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항공사 선에서 잘 대처해도 수사기관·법원 거치며 처벌 수위 약해져
박재호 의원 “더욱 엄격한 법 마련할 필요성 있어”

여객기 기내에서 여성 승무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아 경찰 조사를 받은 드바야르 도르지 몽골 헌법재판소장이 7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지방경찰청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객기 기내에서 여성 승무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아 경찰 조사를 받은 드바야르 도르지 몽골 헌법재판소장이 7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지방경찰청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몽골 헌법재판소장의 대한항공 승무원 성추행 논란 역시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지자 항공업계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와 더불어 여객기 내 난동과 관련해 현장에서 아무리 국토교통부의 지침에 맞게 처리해도 수사기관 및 법원을 거치며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되는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드바야르 도르지(Odbayar Dorj) 몽골 헌재소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몽골 울란바토르를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오는 대한항공 여객기 내에서 승무원을 성추행하고 다른 승무원을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사건은 인천지검 외사부로 넘겨졌는데, 그가 외국인이고 과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해 검찰이 약식기소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약식기소는 정식 재판을 받지 않고 법원 명령으로 형집행을 마무리 짓는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그는 벌금만 내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항공업계에선 그가 외국인인지 여부를 떠나 애초에 국적기에서 난동을 부릴 경우 엄격한 사법처리가 이뤄진 전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항공사에서 아무리 단호하게 대처를 해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는 근본적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항공기 내 난동과 관련해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2017년 국토부는 기내에서 중대 불법행위가 발생할 경우 승무원이 경고장 제시 등 사전 절차를 생략하고 즉시 제압 및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기내 난동 대응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기내 난동은 그 자체가 승객 수백 명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즉각적이고 엄정하게 대응하도록 한 것이다.

이번 몽골 헌재소장 사건 역시 국토부 방안이 잘 적용돼 기내에서 사무장이 즉각적으로 적절히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용원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과장은 “어떻게 보면 을의 입장인 승무원들이 기내 난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2017년 기내 난동 대응 방안을 마련했고 이후 과거에 유야무야되던 건들이 다 신고가 되고, 처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기내 난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가장 근본적 이유를 되풀이되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한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범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국토부 주문에 따라 항공사들도 그에 맞게 신속하고 엄격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지만 어차피 수사기관이나 법정으로 넘어가면 나오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기내 난동이 안 줄어드는 근본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 의자 등받이 올려달라고 했다고 승무원 폭행하기도

실제로 한국에서의 기내 난동 사례들을 돌이켜보면 엄격한 처벌을 받은 경우를 찾기가 힘들다. 2017년 8월 이스타항공 기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제지한 승무원의 배를 발로 찬 25세 여성에게 인천지법 형사10단독 이재환 판사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여성이 반성을 하고 있고 우발적이었다는 점 때문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2016년 팝스타 리차드 막스의 SNS를 통해 유명해진 기내 난동 사건 역시 집행유예로 마무리됐다. 35세 임아무개씨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인천으로 가던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에서 술에 취해 승무원의 얼굴과 배를 때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인천지법 형사9단독 박재성 판사는 임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 형. 여기에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했다. “초범이고 상당한 금액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점”등을 감안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처럼 널리 알려진 사건들조차 집행유예 및 벌금형으로 마무리되는 형국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뉴스에 보도되는 것 말고도 항공기 내 난동은 특별한 일이 아닐 정도로 많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좌석 등받이를 올려 달라는 승무원의 손목을 폭행한 사례, 승무원 치맛속을 몰래 촬영한 사례, 회항 결정에 불만을 품고 항공기 밖으로 나가려 한 사례 등등 상식 밖 사건이 수두룩한데 대부분 가벼운 처벌에 그친다는 전언이다.

미국에선 승무원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는 최대 20년의 징역형과 25만 달러(3억원 상당)의 벌금에 처하는 중범죄로 취급한다. 중국은 공항 등지에서 난동을 부린 자국인을 ‘비문명 행위자’ 명단에 올려 출국하거나 은행 대출을 받을 때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한국의 솜방망이 처벌과 미국의 경우가 대비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국 인천으로 향하던 하와이안항공 여객기에서 만취한 47세 김아무개씨가 옆자리 9세 어린이의 어깨에 발을 올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해당 항공기는 하와이로 회항했고, 결국 김씨는 미국 법의 적용을 받게 됐다. 당시 미국 법원은 그에게 징역 6개월과 더불어 한국 돈으로 약 2억원을 항공사에 배상토록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내 성범죄 처벌 등과 관련해 외국과의 비교 등을 통해 법 규정을 좀 더 엄하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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