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사업비 증가 막기 위한 검증절차 취지 불구
일선 현장선 추가시간 소요에 조합원 간 찬반 갈등 부추겨

철거작업을 진행하는 둔촌주공아파트 모습 / 사진=연합뉴스
철거작업을 진행하는 둔촌주공아파트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좋은 취지로 만든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장 공사비 증액 검증절차를 울며겨자먹기로 포기하는 조합의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상한제를 피하는 게 급선무여서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정비사업의 공사비와 직결된 고질적 분쟁과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공사비가 일정규모 이상 증액된 사업장, 또는 조합원 20% 이상의 동의를 구한 사업장의 경우 한국감정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사비를 검증하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제29조의 2항을 개정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6개월간 유예기간을 거쳐 최근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조합이 기관에 검증을 요구하는 과정도 간단하다. 공사비 검증에 동의한다는 제목의 위임장에 조합원 이름, 동호수, 직인, 연락처 등을 적어 사업주체인 조합에 전달하면 조합이 한국감정원에 전달하는 구조다.

검증절차를 맡은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미 일부 조합은 공사비 증액 부분이 타당한지 검증을 요청해 작업에 착수했다. 감정원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을 빚는 사업장의 경우 조합원이 시공사를 압박하는 카드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제도 시행에 대한 효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공사비 증액분에 대한 충분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조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설득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되레 건설사가 공사비 증액분 검증을 신청한 이례적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사비 증액을 통한 건설사 수익 부풀리기 근절이라는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분양가상한제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속도내는 서울의 주요 정비사업장에서는 되레 조합원 간 갈등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단군이래 최대 정비사업장으로 꼽히는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이다. 이곳은 내달 7일로 예정된 총회가 지연되더라도 공사비 증액에 대한 검증절차를 밟자는 찬성파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속도를 내는데 주력하자는 반대파가 팽팽히 맞선다.

실제 현업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이점을 지적한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총회에서 공사비 증액 안건이 통과되고 난 뒤에 검증기관에서 공사비 부풀리기를 확인했더라도 개선하기 힘들다. 총회 통과는 결국 대다수 조합이 그 공사비를 인정했다는 건데, 20% 이상의 조합원 일부가 뒤집어본다 한들 스스로 자기 부정에 빠지는 꼴이 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총회에서 공사비 증액 안건을 부결시키고 공사비 검증절차를 밟은 뒤 이를 총회에 재상정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사업 속도가 가장 중요한 현 시점에서 조합에겐 제도 자체가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검증절차도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이른바 패싱할 수밖에 없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신청부터 검증까지 처리기간을 공사비 규모에 따라 최대 90일 미만으로 규정했다. 다만 검증에 앞서 시공사가 제출해야 하는 물량산출서와 구조설비 공법 검토서 등을 준비하는데 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사실상 검증절차를 마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수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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