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노무비 착복도 여전···비정규직 노동자 무기한 농성 돌입
고 김용균 어머니 “일터에서 목숨을 지켜달라는 게 죄인가”

11일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전 산업 부문의 위험의 외주화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 사진=이준영 기자
11일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전 산업 부문의 위험의 외주화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 사진=이준영 기자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권고한 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외면하고 있다. 당정이 지난 2월 약속한 하청업체의 노무비 착복 문제 개선도 여전히 미뤄지고 있다. 이에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은 11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지난 8월 19일 특조위는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24)의 죽음은 전력 발전 산업의 원·하청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고 진상조사 결과를 밝혔다. 원청인 발전사와 하청업체 간 소유와 운영이 분리되면서 책임 회피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은 김씨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11개월 전인 2018년 1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설비 개선을 요청했다. 낙탄을 사람이 직접 치우지 않고 고압의 물로 쏴서 처리하도록 시설을 개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서부발전은 평소 작업에서 지휘와 감독을 하면서도 하청노동자가 원청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며 이를 무시했다. 하청업체도 컨베이어벨트가 자신의 설비가 아니라며 권한이 없다고 개선 요청을 회피했다. 결국 설비 개선 요청이 무시된 업무 환경에서 김씨가 사망했다.

이에 특조위는 노동안전을 위한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경상정비 노동자들을 발전사가 직접고용해 정규직화하라고 권고했다. 세부적으로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는 각 발전사로 통합운영하고 해당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고 밝혔다. 경상정비업무는 한전KPS로 재공영화하고 민간정비회사 소속 노동자를 한전 KPS가 직접고용하라고 권고했다. 이러한 대상자는 2차 하청 노동자까지 포함하라고 했다.

특조위 진상조사 발표 이튿날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서서 특조위 권고안을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라고 성윤모 산업부 장관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5일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인 생명과 안전 보장을 위해 위험의 외주화 문제 개선이 시급하다며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등을 권고했다.

특히 인권위는 하청 노동자 산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생명·안전업무 기준의 구체화 및 직접 고용 원칙 적용이 필요하다며 그 예시로 ‘비정규직 사용제한이 필요한 생명·안전업무의 범위 등에 대한 연구’를 들었다. 이 연구 보고서에는 비정규직 사용제한이 필요한 생명·안전업무에 원자력 및 발전의 운전, 운영, 정비, 안전, 보안 업무 등이 포함된다. 이 외에 공중 보건이나 의료, 재난 관리, 정보, 통신, 운수 항공의 세부 업무들도 포함된다.

이처럼 특조위와 인권위가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해야 한다고 발표했지만 3개월이 지나가는 지금도 직접고용과 관련해 진전이 없다.

경상정비 업무 분야도 정규직화 전환 논의에서 진전이 없다.

발전부문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는 이날 “국무총리 훈령으로 설치된 특조위의 진상조사 결과와 권고안, 국가인권위원회 내용 모두 발전 부문의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같은 결론을 냈다. 이들은 모두 정부가 설치한 기관들로 정부가 발표한 것이다”며 “그러나 정부와 민주당은 발전소의 연료환경설비운전은 특정 하청업체인 한전산업개발을 공기업으로 지정하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하고자 한다. 한전산업개발은 지금껏 원청에서 받은 직접노무비를 노동자들에게 전액 지급하지 않았다. 정부는 연료환경설비운전은 직고용, 경상정비 분야는 한전KPS로의 재공영화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특조위의 발전소 하청업체 노무비 미지급에 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8년 1~8호기 석탄취급설비경상정비 공사에서 한전산업개발의 노무비 착복률은 52.2%였다. 다른 하청업체들의 착복률도 38~45%에 달했다.

또한 당정이 지난 2월 설 직전 발전소 하청업체들의 노무비 착복 문제 개선을 노동자들에게 약속했지만 노무비 착복도 여전했다.

특조위도 권고안 발표 당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하청 노동자의 적정임금이 보장되도록 입찰계약 시 직접노무비에 낙찰률 적용 금지, 직접노무비의 중간 착복 없는 관리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당정의 대책 발표 9개월이 지나고 특조위 권고도 석달이 지났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직접노무비가 노동자들에게 전액 지급되지 않고 있다.

하청업체의 노무비 착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에도 당사자인 하청 노동자들은 제외돼 있다.

이에 서부발전 관계자는 “노무비 문제는 협력사가 협조해주지 않으면 발전사가 주도적으로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는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은 용균이 동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등 여전히 부족하다. 이것은 정부가 우리 국민들의 목숨을 지켜주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며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나. 목숨을 지켜달라는 게 죄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인권위는 오는 2020년 1월 16일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한계를 밝혔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 금지 작업의 범위를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을 제련·주입·가공·가열하는 작업 등 화학적 요인으로 한정했다. 이에 인권위는 외주화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컸던 구의역·태안화력발전소 사고에서 사망자가 했던 작업은 여전히 도급(하청)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 유형은 떨어짐, 끼임, 부딪힘, 깔림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며 도급금지 작업을 화학적 요인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또 인권위는 개정 산안법에 따라 도급금지 작업에 해당해도 일시적, 간헐적 작업일 경우 사업주 판단만으로 도급이 가능한 부분도 지적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권고한 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직접 고용, 하청업체의 노무비 착복 문제 개선을 외면하고 있다며 발전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1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 사진=이준영 기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권고한 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직접 고용, 하청업체의 노무비 착복 문제 개선을 외면하고 있다며 발전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1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 사진=이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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