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인물 및 집단 눈치 보기 경우가 대다수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또 실제로 경영에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눈앞에 예상되는 대형 위기보다 예상치 못하게 등장하는 위기가 기업들에겐 더 아프게 느껴지고 타격이 된다. 이 불확실성 중 가장 기업들에게 치명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정부의 기업 정책이다. 어차피 기업은 주어진 법과 제도 하에서 전략을 세우는 탓에 이 룰 자체가 흔들리면 모든 전략이 무너져버리고 투자는 곧 헛돈을 쓴 게 된다.

오락가락 기업 정책 이면엔 ‘눈치보기’라는 특유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 끌고 가다가 아들이 타면 사람들이 아들을 욕하고, 아버지가 타면 아버지를 욕하는 통에 둘이 당나귀를 들고 가다 넘어졌다는 이야기를 기업들은 마냥 웃으면서 들을 수가 없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정부를 믿고 사업하다가 검찰에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를 보라. 그 이면엔 택시업계 눈치보기가 있었다. 모든 나라가 차량공유 사업을 들여올 때 겪은 일이 택시업계와의 갈등이다. 허나 모든 나라가 우리처럼 해당 건을 처리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정부들은 허가를 해주거나 혹은 해주지 않거나 각자의 법과 원칙에 따라 명확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4차 산업을 키워야 한다며 사업을 허가해 주든, 그게 아니면 아예 허가를 해주지 않으면서 승차거부 등 택시 관행을 고치든 어떤 결론이 됐든 간에 빠르고 명쾌하게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눈치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그 사이에 낀 한 기업인을 재판받게 만들었다.

재밌는 것은 그 이후에도 눈치보기를 의심케 하는 행동을 하는 정부 인사들이 보였다는 점이다. 검찰이 기소하니 몇몇 정부 인사들이 갑자기 ‘무리한 기소 아니냐’며 검찰을 욕했는데, 결국 이 역시 자신들이 욕먹기 싫어서 내놓는 ‘눈치보기’ 행동의 연장선상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불법사안인지 아닌지 부터 해결을 해야지, 불법인대로 두고 이를 집행하는 쪽에서 ‘알아서 적당히 판단했어야지’라는 식의 분석이 과연 정상적인 분석인가.

1년 넘게 벌어지고 있는 진에어 국토부 규제도 눈치보기 비판이 나오는 사안 중 하나다. 해당 제재는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갑질’ 의혹 이후 갑자기 시작됐다. ‘외국인 등기임원’을 문제 삼았는데 재밌는 것은 국토부 관계자들이 그 전까지 그 위법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 전 전무가 경영일선에서 빠진 후 진에어는 경영문화 개선과제 사안을 이행했다고 국토부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여전히 제재 중이다. 업계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제재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왜 제재를 계속 하는지, 부족하다면 뭐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등에 대해 도대체 명확치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속 ‘여론 눈치를 보고 있다’와 같은 이야기가 불거진다.

조현민 전 전무가 한진칼로 복귀한 것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추측은 있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조 전 전무가 진에어 뿐 아니라, 한진그룹 어떤 곳으로도 복귀를 안해야 제재를 풀어준다고 명시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제재를 안 풀어준다는 것이 공식입장인지, 그것만 해결되면 풀어줄 것인지 여부도 아직 100% 명확치 않다.

눈치보기 기업정책은 현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 탄생한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강제휴무 정책을 보라. 목표한 정책효과는 재래시장 살리기인데 지금 그 정책으로 재래시장이 살아났나? 당시 몇몇 정치권 인사들에게 해당 정책에 대해 물었는데, 많은 이들이 정책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봤지만 어느 누구도 반대 입장을 내놓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역시 눈치보기. 대형마트 편드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말을 못했단다. 박근혜 정권 당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합병 심사 장기화 사태 역시 대표적 눈치보기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눈치보기 정책의 부작용은 역설적으로 억울한 이들이 양산된다는 것이다. 눈치보기가 일반 국민들 눈치를 보는 것이라면 차라리 낫다. 허나 정부정책 눈치보기는 대부분 특정 인사나 특정 집단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만 이득이다. 눈치보기 정책을 ‘국민 뜻 헤아리기’로 포장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목소리 큰 사람, 혹은 영향력 센 사람이 이기는 사회임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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