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부담 경감 위해 집합시험에서 온라인 수강으로 대체
오픈북 형태 평가로 실효성 떨어져···조합장 영향력 확대 우려도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올해부터 농협은행과 지역농협 등 농협중앙회 계열사에 일제히 도입된 승진 자격시험 ‘이패스(e-pass)’ 제도가 내부 직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집합시험이 아닌 개인 수강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기존 승진고시에 비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관리가 허술한 일부 지역농협에서는 대리 시험이나 협력 등의 부정행위도 일어나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자격시험의 의미가 퇴색됨에 따라 인사권자인 조합장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농협은행을 비롯한 농협중앙회 계열사와 지역농협에서는 예년과 다른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11월은 승진고시 합격을 위해 응시 직원들이 시험 준비에 열중하는 시즌이었지만 올해는 그러한 모습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농협은 지난해 12월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승진고시 제도를 폐지했다. 승진고시는 1996년부터 23년간 이어져 온 내부 시험 제도이며 ‘임용고시’와 ‘승진고시’ 두 종류로 나뉜다. 임용고시는 합격하면 1년 이내 과장으로 승진하는 시험이며, 승진고시는 과장 승진 자격을 획득하는 시험이다. 임용고시의 경우 합격률이 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응시 대상은 입사 후 5년(군필자는 3년) 이상으로 시험 결과에 따라 20대에도 과장으로 진급할 수 있다.

지난해 농협이 오랜 기간 유지돼 오던 승진고시를 폐지한 이유는 직원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응시 대상 직원들이 시험에만 몰두하게 돼 정작 본인의 업무에 소홀해진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농협은 승진고시를 폐지하면서 올해부터 새롭게 이패스 제도를 도입했다.

이패스 제도는 기존 집합시험이 아닌 개인 수강 방식으로 이뤄진다. 응시 직원들은 온라인으로 정해진 강의를 모두 듣고 최종 평가에서 60점 이상을 받으면 승진 자격을 얻게 된다. 수강 과목은 ▲농협법 ▲농협회계 ▲농협개론 ▲경제실무 ▲신용실무 등이며 1~2개월에 한 과목 꼴로 수강을 완료하면 된다.

문제는 최종 평가도 온라인상에서 개별적으로 시행하기 때문에 강의와 시험의 실효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교육 자료에서 답을 찾아 기록하기만 하면 돼 별도의 학습이나 노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심지어 일부 관리가 허술한 지역농협에서는 여러 직원이 한 자리에 모여 시험을 도와주거나 부하 직원에게 답을 대신 찾게 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한 지역농협에서 상호금융 업무를 맡고 있는 A씨는 “PC오프제가 도입되지 않은 사무실의 경우 업무 시간이 끝난 후 직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함께 답을 찾아주기도 한다”며 “시험 전에 자료 취합 등을 응시 대상도 아닌 부하 직원들에게 시키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승진 자격시험이 유명무실화될 경우 각 조합의 인사권자인 조합장들의 영향력이 현재보다 더 막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한 일부 능력이 우수한 직원이 빠르게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농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험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업무 지식이나 업무 이해도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며 “열심히 학습할 경우 특진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사라진 것은 조금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어 “물론 시험 점수가 업무 역량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존 집합 평가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새 평가 제도가 누군가에는 유리하고 누군가에는 불리할 수 있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불만들이 속출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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