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방위적 지소미아 유지·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압박
일본엔 수출규제 조치 철회 압박 없어
한국 정부, 日 수출 규제 조치 철회해야 지소미아 유지 입장
전문가들 “지소미아 종료돼도 주한미군 철수는 어려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리마를 방문, 미국의 주력 탱크 'M1 에이브럼스'를 생산하는 군용전차공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리마를 방문, 미국의 주력 탱크 'M1 에이브럼스'를 생산하는 군용전차공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한국 정부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을 압박하면서 한국 정부가 외교적 최대 난제를 만났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해 한국에 지소미아 유지를 압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일본의 한국 대상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결정한 만큼 일본의 조치가 함께 있어야 지소미아 유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빌미로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시작했다. 일본은 한국 대상 반도체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강화했고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당시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의 무역관리가 불충분해 군사 전용 가능 물품이 북한으로 넘어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5월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위험 행상 지수’에 따르면 세계 200개 국가들의 전략물자 무역관리 제도 수준에서 한국은 17위로 일본 36위보다 높았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을 믿지 않는 상황에서 정보 공유의 최고 수준인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 지소미아는 오는 23일 0시를 기해 효력을 잃는다.

이후 한국 정부는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하면 지소미아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전방위적으로 지소미아 유지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 정부 및 미군 고위 관계자들은 지소미아 유지가 필요하다며 이를 종료하면 북한과 중국에만 좋은 일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문 대통령은 오는 15일 청와대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을 접견한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고 언급해왔다. 또 같은날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도 미국 정부 및 미군 인사들은 한국에 지소미아 유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미국은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수출 규제 조치 철회에 대해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다. 수출 규제는 한국과 일본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미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에는 침묵하면서 한국에만 지소미아 유지를 압박하는 것은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이 한국에 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압박하는 것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다. 오는 15일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도 미국은 한국에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면 참여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은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도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 참여 압박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미국은 한국에 인도·태평양 전략에 전면 참여를 압박하며 요구한 뒤에 한국이 이에 합의하면 이를 근거로 소파(SOFA,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해서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려 할 것”이라며 “지금 소파 규정에는 방위비 분담금을 올릴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도 “미국의 지소미아 유지 압박은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라는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며 “미국은 한미동맹과 한국의 역할을 중국 견제를 위해 사용하고 싶은 의도가 있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통해 중국 견제를 위한 최전방으로 한국을 활용하려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나 명목상 한반도에서 유사 사태가 있을 경우 미국에게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연결고리인 유엔사와 지소미아가 중요하다”며 “미국은 내일 한미안보협의회의 등에 인도·태평양 전략 얘기를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이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의도에 따라 한국에 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은 곤혹스럽게 됐다.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의 원인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보기 때문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지소미아 종료 원인인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그대로 두면서 한국에만 지소미아 종료를 철회하라는 미국은 한국에 내정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도 미국이 누리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를 외면한 것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이익을 누리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지금도 다 쓰지 못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에 맞춰야한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철회해도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호르무즈 해협 파견 등에 대해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 시 지소미아 유지라는 원칙대로 가야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미국은 일본에는 수출 규제 조치 철회를 요구하지 않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는 한일 간의 문제라는 입장인데 사실상 미국이 일본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라며 “한미일은 지소미아 체결 전에도 안보협력에 문제가 없었다. 지소미아가 종료될 경우 한·미·일 정보보호약정(TISA) 활용 등을 통하면 한미일 한보협력에는 큰 지장은 없다”고 밝혔다. 또 “지소미아 종료시 미국이 반발하겠지만 기존의 한반도 문제를 제약하는 틀을 탈피하려면 문재인 정부가 난관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지소미아 종료 시 한미동맹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 미국이 압박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곤혹스럽다”며 “그러나 지소미아를 종료하면 한미관계가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이 안 되는 상황을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바와 달리 지소미아가 종료돼도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등의 일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김현욱 교수는 “지소미아 유지의 필요성은 과거보다는 낮아졌으나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소미아가 종료돼도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긴 어렵다”며 “미국은 한미동맹과 한반도라는 주요 요충지를 포기하긴 어렵다. 주한미군을 줄이진 못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성렬 위원은 “지소미아가 종료한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에 불이익을 줄 것은 없다. 전략적 요충지인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빼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한반도 분단 체제를 넘어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만들어 가야하는 상황에서 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의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김광수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북한정치 전공)은 “남북이 합의한 4.27판문점 선언, 9.19평양공동선언에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의 적대관계 종식과 군축을 합의했다”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은 이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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