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中·日 부진에도 LG·삼성·SK은 약진···코발트 쥐고 흔드려는 中 움직임은 ‘우려’
잇단 ESS 화재 규명은 당면과제, LG·삼성 ‘화재 방지 시스템’ 구축 등 적극적 대응···해외 시장 확대로 경쟁력 ‘제고’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전지(電池·배터리)업계의 ‘양대 축’은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외연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는 막연한 기대감을, ESS는 막연한 불안감을 자아내며 상당한 온도차를 보여 왔다. 각각의 희비에 가려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속사정도 이 같은 온도차만큼이나 상당한 간극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전기차 배터리는 폭발적인 시장 확대가 점쳐진 분야였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을 중심으로 전기차 라인업 확대 계획이 발표되며 기대가 현실화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포스트 반도체’라 불리며 향후 수출을 선도하게 될 업종으로 평가된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 기업들의 약진도 이 같은 기대감을 부채질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난 8월까지 LG화학은 전년동기(6.3%)의 두 배인 12.6%의 점유율을 보이며 4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6위 삼성SDI와 9위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대비했을 때 각각 0.8%p, 0.3%p 점유를 늘려 4.4%, 1.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특히 8월 한 달만 놓고 봤을 경우 이들 3사는 전년과 비교해 각각 79.9%, 10.0%, 8.1%의 신장률을 나타냈다.

이는 중국·일본 등의 경쟁업체들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글로벌 톱10 기업 중 5개 기업을 진입시킨 중국의 경우 자국 내 보조금 축소로 인해 1위 CATL을 제외한 전 기업의 신장률이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최대 배터리업체이자 글로벌 2위 파나소닉의 경우 테슬라와의 관계가 요원해지며 공급 물량이 축소됨에 따라 22.5%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화웨이’와 같이 국가적 지원을 등에 업은 CATL을 제외하면 우리 기업들만 두각을 나타낸 셈이다.

시장 확대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약진이 기대된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완성차 시장에서 기술적 간극을 좁히지 못한 중국 당국의 ‘전기차 굴기’ 압박이 거세다. 완성차 브랜드 인수를 바탕으로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도 CATL을 중심으로 범(凡)정부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오는 2030년에는 최대 4300만달러 규모의 전기차가 판매될 것이며, 중국에서만 57%가 판매될 것으로 예측된다. 방대하게 인프라를 갖춘 매력적인 시장으로 진입하려는 완성차업체들에 중국 정부가 CATL 등 자국 배터리 탑재를 종용한다는 후문이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중국의 원료 공급망 독점 움직임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는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이 꼽힌다. 특히 코발트의 경우 다른 소재들에 비해 가격이 비싸 제조원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재다. 중국은 아프리카 콩고 소재 코발트 광산들을 매입해 경쟁 국가로 공급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공급망 제어는 코발트 가격 상승을 부추겨 배터리의 가격경쟁력을 실추시킬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가 장밋빛 전망과 중장기적 우려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LG화학과 삼성SDI가 주축으로 꼽히는 ESS는 화재 원인 규명이란 당면과제로 인해 암울한 상황이지만 해외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비록 화재 원인 규명이 진행 중이지만, 각 업체별로 소화 시스템을 선보이는 등 안전성을 높여 해외 수주가 확대되리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SS 화재는 2017년 8월 전북 고창에서 처음 보고된 후 지난달까지 총 28건이 발생했다. LG화학 배터리가 장착된 사례는 15건이고,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사례도 10건이나 된다.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화재 원인 조사가 진행됐다. “배터리가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됐으나, 이후에도 5건의 추가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재차 원인 규명이 이뤄지는 중이다.

국내 ESS 시장은 글로벌 시장에 비춰보자면 ‘테스터(Tester)’적 성격이 강하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ESS 설치가 선제적으로 이뤄지고 경쟁적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해외에 비해 유독 국내에 ESS가 집중된 셈인데, 국내에서만 발화사고가 발생하다 보니 LG화학과 삼성SDI 등이 모두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일부 후발주자들이 국내 시장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을 정도다.

최근 삼성SDI와 LG화학은 순차적으로 화재진압장치를 선보였다. ESS에서 화재가 발생한 직후 바로 불길을 잡아 다른 설비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정확한 화재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미봉책이란 비판도 있지만, ESS의 안전성을 높이고 화재에 따른 금전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연이은 화재로 해외 ESS 수주 경쟁에서 우려가 점쳐지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경쟁 업체들이 장착하지 않았던 화재 진화 설비까지 추가되면서 경쟁력이 오히려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북미·호주 등의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여서 국내 기업들의 ESS 수주에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반도 지역은 계절별 일교차·습도차가 유독 극심한 기후를 보이는데, 이 같은 기후는 ESS가 설치된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극한의 환경이다”면서 “유독 국내에서 화재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를 두고 최근에는 기후에 따른 설비 문제가 상당히 가능성이 큰 가설로 떠오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향후 명확한 조사를 바탕으로 화재 원인이 규명되고, 재발이 방지돼야 하겠지만, 덕분에 국내 기업들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ESS의 안전성을 높이는 제품까지 출시할 수 있게 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단계에 이르렀다”면서 “한국에 이어 해외에서도 속속 ESS 관련 시장이 확대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약진도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