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고발사건서 나경원·황교안 “내 책임” 발언은 궤변

“저희 자유한국당이 책임질 일이 있다면 원내대표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 다시 한번 드린다.”

판사 출신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후 이같이 말했다. 한국당 의원 60명이 고소·고발됐으니, 자신이 남은 59명의 법적 책임을 모두 떠안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비슷한 광경은 지난 10월 1일에도 있었다. 검사 출신이자 법무부 장관을 지낸 황교안 당 대표는 검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검찰에 자진 출석해 “이 문제에 관해서 책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당 대표인 저의 책임이다. 검찰은 나의 목을 쳐라. 그리고 거기서 멈추라”고 말했다. 그는 노골적으로 “당에 당부한다. 수사기관에 출두하지 마시라. 여러분들은 당 대표의 뜻에 따랐을 뿐”이라고도 했다.

모두 궤변이다. 원내대표와 당 대표가 당내 입지를 굳건히 하고자 내놓은 정치적 메시지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타인의 형사적 책임을 대신해서 질 수 있다는 법률 규정이 없다. 또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 역시 없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황교안 당 대표는 초법적인 상상을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두 사람의 주장은 명분도 없다. 국회법에 회의방해죄 등 엄벌 규정을 주도적으로 도입한 당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었다. 새누리당은 갈등과 폭력이 일상화됐던 국회를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19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선진화법을 공약을 내걸었다. 자신들이 주도해 만든 법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저항권을 행사했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 저항권이란 공권력의 행사자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려는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이 공권력에 대해 폭력·비폭력, 적극적·소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국민의 권리다.

한국당은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사보임(사임과 보임)과 의안 전자발의 등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이런 근거로 국회 점거 등 물리력 행사가 정당한 저항권 행사라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저항권 행사 요건을 살펴보자. 헌재는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 사건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중대한 침해가 있을 경우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을 경우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회복이라는 소극적 목적에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경우 등 저항권의 행사 요건 3가지를 제시했다.

위 요건에 비춰봤을 때 한국당의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먼저 의원 사보임은 국회 관례로서 이어져 왔고, 의안 전자발의가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민주적 기본질서가 중대하게 침해됐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또 저항권은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있지 않을 때 행사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데, 한국당은 오히려 권한쟁의 심판이라는 법적 절차를 진행했다. 또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들이 12월 3일 본회의에 부의될때까지 다른 당과 협의하는 등 다른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다. 애당초 저항권 행사가 불가피한 최후의 상황이 아닌 것이다.

아울러 헌재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했는데, 한국당은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저항권을 ‘정치적’ 수단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정치인들이 궁색한 정치 수사(修辭)로 사법절차를 어지럽히더라도 국민은 이를 꿰뚫어 본다. 국민들은 법 집행이 국회의원들에게만 시혜적으로 이뤄지길 원치도 않는다. 한국당은 수사기관의 수사에 적법하게 응하고, 기소돼 재판을 받더라도 저항권행사를 주장해 무죄 판결을 받으면 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당이 강조하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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