는 1년 내내 잎이 지지 않는 나무를 심어 놨다.

 

땅 속도 질서정연하다. 지하에 공동구 터널을 만들어 전봇대를 없애고 전선이 지진에 쉽게 파손되지 않도록 했다. 민관 프로젝트들이 연계돼 협력해 나가면서 하나의 도시 경관을 만들어갔다.

우리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격인 UR도시기구의 마츠모토 신지 주간은 “미나토미라이21에는 상업시설이 많은데 전봇대를 만들면 경관이 안 좋기 때문에 아래쪽으로 전기 등을 공급할 수 있는 터널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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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보러 타 도시 주민이 오는 경우도 많다. 도쿄에 사는 마즈쿠치 타치미씨는 “미나토미라이21에 종종 오는데 도시 자체가 뭔가 탁 트여있고 조용한 느낌이다”며 “이곳에 오면 생기를 되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문객 수 증가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2009년 미나토미라이 방문객수는 5000만 명대 초반이었으나 지난해에는 8300만 명으로 늘었다.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미나토미라이에 거주하는 모리야 아스카씨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산 지 8년 정도 됐는데 아이들 키우기에 굉장히 좋아요. 근처에서 놀아도 위험하지 않죠. 집을 조금만 벗어나도 (가까이에 상업지역이 있어) 무엇이든 살 수 있어 편리해요. 가능하면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다른 한 30대 여성 주민은 “교육환경이 우수하고 쇼핑몰, 의료시설이 잘 조성돼 있고 도시가 깨끗하게 조성돼 좋다”며 “공원이랑 바다도 잘 조성돼 있어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닛산 등 日 대표 기업 입주···자율적인 도시개발 참여

미나토미라이21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컸다. 조성이 시작된 1983년부터 2016년까지 건설투자효과는 총2조8827억 엔, 2016년 기준 도시 운영효과는 연간 2조446억 엔에 달한다. 무엇보다 기업 유치 실적이 도드라진다. 과거 수도 도쿄에 집중됐던 기업들이 미나토미라이21로 속속 옮겼다. 미나토미라이21 내 기업체 수는 2009년 1200여 개에서 지난해 1810곳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취업자수는 6만여 명에서 10만7000명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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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기업들이 미나토미라이에 큰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신도시 기반이 정비됐음에도 건물이 좀처럼 들어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자체의 유치 노력이 계속되면서 기업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엔도 과장은 “하나 둘 미나토미라이21로 옮기기 시작하더니 도쿄의 가장 비싼 지역에 있던 긴자 본사, 일본 간판 기업인 닛산이 각각 이전을 결정하면서 타 기업도 이전을 고려하는 상승효과가 일어났다”며 “이후 시세이도, 무라타제작소 등을 비롯해 한국의 LG도 미나토미라이21에 연구개발 시설을 착공했다”고 말했다.

미나토미라이21은 입주 기업들이 자체적인 건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도시개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먼저 입주 기업 등 토지소유권자들이 ‘마을 만들기 기본 협정’이라는 자율적인 디자인 지침을 만들었다. 시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빌딩 등 건물을 지을 때 내륙 대비 해안가는 낮게 짓자는 스카이라인도 자체적으로 정했다. 이러한 자율적인 디자인 지침으로 신도시 모든 건물 1층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하자는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닛산은 1층에 닛산 자동차를 전시해 누구든지 볼 수 있게 하고 입주 예정인 LG는 1층에 LG의 첨단 기술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식이다.

보통 도시에선 공공 부지와 민간 사유지 구분이 명확하지만 미나토미라이21에선 구분 없이 공유된 공간도 있다. 도로에 다리를 놓을 때 민간기업에서 다리 부지를 제공, 일반 시민들이 다리를 건널 때 부담 없이 걷도록 하고, 시야를 확보해 쾌적함을 느끼도록 했다.

◇경기 영향 안 받고 도시정책 원칙 유지

 

미나토미라이21는 정책 결정자들이 순간순간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신도시 추진 취지를 잘 지켜왔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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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과장은 미나토미라이의 성공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미나토미라이21 계획은 30여 년간 진행돼 왔다. 이 시기는 일본 경제가 좋았다가 안 좋아지는 시기였다. 이 기간 일본 경제는 호황기에서 불황기로 접어들었다. 이럴 때 기업을 유치하는 신도시를 조성하는 건 큰 모험이었다. 어떻게 보면 기업 유치보다 사람들이 사는 집을 주로 짓는 ‘베드타운’ 조성으로 바꾸는 게 안전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나토미라이21은 당초 계획을 끝까지 관철했고 그것이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만약 경기가 좋지 않다고 주거지 위주로 조성하는 쉬운 길을 택했다면 미나토미라이21은 그저 그런 베드타운으로 남았을 것이다.

 

미나토미라이21로 인해 요코하마도 베드타운에서 벗어나 자족기능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철 교통량을 보면 과거에 비해 요코하마 지역 전철을 이용하는 승객수가 크게 늘어났다.

요코하마시에 따르면 JR 및 요코하마 도심 지하철 사쿠라기초역과 미나토미라이선 미나토미라이역, 신타카시마역의 이용객을 합한 연간 총 이용객은 2008년 3750만 명에서 2017년 4918만 명으로 늘어났다. 마츠모토 실장은 “요코하마와 도쿄 부도심 시부야를 묶는 토요코선이 있는 데 과거엔 도쿄 방면을 타면 텅 비어있었는데 요즘엔 요코하마 방면도 꽤 타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미나토미라이21은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야 할 시기를 맞았다. 신도시 조성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면서 제2의 도시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초점은 실거주 주민과 기업에 맞춰져 있다.

엔도 과장은 “지금 개발이 90% 정도 진행됐는데 100% 완료되기 전까지는 새로운 시설을 열었다는 뉴스는 계속될 것”이라며 “개발이 끝날 때까지 도시 조성을 얼마나 성숙하게 해서 미나토미라이21의 매력을 더 높게 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예를 들어 많은 기업 시설들이 있는 상황에서 기업간 연계를 해 나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이른바 ‘에어리어 메니지먼트’를 들 수 있다”며 “이곳에서 실제 활동하는 분이 일을 맡으면서 미나토미라이21의 매력을 높여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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