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혜화동 대학로서 연극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연출 이우천)를 관람했다. 연극은 요양원에 사는 79세 메르타 할머니가 요양원보다 환경이 더 좋은 교도소에 가기위해 요양원 친구들과 5인조 노인 강도단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할머니 판으로 읽히는 연극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스웨덴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으로,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했다.

무대는 간단했다. 배우들의 의상을 빼고는 대형 무대장치도 없고 크게 제작비가 들어가는 연극은 아니었다.

필자가 본 날은 토요일 7시 공연이었다. 주중 가운데 관객이 몰리는 날 중 하나다. 100석 남짓한 공연장 객석중 1층은 거의 찼고 2층은 비어 있었다. 언뜻 봐도 특별한 후원및 협찬 기획없이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이 공연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타의 다른 연극공연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공연 콘텐츠로 돈을 벌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순수 연극무대, 무용, 국악분야가 그렇다. 유명 대형 뮤지컬이나 케이팝 등 '돈이 되는' 스펙터클한 무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로 등에서 올려지는 연극및 무용공연 등 순수 예술 행위는 영세하기 짝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국도 마찬가지다.

공연예술은 구조적으로 돈을 벌수 없는 구조다. 매회 출연 배우들이 등장해 관객들에게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중시하는 장르 특성상 그렇다. ‘같지만 다른’ 콘텐츠를 무제한 복사해 내는 영화나 방송등 복제예술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영상산업이 최첨단 기계와 설비를 갖추고 상품을 대량 생산해 내는 대형 공장 시스템이라면 공연예술은 사람의 손이 미치는 수공업이며 가내 공업인 셈이다. 경쟁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공연예술은 지원 및 후원이 불가피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그랬다. 경제와 문화예술의 균형발전에 기여를 위한 메세나(기업의 예술후원)의 활동이 절실하다.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을 후원한 메디치 가문이 효시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350년 동안 당시 문화예술가들을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미국의 카네기 홀, 록펠러 재단 등이 대표적인 메세나 활동 기업으로 꼽힌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과 일부 중견기업 등 우리 기업들도 다양한 형태나 특화된 방식으로 순수 공연예술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유럽등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은 메세나에 대한 인식도 낮고, 시스템도 체계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개는 지인을 통한 아름아름, 등 떠밀려 마지못해 선의를 베푸는 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은 공연문화를 지원해야 한다. 사회 환원과 문화와의 공생(共生) 차원에서 그렇다. 기업의 사회 공헌은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국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국민들의 수준 높은 감성 교육을 고취시키는 일이며, 결국 국격(國格)을 향상시키는 일이란 것이다.

문화예술가나 단체에게 지원되는 돈은 예술가들에게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소프트콘텐츠 부문과 국민 교육과 정서 함양에 대한 투자이며 그 혜택 역시 기업에 돌아간다.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공연예술인들의 상상력은 AI(인공지능) 빅데이터로 명명되는 4차 산업혁명에도 여전히 필요하며, 미래 산업의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이들 기업들에게 세제 혜택을 포함해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함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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