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제치고 업계 ‘2위’ 안착···“IPO 기업가치 제고에도 순기능”
SK주유소의 ‘목’ 업계 최고···“인수 실익 충분, 부동산 투자처로도 으뜸”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경쟁업체들과 달리 의욕적으로 ‘빅 베팅’을 감행한 현대오일뱅크의 속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코람코자산신탁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최근 매물로 나온 SK네트웍스 직영주유소 324곳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매각가만 1조4000억원을 웃돈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써 업계 2위로 단숨에 올라서게 됐는데, 이면의 셈법이 이 같은 베팅을 가능하게 한 이유로 꼽힌다.

6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SK네트웍스 직영주유소는 ‘SK에너지’ 간판을 달고 있는 폴(Pole) 주유소다. 내년 상반기 중 마무리 지어질 것으로 예정된 이번 인수를 통해 324곳의 주유소가 SK에너지 간판을 떼고 현대오일뱅크로 새 옷을 입게 된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인수자금을 충당하고, 현대오일뱅크가 운영을 맡는 방식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인수전을 통해 국내 주유시장은 변화를 맞게 된다. SK에너지의 1위 고수는 계속되지만, GS칼텍스가 3위로 내려앉고 현대오일뱅크가 2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6일 현재 SK주유소는 총 3412개로 29.8%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어 △GS칼텍스 2356개(20.5%) △현대오일뱅크 2233개(19.5%) △에쓰오일 2124개(18.5%) 순이다.

2, 3위의 격차가 123개소에 불과해 현대오일뱅크가 324개의 주유소를 신규로 확보하면 2위를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SK에너지는 점유율이 다소 하락하겠지만 1위 자리는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GS칼텍스는 매물에 대한 관심을 조기에 거둬들였다. SK에너지도 막판까지 고심하다 최종적으로 인수를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GS는 매물로 나온 주유소가 지근거리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중복 투자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인수전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SK는 투자비용에 비해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최종 포기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이번 인수전은 업계 3, 4위 다툼으로 전개됐던 셈이다. 사뭇 박빙으로 진행됐을 것 같지만, 투자은행업계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두 업체가 SK네트웍스 측에 제시한 인수가는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인수전을 두고 “싱겁게 끝났지만, 그만큼 현대오일뱅크의 인수 의욕이 컸음을 방증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주유소의 경우 지정학적 위치가 매출 등에 절대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SK가 우선적으로 선점하고 차선지를 GS가 차지한 상황에서 324개의 SK주유소는 현대오일뱅크 입장에선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시사했다.

그럼에도 주유소가 사양 산업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높은 금액을 베팅한 것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각 업체마다 전기·수소 등의 충전소 확대를 추진하고 유외(油外)사업에 힘을 쏟는 이유도 경쟁이 심화돼 주유소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인데, 이 같은 업황을 모를 리 없는 현대오일뱅크가 거금을 투입한 배경에 물음표를 단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오일뱅크가 추진 중인 기업공개상장(IPO)과 연계된 행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에 지분 17%를 매각해 유동자산을 확보함과 동시에 ‘아람코가 투자한 회사’라는 안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면서 “이어 업계 2위로 도약하는 데 발판이 될 인수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기업가치 제고를 꾀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투입금액에 비해 높은 경제적 가치를 얻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부동산에 투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인수 결정에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주유소는 이른바 ‘목’이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어서 요충지에 자리한 경우가 많은 만큼, 주유소가 입지한 곳들의 경우 대부분 잠재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특히 SK주유소들은 경쟁업체들에 비해 지정학적으로 우위에 있다.

한편,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SK네트웍스는 올 연말께부터 실사를 벌이고 본계약을 체결한 이후 주주총회를 통해 매각 계획을 최종 승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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