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한계 완성차업계 ‘돌파구=전기차’ 전망에 “정부주도 인프라 확충 선제돼야”
장밋빛 배터리업계 향한 공급과잉 경고에 “피할 수 없지만 아직 우려 단계 아냐”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글로벌 완성차시장이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었다. 수 십여개 브랜드들이 13개 자동차그룹 산하로 자리 잡는 방식의 개편이 진행 중이다. 복수의 업체들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실시될 정도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량이 기존 내연차를 대체하면서 불황의 돌파구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으나,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내연차를 고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상황이다.

이 같은 기조 아래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곳은 배터리업계다. 폭발적인 시장 확대가 점쳐지면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국내외에 대규모 설비증설을 감행한 탓에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대한 시기, 적정수준 이상의 전기차 생산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급과잉 우려도 나온다. 

2014년 이탈리아 피아트와 미국 크라이슬러의 합병으로 탄생한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최근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과의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글로벌 7위 생산량을 자랑하던 FCA는 PSA와의 합병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4위로 뛰어 올랐다. 글로벌 1위는 폭스바겐그룹이며 현대차그룹은 5위로 내려앉게 됐다.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등의 대표 자동차기업들이 합병을 거듭하며 조직을 키워온 탓에 새롭게 탄생하게 될 FCA-PSA자동차그룹의 산하 브랜드만 17개에 달한다. 기존 FCA는 △피아트 △마세라티 △크라이슬러 △닷지 △지프 등을 보유했으며, PSA는 △푸조 △시트로엥 등을 브랜드 라인업으로 뒀다. 사실 이는 최근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경향이기도 하다. 

글로벌 1위 폭스바겐그룹만 하더라도 △폭스바겐 △람보르기니 △포르쉐 △벤틀리 △부가티 △아우디 등의 브랜드군을 갖췄다. 르노-닛산만 하더라도 △르노 △르노삼성 △인피니티 △닛산 등의 유명 업체들을 계열사로 뒀다. GM은 △쉐보레 △캐딜락 △오펠 △GMC △뷰익 등을, BMW그룹의 경우 △롤스로이스 △BMW △미니(MINI) 등의 집합체다.

대부분 인수합병을 통해 그룹화 됐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산하에 △현대차 △기아차 △제네시스 등을 뒀다. 기아차는 인수를, 제네시스는 프리미엄 브랜드 론칭을 통해 시장에 선보였다. 타타(TATA)와 지리(GEELY) 등의 경우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글로벌 대표 자동차그룹으로 부상한 케이스다. 타타는 △랜드로버 △재규어 등을, 지리는 볼보를 인수한 바 있다. 이처럼 세계시장을 대표하는 자동차그룹의 수는 13곳으로 압축됐다.

일부 자동차그룹들은 올해로 접어들면서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폭스바겐이 향후 5년간 7000명을 단계적으로 조절한다고 발표했으며, 포드와 닛산도 지난 5월 각각 7000명, 4800명의 감원계획을 공식화했다. 독자생존이 가능하던 시대를 지나 규모의 경제로의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완성차업계의 오늘날을 대변하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자연히 새로운 시장개척을 위한 ‘마중물’이 필요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 전기차다. 내연기관을 넘어 친환경차량으로의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추고자 했던 셈인데, 기대만큼의 진척속도가 나오지 않고 있다. 폭스바겐그룹과 같이 향후 10년 간 100종 22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마스터 플랜’을 내세운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급변화는 경영환경과 자금난 등을 토로하며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특히 중국·유럽 등과 같이 ‘3대 전기차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여겨졌던 북미시장을 거점으로 둔 업체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미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지속적으로 세계적 흐름인 환경규제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초 각 기관들이 발표했던 전기차 수요예상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경계했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확산에 결정적인 것이 정책적 뒷받침이다”며 “중국의 경우 내연차 분야에서 기술 간극을 좁히는 것에 실패한 뒤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등 전·후방산업 육성과 범국가적 인프라 확충에 열을 올렸고, 여기에 막대한 내수시장까지 더해지면서 명실상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유럽도 자체적인 배터리 산업을 육성함과 동시에 폭스바겐그룹 등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확대에 속속 돌입하는 상황”이라면서 “최근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30년까지 100만개 전기차 충전소를 공헌하며 자동차 업계를 독려하기도 했지만, 이들과 함께 3대 시장으로 거론됐던 북미의 경우 산유국이라는 이유에서인지, 정부도 관련업계도 비교적 시큰둥한 상황”이라 지적했다.

장밋빛으로만 예견됐던 배터리 업계를 향한 우려의 여파는 가장 우선적으로 국내 업체들을 향한다. 현재 자동차 배터리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 등 3개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들에 비해 내수시장이나 완성차 브랜드 수가 적어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중국·일본 등의 경쟁업체들에 비해 다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이유에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보유한 중국의 경우 현지진출을 원하는 완성차 업체들에 자국의 특정 전기차 배터리 탑재를 정부 차원에서 종용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독일·프랑스 등이 주축이 돼 유럽연합 차원의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아시아 3국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자동차 배터리 자급화를 추진 중이다.

최근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빅3’의 신용도에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한신평은 LG와 SK에 ‘AA+’를, 삼성SDI에 ‘AA’ 등급을 매기며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현금창출력 대비 과중한 투자가 지속되면서 재무부담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경쟁이 심화될수록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들 3사는 중국·유럽·미국 등을 중심으로 생산라인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배터리업계는 한목소리로 “공급과잉 등의 우려를 제기할 단계는 아니다”는 반응이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시장, 반도체 시장 등의 사례와 같이 시장 확대에 따른 업체 수 증가에 따른 공급과잉이 현실화되고, 결국 치열한 경쟁 끝에 소수의 업체들만 살아남는 구조는 당연한 것”이라며 “경쟁은 피할 수 없고, 결국엔 품질·기술력을 바탕으로 승부를 봐야겠지만 현재로선 심각한 우려를 표할만큼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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