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일반관리비로 노동자들 여전히 저임금···자회사 책임 없어도 원청의 사정 변경으로 계약 해지 가능

지난 18일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업무 자회사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도로공사가 직접고용 회피를 위해 자회사를 설립했다며 도로공사가 실질적인 사용자라고 주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8일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업무 자회사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도로공사가 직접고용 회피를 위해 자회사를 설립했다며 도로공사가 실질적인 사용자라고 주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여러 공공기관들이 정규직화 방식으로 자회사 방침을 고수하면서 노동자들은 하청 소속일 때와 같이 안전사고에 취약하고 중간착취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의 자회사 정책 피해증언 기자회견이 20일 민주노총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톨게이트, 국립대병원, 한국공항공사, 가스공사, 분당서울대병원, 한국철도공사. 인청공항 등의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기자회견 참석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의 하청 노동자 가운데 자회사로 정규직 전환된 노동자는 약 3만명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파견·용역은 노사 및 전문가 협의를 통해 직접고용·자회사 등 방식과 시기를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한 목적은 노동자의 고용불안, 임금 차별 등 사회 양극화의 주요 원인인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의 자회사 방식 정규직화는 당초 목적인 고용불안과 임금 차별 등의 해결에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자회사 방식 정규직 전환 후 노동자들의 임금 개선 수준은 정부 발표치 보다 낮았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는 자회사 전환 후 16.3%의 임금인상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보도의 근거자료인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정책 평가 및 향후과제’에서 다룬 1815사례 중 자회사 고용 사례수는 49명에 불과했다.

지난 6월 3일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화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지난 4~5월 사이 조사했다. 이 가운데 자회사 전환 전과 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취합된 기관 수는 33개다.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자료가 수집된 32개 공공기관의 자회사 전환 후 노동자들의 한달 평균임금은 254만7636원으로 자회사 전환 전보다 10.96%(25만1839원) 올랐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임금 인상률 16%보다 낮았다.

자회사 전환 후 임금 인상이 높지 않았던 것은 하청업체와 같이 자회사가 중간에서 일반관리비와 이윤 보장 등으로 중간에서 가져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에 따르면 이윤을 ‘0’으로 계약한 자회사는 두 개에 불과했다. 최소한 30개의 계약에서 일반관리비 및 이윤율의 합의 비중이 늘었다.

당초 정부 가이드라인에서는 파견용역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시 절감되는 이윤, 일반관리비, 부가세 등 전체 비용의 10~15%는 반드시 전환 근로자 처우 개선에 활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회사의 일반관리비 등으로 정책적 의도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공기관의 자회사 방식 정규직화는 고용 불안도 여전했다.

현재 원청 공공기관과 자회사의 용역계약은 대부분 1년 단위로 이뤄져 해당 용역계약에 의해 고용이 불안정해질 여지가 있다.

특히 적극적인 계약 해지에 관한 조항, 계약해지에 대한 일반적 책임 조항들을 원청 모기관과 자회사의 용역계약에 포함하고 있어 고용 불안의 요인이 존재한다. 실제로 원청 공공기관들은 자회사와의 계약 자체에 원청 예산 감소, 정부 정책 변화, 자회사 쟁의 등의 이유로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중소기업은행, 중소기업유통센터,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은 자회사의 쟁의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예산의 감소나 미확보, 정부 정책의 변화 등으로 자회사와의 계약 해지가 가능하도록 했다.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된 곳에서는 안전사고 가능성도 이어졌다. 원청과 하청으로 분절로 인해 유기적으로 수행돼야 할 업무가 단절돼 노동자와 국민의 안전 모두에 위협을 줄 수 있다.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KTX 열차는 철도공사 소속 열차 팀장 1명,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승무원 1~2명이 모든 객실을 책임지고 있다. 불법파견을 회피하기 위해 열차 팀장이 안전업무를, 승무원이 서비스 업무를 담당한다. KTX가 만석일 경우 열차 팀장 1명이 1000여명 승객의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사고 발생 시 자회사 소속 승무원은 신속한 상황 파악과 대처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지난 5월 한국잡월드 청소년체험관 생명공학연구소 체험 콘텐츠 리뉴얼 과정에서 자회사 소속 강사들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기(UV조사기)가 도입됐으나 해당 기기를 보조 장비 없이 육안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기기 업체의 주의사항이 강사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아 강사들이 1개월 동안 보조 장비 없이 기기를 사용했다. 이로 인해 눈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게 강사들의 주장이다.

특히 자회사 방식은 원청 사용자들에게 책임 회피가 가능하다. 자회사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작업환경은 원청회사가 실질적으로 결정하지만 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은 묻기 어렵다. 자회사 노동자들이 자회사와 단체교섭을 해도 자회사는 아무런 권한이 없어 자회사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공공기관 자회사 및 하청 노동자들은 “공공기관의 유지 운영에 필요한 상시적 업무는 외부로부터의 공급이 아닌 직접고용‧상시고용으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자회사 전환은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하고 인력공급형에 불과한 자회사로의 전환은 금지해야 한다”며 “톨게이트 요금 수납업무처럼 불법파견이 명확한 경우, 발전 연료운전과 경상정비 업무 등 외주화로 인한 안전 문제가 확인됐거나 불법파견의 여지가 있는 경우 반드시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자회사 실태 점검을 통해 인력 공급형에 불과한 자회사는 모회사 직영화를 실시해야 한다”며 “노사전협의 과정에서 기존 자회사에 대한 직영화 합의·권고 등이 있었던 코레일관광개발 등의 경우 즉각 직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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