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 하이 대표, UX 전공 교수에서 의료 소프트웨어 만드는 창업가로···“디지털 치료제계의 제2의 테슬라 됐으면”

치료제를 ‘먹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사용’하게 되면 어떨까. 의학계는 현대인의 정신건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물질은 대부분 복용하는 약이었다. 몇 년 전 새롭게 등장했던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해 특정 질환을 치료하는 약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디지털 치료제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김진우 연세대학교 교수이자 스타트업 하이(HAII)의 대표는 30년 동안 UX(사용자경험) 개발 전문가로 살아왔다. 내로라 하는 대기업과 함께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정년퇴임을 앞둔 김 교수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고민했다. 특히 20대 젊은 청춘들을 가르치던 김 교수는 심리적인 질병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 교수의 전공인 UX개발을 의료 목적에 접목시키기로 했다.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디지털치료제로 제2의 ‘테슬라’가 되고 싶다는 김진우 교수를 지난 7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누리홀에서 만났다.

◇ 미국이 먼저 주목한 ‘디지털 치료제’···UX 경험살려 치매 치료제 만든다

김 교수는 UX, 즉 사용자 경험과 관련된 기술을 디지털 치료제에 접목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 소프트웨어인 ‘SaMD’를 평가할 때 사용자 경험에 대한 평가항목이 과반수를 넘는다. 김 교수는 자신의 전공인만큼 디지털 치료제 신약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획기적인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우울증, 치매,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을 치료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제의 진입장벽을 낮춘 셈이다. 그동안 많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정신약 임상을 진행해왔지만 허가 과정과 비용이 어마어마한 탓에 좌절했다. 대부분 10~15년이 걸리고, 인허가 비용도 5000억원에서 많게는 2조원 가까이 들었다.”

김 교수는 미국 FDA가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사전 심사 기간을 3년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FDA의 목표는 시장에 디지털 치료제를 출시한 뒤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첫 FDA 인증을 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페어테라뷰틱스의 마약 중독치료 소프트웨어다. 페어는 FDA 승인 후 기업가치 6000억원을 달성했다. 클릭 테라뷰틱스도 금연치료와 우울증 디지털 치료제를 내놓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 전기차 테슬라가 처음 나왔을 때 일반 자동차 회사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전기로 가는 자동차가 언제 나오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기차는) 이미 나왔지 않나. 디지털 치료제도 초기엔 제약회사와 보험사들이 ‘치료가 되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FDA가 허가를 하자 제약사들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뛰어들고 있다. 내년부터는 시장이 커질 것 같다. 국내에는 소프트웨어로 사람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다만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디지털 치료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빠른 시일 내 국내에서도 가이드라인이 생기지 않을까.”

김진우 하이 대표 겸 연세대학교 교수를 지난 7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누리홀에서 만났다. / 사진=최기원 PD

김 교수에게 창업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묻자 ‘우리 와이프가 반대한 것?’이라며 웃었다. 사실 대학교수가 직접 창업하는 교원창업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교수였기 때문에 사업도, 치료제 개발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단다.

“창업 후 투자 유치 장소를 가보니 대표들이 젊더라. 제자들도 많이 만난다. 하도 내가 ‘창업해라, 스타트업해라’ 잔소리한 영향이 있나 보다.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조건들이 있다. 소프트웨어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임상평가연구를 해야 한다. 치료제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인데 주로 컨퍼런스 발표, 논문 작성 등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20년 넘게 교수로서 해온 일이니 (젊은 대표보다) 편하다.”

◇ "FDA 승인 후 디지털 치료제가 실생활에 적용됐으면···치료제 시장 바꾸고파"

스타트업 ‘하이’가 만든 디지털 치료제는 아직 오픈 베타 서비스 단계다. ‘새미(리킨들 1.0)’라는 디지털 치료제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치료한다. 경도인지장애로 퇴화된 뇌 인지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재활해 준다. 어른들에게 접근성이 좋은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디지털 치료제다 보니 의료기관이나 제약사와의 협업은 필수다. 의료계도 디지털 치료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이는 연구개발(R&D) 중심 회사다보니 의학자들도 자문 형태로 많이 도와주고 있다. 새미의 경우 서울대병원, 이대목동병원 등의 임상 도움을 받았다. 또 국가 연구재단에서 과학자, 기술자, 의학자가 모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지원해 주고 있다.”

국내에도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활용해 치료제를 만드는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있다. 모바일 심리상담 앱, 치매 재활 기계, 체지방 및 생활습관 분석 등 종류도 다양하다.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개발도 차츰 시작되고 있다. 김 교수에게 다른 스타트업과 다른 하이만의 차별점을 묻자 “차별점이 없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많은 헬스케어 기업들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사업을 하듯, 디지털 치료제도 실생활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디지털 치료제라는 영역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 단계를 거쳐 시판 후에도 1년에 4번씩 검사를 받아야 한다. 과정이 빡빡하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과해 실제로 사용이 된다면 의사나 사용자들이 훨씬 편하게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새미가 FDA승인이 된다면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에게 처방이 내려지게 될 것이다. 매일 25분 스마트폰을 이용해 쉽게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여기다 보험수가가 적용되면 더 적은 비용으로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

내년 하이의 계획은 국내에서 3가지 디지털 치료제 오픈 베타 서비스(시범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 중 하나를 미국 FDA로부터 허가받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하이는 현재 FDA임상허가 신청과 사전임상(IDE) 허가를 위해 준비 중이다. 김 교수는 FDA승인이라는 목표 이후, 디지털 치료제 플랫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후발주자들이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UX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단다.

“거창하지만 디지털 치료제 계의 엘론 머스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앞에서 말했듯, 테슬라는 자동차 업계의 획기적인 혁신이었다. 산업의 전환을 만들어내는 단초는 아주 작은데서 시작한다. 디지털 치료제는 그만큼 획기적이다. 기존의 치료제를 보완하는 데서 나아가 정신건강 치료에 효과를 낸다면, 정신건강 치료제 시장 자체가 바뀌지 않을까. 시장을 바꾸는 혁신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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