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수첩] ESS화재 멍에, 왜 기업만 떠안나
  • 김도현 기자(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19.11.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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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장서 ‘정부’ 아닌 ‘기업’에만 집중포화···조속한 원인규명 통해 ‘해외수주 리스크’ 덜어내야

우리 국회는 입법기능만 담당하지 않는다. 정부를 비판·견제하는 역할도 수행하는데, 매년 실시되는 국정감사는 이 같은 사법부의 비(非)입법 기능의 총체라 할 수 있다. 국정 전반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야 하는 자리지만, 지난달 7일은 본래 의미와 사뭇 달랐다.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기업위원회 에너지분야 국정감사가 실시됐다. 김준호 LG화학 부사장과 임영호 삼성SDI 부사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통상 증인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제3자 역할을 하기 마련이지만, 이날은 마치 피관기관장들과 같이 국회의원들의 거센 질책을 받아야 했다.

이들에게 가해진 질책은 연이어 발생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자발적 리콜을 요구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사실 이날 ESS 화재가 이슈가 된 것은 정부의 화재원인 조사발표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려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원인규명 실패가 도마 위에 올랐어야 했지만, 화재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느냐고 꾸지람을 들은 것은 기업들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두 건의 추가 ESS화재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화재원인은 불분명하다. 다만, 그 같은 질책이 쏟아진 국감이 나온 뒤부터 배터리업계는 죄인이 됐다. 모 기업 배터리사업부 관계자는 “이러다 사업을 접는 것 아닐지 모르겠다”며 “일하다보면 까닭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하는데, 다른 직원들도 그런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ESS 화재원인은 업계 내 초미의 관심사다.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추론하곤 한다. 전문가들의 추론을 그치게 하는 것은 유독 화재가 국내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그 때문인지 최근에는 뚜렷한 사계절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중 온도차가 극심하고, 강우량과 습도 편차도 심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등 ESS 기기들이 버텨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국내 보험회사 의뢰로 글로벌 품질 인증 및 위험관리회사인 디엔브이지엘(DNV GL)이 화재가 난 ESS 가운데 한 곳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원인으로 ‘작은 제조상 결함’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해당 ESS의 배터리 업체명은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그간 화재가 난 ESS의 배터리가 복수의 업체들임을 감안하면 그 다음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보고서는 “안전관리와 화재 예방시스템이 미흡해 작은 결함으로 인한 사소한 오작동이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기술돼 있다. 결함을 ‘작다’고 표현한 것에 비춰보면 직접적인 원인은 안전관리와 예방시스템의 부재였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원인조사 후에도 화재가 계속됐음을 감안하면 결국 ‘제조’의 문제보다 ‘관리’의 부실이 크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한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기에, 28건의 연쇄화재의 원인으로 채택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가 다소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2년 새 연이어 발생한 화재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우리 스스로 내지 못했기 때문임이 크다. 정부가 해내지 못한 규명을, 비록 한 곳이지만 사설업체가 보고서까지 냈다는 점에서 반성해야 할 필요성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는 한 발 뺀 모양새다. 마치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 듯, 업체들을 방패삼고 여론의 질책을 교묘히 빠져나오고 있다. 조사의 주체도 관리감독의 책임도 결국엔 정부에 있는데 다소 책임감없는 행동으로 느껴질 정도다. 국내서 집중포화를 맞게 된다면 해외수주사업에서도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큰데, 아랑곳 않는 태도에 실망감이 느껴진다.

화재 빈도만큼이나 세계시장을 놓고 보면 유독 국내에 ESS가 집중돼 있다. 정부가 지원금까지 쥐어 줘가며 이를 장려했다. 물론 배터리업계도 수혜를 입었다. 이들의 원활한 납품으로 정책이 쉬이 자리 잡았음을 감안하면, 이 역시 상호보완적인 요인일 뿐이다.

이제 정부가 나설 차례다. 제대로 된 원인규명과 화재방지책 마련 등 실효성 있는 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야흐로 ESS의 양적팽창이 예고돼 있다. 연속화재가 수주활동에 제약이 되지 않기 위해, 보다 책임감 있는 정부의 자세를 바라본다.

김도현 기자
산업부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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