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대기업에서 선호했지만 핵심 보직 맡는다는 점이 트렌드
다양한 분야 이해 깊어 불확실성 커지는 시대 수요 커져
오너들 젊어져 글로벌 경영문화 친숙해진 점도 한 몫

(왼쪽부터) 홍범식 LG경영전략팀 사장, 지영조 현대자동차 전략기술본부장(사장),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오규석 포스코 신성장부문장(부사장). / 사진=각 사
(왼쪽부터) 홍범식 LG경영전략팀 사장, 지영조 현대자동차 전략기술본부장(사장),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오규석 포스코 신성장부문장(부사장). / 사진=각 사

최근 국내 대기업들의 외부인사 영입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중에서도 글로벌 컨설팅 업체 출신들이 약진하고 있어 재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단순 국내기업으로의 이직을 넘어 요직을 맡고 있는데, 위기 속 핵심 전략통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 기획팀에 구자천 상무를 영입했다. 과거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바 있는 구 상무는 2011년부터 베인앤컴퍼니에서 IT(정보기술) 분야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30대인 그가 삼성전자 임원으로 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그가 맡은 시스템LSI사업부 기획은 삼성전자 내에서 상당히 중요도가 높은 업무다. 쉽게 말하면 어떤 제품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일이다. 메모리에 비해 제품이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더 중요하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고 시장을 보는 눈도 있어야 해서 맞는 인재를 쉽게 찾기 어렵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컨설팅 업계에서 시장을 봐왔던 구 상무에게 적합한 역할이라는 평이다.

지난달엔 이마트에서 획기적 인사가 있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 대표이사를 영입한 것이다. 강희석 대표가 주인공인데 그 역시 베인앤컴퍼니에 몸담으며 소비재 유통부문 파트너를 지냈던 인물이다. 그는 최근까지도 신세계 미래전략을 짜왔다.

LG는 2019년 임원인사에서 경영전략팀 사장자리에 외부인사인 홍범식 사장을 앉혔다. 구광모 회장의 전략통 역할을 해야 하는 핵심 보직인데, 이 역할을 맡게 된 홍 사장은 베인앤컴퍼니 코리아 대표 출신이다. 구 회장이 인수합병 등 대규모 투자 및 경영전략을 펼치는데 있어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지난 인사를 통해 오규석 신성장부문장(부사장)을 영입했다. 철강사업 만으론 한계가 있는 시대에 신사업을 개척해야 하는 중책을 맡은 그는 글로벌 컨설팅기업 모니터그룹 출신이다.

현대차는 지난번 임원 인사에서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세계 3대 컨설팅업체 중 하나인 맥킨지를 거친 바 있는 지 사장은 그룹 내 위상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가 맡은 전략기술본부는 현대차의 미래먹거리를 준비하는, 정의선 수석 부회장이 특히 챙기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 글로벌컨설팅업체 임원은 “베인앤컴퍼니가 많이 언론에 알려지고 있지만 실제론 다른 곳 출신들도 IT, 금융 분야 등 다양한 방면에서 영입해 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국내 재계에서 컨설팅 업체 출신들의 몸값이 올라가는 모습인데 이들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단순히 한 자리를 맡는 수준이 아니라, 오너가 신경을 쓰는 부서이거나 오너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곳, 혹은 전략상 중요한 곳에서 핵심보직을 맡는다는 것이다. 한 글로벌컨설팅 기업 임원은 “컨설팅 업계 출신이 잘 팔린다는 것은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고, 달라진 것은 나이대가 더 어려지고 요직을 맡게 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기업이나 정부조직에서의 경험과 컨설팅업계에서의 경험을 모두 갖춘, 쉽게 말해 실무와 전략통으로서의 경험을 모두 겸비한 인물이 잘 팔린다는 점도 특징이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컨설팅 업계 출신들이 기업의 요직으로 진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경영환경이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임원을 영입한 한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점차 산업영역이 복잡 다원해지고 있는데, 기업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밖에 보지 못한다”면서 “글로벌컨설팅 업계 출신은 다양한 분야를, 그것도 양질의 정보와 사람들을 접하며 두루 들여다본 경험이 있어 불확실성 큰 시대에 시장을 전망하는 능력이 탁월해 많이들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는 기업들의 세대교체도 한 몫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재 삼성, 현대차, SK, LG 등 대다수 기업들이 세대교체를 이뤘거나 오너가 젊은 편인데, 글로벌 문화를 경험한 이들은 과거 세대보다 컨설팅에 대한 신뢰가 두텁고 거부감이 덜하다는 전언이다. 한 10대 그룹 인사는 “요즘 오너들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 등 해외 경험이 많이 글로벌 경영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다”며 “이와 더불어 세상도 바뀌었기 때문에 과거 세대들과는 경영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계 인사들은 대부분 외국대학 출신이거나 글로벌 시장에 대한 이해가 밝은 편이다. 국내 기업들이 이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분석도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