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중심’으로 변화하는 KPI 시스템···절대평가 전환으로 과당 경쟁 방지
일각에선 은행 수익성 저하 가능성 제기

4대 시중은행/사진=연합뉴스
4대 시중은행/사진=연합뉴스

대규모 손실로 논란을 빚은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배경으로 은행의 과도한 실적 경쟁이 지목되면서 은행권이 너도나도 직원 핵심성과지표(KPI)에서 ‘고객수익률’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KPI 개편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은행권의 문제적 관행으로 지적된 실적 압박과 불완전판매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지만, 일각에선 KPI 개편으로 은행권의 수익성이 저하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내년부터 ‘고객 최우선’ 관점에서 KPI를 새롭게 도입하기로 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지난 8일 경기 용인시 신한은행 연수원에서 열린 ‘임원·본부장·커뮤니티장 워크숍’에서 이 같은 개편 방침을 발표했다. 진 행장은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객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롭게 도입되는 KPI의 핵심 내용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는 평가 방식이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내년부터 ‘목표달성률 평가’를 도입하고, 내부 경쟁을 유발하는 상대평가 방식을 폐지해 과당 경쟁 방지 및 협업을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이전에는 할당량을 채워도 상대평가에 따라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면 이제는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성과를 인정해 주고 인사 및 급여 등에서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서 DLF 사태의 당사자인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KPI 개편안을 내놓은 바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16일 ‘고객 중심 자산관리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자산관리(WM) 부문을 혁신하고 영업문화를 고객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판매 실적보다는 고객 관리에 더 집중하고자 4분기에 자산관리 상품 관련 KPI 평가를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하나은행은 최근 지성규 하나은행장이 영업 현장에서 직접 KPI 지표를 짜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본점에서 지표를 구성해 영업점으로 내려보내던 방식이 아니라 각 영업점에서 자율 목표를 설정해 지표를 구성하라는 지시다. 각 영업점에서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항목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자율 목표 설정을 유도한다는 것이 하나은행 측 설명이다.

은행권의 대대적인 KPI 개편으로 고질적 문제였던 실적 압박 문제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은행원 입장에선 실적 압박으로 무리한 상품 판매를 할 유인이 사라지고, 고객 입장에선 불완전판매를 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그동안 KPI 지표가 영업점 목표 달성이나 은행의 수익 증대에 치중되면서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상품을 권유하는 등 불완전판매의 원인이 되곤 했다”며 “상품 판매 자체보다는 소비자 수익률에 집중해 소비자 중심으로 KPI 지표를 개편하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은행권의 KPI 개편이 향후 은행의 전반적인 수익성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은행이 KPI 지표에 수수료 성과를 제외하는 등 평가 기준을 더 이상 상품 판매에 치중하지 않는 만큼 내부 경쟁 시스템이 이전보다 무뎌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품 판매 경쟁이 사라져 수수료 이익 등 은행의 수익성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당 경쟁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KPI 시스템을 개편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내년에는 순이자마진(NIM)도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은행의 대외 경영환경 또한 여러 모로 불투명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수료 수익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은행들이 과연 현실적으로 얼마나 수수료 성과 관련 배점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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