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 금지하되 공모신탁은 권장”···모호한 금융당국 입장
설익은 DLF 대책에 시장 혼란 가중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연합뉴스

대규모 원금 손실로 논란을 빚은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은행의 고난도 상품 판매 규제안을 내놨지만 설익은 대책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당국은 고난도 상품 중 공모펀드는 판매를 허용해 사모펀드에서 공모펀드로 중심 판매 채널 전환을 유도하겠다고 했으나 사모와 공모의 구분이 어려운 신탁까지 전면 금지해 은행권에선 불만이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 자산관리(WM)·신탁 담당자들이 공모 상품의 신탁은 판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전날 금융당국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은행에서 공모형 주가연계증권(ELS)을 신탁에 편입해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침을 검토 중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14일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원금 손실이 최대 20~30% 이상인 상품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해, 은행이 이를 창구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문제는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신탁까지 고난도 상품으로 규정해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는 점이다. 투자자 모집 방식상 펀드나 증권과 달리 신탁상품은 공모·사모를 나눌 수 없다. 은행들은 이를 사모펀드와 묶어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은행은 ELS를 편입한 주가연계신탁(ELT)을 주로 판매했다. ELS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를 웃돌기 때문에 이를 담은 ELT 역시 고난도 상품에 해당돼 판매 금지 대상이다. 은행 입장에선 사모펀드 규제보다 신탁 판매 제한이 더 큰 타격이다. 사모펀드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8월 은행 ELT 판매액은 42조8000억원(잔액 기준, 파생결합증권신탁(DLT) 포함)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DLF 판매액이 4조3000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규모다.

앞서 금융당국은 DLF 대책을 내놓으며 사모펀드는 규제하되 공모펀드에 대해선 판매를 허용해 은행의 상품 판매 채널을 사모 상품에서 공모 중심으로 옮겨가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날 “신탁은 사실상 사모라고 하는데, 신탁을 (공모와 사모로) 분리만 할 수 있다면 (공모 신탁을) 장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금융당국이 내놓은 DLF 대책에는 이러한 고려가 빠져 있어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주로 취급하는 신탁상품인 ELT는 형식적으론 사모 형태이지만 규제나 공시 및 감독 규정 측면에선 공모 상품에 준하는 관리를 해 왔기 때문에 공모적 성격이 있다”며 “애초에 문제가 생긴 상품은 사모펀드인데 신탁까지 판매를 금지하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규정하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며 “최대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이면 고난도 상품이라고 규정하겠다고 했는데 손실 가능성을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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